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빠르게 낭만을 벗겨냈다. 책상 위에 놓였던 이름표가 사라지자, 세상은 나를 더 이상 ‘호명’ 하지 않았다. 누군가 불러주던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는, 설명되지 않은 시간만 남았다. 누구의 요청도, 누구의 승인도 없는 하루가 시작되자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보호막은 투명해서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더 단단하다고 착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에 다닐 때의 일은 명확했다. 성과라는 언어로 번역되었고, 월급이라는 단위로 환산되었다. 좋든 싫든, 그 체계 안에서는 최소한 다음 달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조직은 개인의 불안을 대신 흡수해 주는 완충재였고, 나는 그 안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흔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조직 밖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좋아서 시작한 일도,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대로 멈춘다.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많았지만, 그것이 당장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 간극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생업’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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