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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조.급.함.

포트폴리오도 사고파는 세상

by UX민수 ㅡ 변민수

겉절이가 하루 만에 묵은지가 된다?


갓 담근 겉절이를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잘 익은 묵은지처럼 먹을 수 있다면? 특수한 김치냉장고가 발명되거나, 액체나 가루를 넣으면 그런 맛이 난다던가 한다면 물론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초에 시간이 주재료인 음식에서 시간을 빼버린다면, 결국 그 맛은 흉내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멘토링을 할 때 이런 맥락에서, 고객(멘티)의 니즈를 고려한 비즈니스적 접근 방식 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꿀팁’이다.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아, 그렇지 그렇지!’ 하고 반색했다면, 침부터 닦고 곱씹어 봐야 한다. 그 꿀맛이 진짜 꿀맛인지 여부에 대해서 말이다.


요즘은 미식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런 이들에게 하루 만에 잘 익은 김치를 만드는 마법 같은 방법이 있다면 분명 솔깃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미식가들이 또한 과연 그 맛이 인위적인지, 자연적인지 모를까? 방금 구운 피자와 전자레인지에 돌린 피자가 있다. 기술이 아무리 좋아졌다 해도 굳이 갓 구운 피자를 일부러 식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경우는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포트폴리오에도 '자연 숙성'은 필요한 것


회사 실무자나 면접관들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능력과 평판을 떠나, 각자 익힌 감각으로 그 사람만의 ‘맛’을 감별해 낸다. 포트폴리오나 면접 답변 등이 ‘조미료 맛’인지 아닌지, 결국 다 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서 봄직하거나 학원 스타일 혹은 템플릿 의존적인 포트폴리오는 업계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


반대로, 음식 맛을 잘 모르는 사람도 간혹 ‘이건 뭐지?’ 싶은 맛있는 음식을 만나게 된다. 맛의 감각이 둔해도, 다수가 맛집이라 외치는 곳에서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단번에 공감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음식의 맛이 어떠한 객관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소위 ‘진국’ 같은 사람은 신기하게도 누구나 알아본다.


결국, 누군가에게 나를 어필할 때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내가 ‘진국’이 되는 것이 핵심이란 것이다. 그래야 그 자연 숙성된 맛을 바로 알아봐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어필이란 바로 이 진국을 선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취업 시장이 변화하면서 이제는 수많은 조미료 맛을 뚫고 진국을 찾아내야 하는 감별 능력도 덩달아 중요해졌다. 아직도 표절 포트폴리오로 의심받았던 실제 사건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연히 불합격되었지만 그 전말은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이다.



신입에게 누가 그런 일을 시켜


대학생 시절 나도 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기획자라는 포지션보다는 그러한 역할을 통해 내 의중을 일에 온전히 녹이고 싶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 기획 분야를 탐내는 많은 예비 신입 취업준비생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그러한 중요한 일을 당장 들어온 이, 그것도 경력이 없는 신입에게 내줄리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회사에서 홀로 UXer로 고군분투하는 일이 마냥 비참한 상황은 아니다. 불안하고 확신을 얻기 힘들어 매 순간의 의사결정이 힘들고 고달프겠지만, 그만큼 그 경험은 더욱 값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맛본 이들만이 향후 그와 유사한 일을 건네받더라도 거뜬히 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개인의 라이프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리더급 업무를 기피하기도 한다. 회사와 업계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직업을 선택할 때 백만장자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UX도 마찬가지다. 많이 알려진 이들의 화려한 활약상은 극히 일부의 사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초라한 단계들이 있었음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먼저 살펴라
— 세이노의 가르침 중

우리는 때때로 너무 빠른 결과를 원한다. 겉절이를 하루 만에 묵은지로 만들고 싶고, 몇 개월 만에 커리어를 완성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야 깊어지는 것들이다. 깊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노하우가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주는 숙성이다.



Photo by Vitto Sommell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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