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 연말정산을 해보자!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당신을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
2025년을 돌아보면, 이 해는 단순히 많은 글을 뽑은 해이기도 하지만 글 쓰는 방식 자체가 크게 변한 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문장을 풀었고, 그다음에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문장을 놓았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질문이 떠오르고, 그 질문이 글의 새로운 형식을 이끌었으며, 그 형식은 다시 생각의 밀도를 바꾸곤 하더라. 게다가 AI와 함께 하니 한결 아니 생산성이 말도 못 하게 수월하고 폭발적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의 글은 결과물이기 이전에 사고의 흔적이었고, 그 흔적들이 쌓이면서 더 큰 지형을 만들 수 있었다. 단행본 수준은 아니어도 이 지형은 단정한 지도처럼 정리된 구조가 아니라, 계속 수정되고 덧그려진 스케치에 가까웠다. 그래도 이런 스케치를 많이 남길 수 있었다는 건 분명 성취였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내 기준에서 ‘완결성이 매우 높아야만 한다’는 고질적인 브레이크를 풀어놓고 달리듯 글을 써본 건 어쩌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늘 머릿속에는 보이지 않는 심사위원이 앉아 있어서,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지금 멈추면 안 된다고, 더 다듬고 더 채워야 한다고 속삭이곤 했는데, 2025년의 어느 시점부터는 그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완결되지 않아도 괜찮고, 오늘의 생각은 오늘의 상태로 남겨도 된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내린 셈이었다.
책을 쓰던 당시만 해도 AI는 아직 경험의 영역 밖에 있었다. 혼자서 끝까지 끌고 가야 했고, 막히는 지점에서는 버티는 수밖에 없었으며,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같은 자리를 오래 맴도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고생이 이제는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그때의 악착같던 나를 떠올리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쉽게 물러서지 않던 집요함과 긴장감은 분명 지금보다 더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집요함을 내려놓은 덕분에, 대신 훨씬 많은 글을 세상 밖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하나를 완벽하게 만드는 대신, 여러 개를 살아 있게 만드는 선택은 손해라기보다 일종의 거래에 가까웠다. 깊이를 조금 양보하는 대신 흐름을 얻었고, 속도를 허락하는 대신 생각의 폭을 넓혔다.
그래서 내년을 생각하면, 다시 브레이크를 세게 잡을 마음은 없다. 다만 내연기관의 결을 조금 더 다듬고 싶다는 감각에 가깝다. 무작정 많이 태우기보다는 연소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려 한다. 연재는 하루 한 편으로 유지하되 일요일은 휴재로 두어, 양을 절반 가까이 줄이고 그만큼 다른 활동과 생각에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다. 쓰지 않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글쓰기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여백 역시 다음 문장을 준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2025년은 브레이크를 풀어본 해였고 다가오는 해는 속도를 다시 조율해 보는 해가 될 것 같다. 더 빠르지도, 더 느리지도 않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리듬을 찾는 일. 그 리듬 위에서라면 글은 다시 다른 얼굴로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묘한 확신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