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요] 유엑서로 일하고 싶어요 #048

by UX민수 ㅡ 변민수


하고자 하는 뜻을 제대로 구체화하지도 못했고,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아 흐릿하게 뾰족하지 못하게 흘러간 시간들. 4년간의 내 대학생활은 이렇게도 요약이 가능하다.


간혹 멘티들로부터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건 나 자신이 뭔가 잘못된 것도, 유별난 것도 아니라는 점을 먼저 전하고 싶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이들 대부분 느끼는 이 감정은, 어쩌면 ‘어정쩡했던 지난 시간’을 지나 새로운 방향을 잡고 싶다는 긍정적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방향보다 중요한 건 '움직임'


두 가지 요인이 있다. 당사자의 성격, 그리고 기획과 관련된 분야의 모호성. 이 조합으로는 뾰족한 수가 안 생긴다. 늘 조심스럽지만 방법은 단순하다. 어떤 방향을 정확히 잡기보다는, 일단은 움직여보는 것이다. 그 움직임이 비효율적일 수도 있고,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진짜 나의 기질이나 흥미가 드러나게 된다. 사실 응원이라는 것도 망해도 된다는 버젓이 보이는 실패를 향한 맹목적 지지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 UX라는 분야를 처음 접하고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 후 꽤 긴 시간이 걸려 돌고 돌아서 이 분야로 오게 될 줄은 사실 몰랐다. 기획이라는 막연하지만 어떤 내 성향이 소비될 수 있는 직무로 UX라는 걸 알고서도 한참을 외면했고, 긴 방황의 시기도 겪어야 했다.


대학생활 동안 내가 구체적으로 뭘 했는가 보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라도 어떤 방향으로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경험이다. 용기가 없다면 두려움을 외면할 줄이라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소극적이었다. 기질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과거로 잠시 갈 수 있다면 충분히 과거의 나를 설득하고 움직이게 독려할 것 같다.


그러니 아주 작고 사소한 활동이어도 좋다. 떠밀리거나 뭔가 구제되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자신감 있게 스타트업에서 단기라도 실무를 해보거나, 실제 협업 프로젝트를 경험해 보는 것. 실패를 하든 어쩌든 작지만 대단히 많은 것을 바꿔줄 수 있다고 그냥 믿어야 한다. 나는 산학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UX 업계와 지금의 회사에 감히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나마 미련한 듯 우직했던 성격 탓에 뭐든 소화하는 과정에서 얻어걸린 선물 아닌 선물이었다. 달리 말하면 본인이 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여지도 그만큼 컸단 의미도 된다. 그걸 하라는 조언이다.



롤모델 부재의 현실과 극복


나는 대학교 1학년과 4학년이 제일 좋았다. 1학년 때는 디자인(d)과였지만 디자인(D)을 만나 무척 반가웠고, 4학년에는 정말 디자인(D)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은 다 침투하며 철저히 내 시간을 보냈다. 온전히 몰두했던 희소한 시기다. 대부분이 취업을 생각할 때 나는 취업을 외면했던 이유는, 정말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회사를 향한다는 것이 마음이 동하지를 않았다. 그러니 될 리가 있을까 싶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 나를 돕는 이도 참 드물었지만, 요리조리 이끄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이렇게 붕 떠있는 경우, 그의 주변에 선험자나 롤모델이 없으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 답답하다 못해, 내가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볼수록 암담하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친했던 이들도 하나둘 멀어지며 떨어져 나갔다.


UX 분야는 특히 그렇다. 다학제적이고 경로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정해진 길을 거친 객관적인 롤모델이 사실상 전무한 분야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 건, 오히려 어떤 "롤모델처럼 되겠다"보다는 “나는 어떤 식으로 일하고 싶은가”에 대한 구체적인 액션이다.


내가 어떤 산을 정복함에 있어 새로운 등반 루트를 개척하는 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방법이다. 내 울타리를 벗어나야만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멘토링, 프로젝트 참여, 포트폴리오 피드백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다양한 현업 이야기를 접해보길 권한다.


롤모델이란, 사실 누군가의 경로를 '따라가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내 앞의 선택들을 하나하나 밟아가며 점차 ‘닮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우러러볼 존재를 찾기보단, 나와 같은 고민을 지나쳐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좇아보자. 나를 재료로 준다면, 나처럼 하지 말라는 본보기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 가치는 딱 거기까지다.



다음을 위한 출발점 만들기


되돌아보면 나도 ‘어정쩡한 시간’ 위에 지금의 커리어가 세워졌다. 그 시간들은 분명히 찬란하지 않았고, 무기력하고 막막한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지나고 나니, ‘그래서 나는 무엇을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은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이 되어준 것 같다.


어느 순간엔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몰리고 나닌 진작 그냥 막 해볼걸 이란 후회가 그제야 현실로 체감되었다. 그만큼 미련한 나였다. 내가 만나본 멘티들 대부분은 나와 같지 않은 이들이란 점이 신기할 정도로. 이 내몰림을 통해 얻은 것은, 단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선 무엇을 견디지 못하는지를 통해 내 방향을 감각적으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일종의 소거법이다.


허무함은 '하고자 했던 뜻'이 없었던 게 아니라, 뜻을 펼칠 만한 기회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그걸 나에게 강제로라도 쥐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 강제성이 남이 돼도 괴롭지만 내몰릴 수밖에 없어지면서 내가 되는 것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기회는 늘 누군가에게 더 쉽게 허락되고, 어떤 이에게는 늦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의 템포는 결코 ‘실패’나 ‘낙오’의 다른 이름은 아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너무 무거운 계획보다 가벼운 실행이 오히려 길을 열어주는 법이다. 가벼운 참여, 짧은 프로젝트, 단기 경험이라도 스스로 선택한 활동을 통해 느낀 무언가는 반드시 다음 선택을 이끄는 방향키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렸다면, 다음 장면은 아마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해봤는데도 잘 모르겠다면 그땐 나를 찾아 질문을 보내봐라.


아직 늦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이 가장 빠른 출발일 수 있다. 아주 작게라도 시작할 것. 그 안에서 분명 무언가는 나온다. 절대, 마지못해 내몰리고 크게 인생을 걸어야만 동작할 상황 속에만 자신을 빠뜨리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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