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격다짐일 것이냐 꾸준함일 것이냐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무엇이든 ‘얼마나 했는가’로 말하기 시작했다. 몇 개의 결과물, 몇 편의 글, 몇 장의 슬라이드, 몇 시간의 노력. 숫자는 판단을 빠르게 만들어주고, 설명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래서 양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다. 많이 했다는 말은 성실함처럼 들리고, 적게 했다는 말은 게으름의 변명처럼 취급된다.
문제는 그 숫자가 과정의 질이나 방향을 거의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양은 언제나 결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맥락을 지운 요약본에 가깝다.
양을 앞세운 방식의 핵심에는 우격다짐이 있다. 일단 많이 하면 언젠가는 걸릴 것이라는 믿음, 생각보다 반복이 먼저라는 태도, 깊이는 나중 문제라는 판단. 이 방식은 초반에 꽤 잘 작동한다. 손에 잡히는 결과가 빠르게 쌓이고, 주변의 평가도 즉각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일정 지점을 지나면 이상한 균열이 생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데 성장은 줄어드는 감각, 어느 순간부터는 늘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사라진 상태. 우격다짐은 속도를 만들지만, 방향을 점검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앞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같은 자리를 원을 그리며 도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꾸준함은 종종 느림과 동일시된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고,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하루하루는 미미하고, 중간 점검을 하면 늘 ‘아직’이라는 말만 남는다. 그래서 꾸준함은 미덕이면서도 동시에 답답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꾸준함의 본질은 반복이 아니라 조정이다.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방향을 수정하며 이어가는 태도에 가깝다. 어제의 실패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미세하게 다른 시도를 덧붙이는 것. 외부에서 보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내부에서는 기준과 감각이 서서히 달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이 늘어날수록 생각할 시간은 줄어든다. 생산을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 때문에, 검토와 반성은 사치가 된다. 어느새 질문은 ‘이게 맞는가’에서 ‘더 할 수 있는가’로 바뀐다. 이 지점에서 양은 도구가 아니라 목표가 되고, 목표가 된 양은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많이 했으니 의미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사실 확인을 미루기 위한 방어 기제에 가깝다. 반면 꾸준함은 늘 질문을 요구한다. 계속해도 되는지, 조금 바꿔야 하는지, 멈추는 게 더 나은 선택은 아닌지. 그래서 꾸준함은 정신적으로 더 피곤하다.
우격다짐이냐 꾸준함이냐는 사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기준이다. 지금 내가 늘리고 있는 양이 탐색을 위한 것인지, 회피를 위한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 지금까지의 반복이 제대로 된 학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생각하지 않기 위한 관성에 불과한 것인지 말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꾸준함이란 양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란 점이다. 우격다짐 또한 무조건 나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양이 방향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방향 없는 양은 어느 순간 자신을 소모시키는 함정이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아직 에너지가 충만하다면 양에 치중하는 것도 나쁜 전략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것은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다.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고, 언제 방향을 틀었으며, 무엇을 포기했는지가 남는다. 그 궤적이 설명될 수 있을 때, 양은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그러니 꾸준함이란 결국 같은 속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질문을 놓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질문이 있는 한, 양은 함정이 아니라 도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