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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D)는 부지런이 능사가 아니다

게으름과 마찰계수: 효율적 움직임을 위한 통찰 (22.02.08)

by UX민수 ㅡ 변민수

피겨 스케이터의 점프는 마찰이 적은 얼음판 위에서 이를 이용해 가속도를 내고, 다시 마찰력을 활용해 공중 회전력을 극대화하며, 점프 이후 안정적인 착지를 위해 다시 마찰력을 적절히 사용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디자인(D)을 하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사용자 경험을 최적화하기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는 진입 초기엔 직관적이고 매끄러운 상호작용(Frictionless Interation)을 제공해야 한다. 이내 사용자의 행동패턴에 맞춰 적재적소에 적절한 피드백(마찰을 통한 회전력)을 제공해 경험이 잘 흐르게 만들고, 최종적으로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마무리(마찰을 활용한 착지) 설계까지 하는 디자인(D) 흐름이란 묘하게 닮아 있다.



부지런함이 항상 답일까?


우리는 흔히 부지런한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문제가 생기면 즉각 해결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너무 부지런하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마찰계수'에 비유해서 생각한다.


마찰계수는 원래 물리학 개념이지만, 우리 삶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지나치게 부지런한 사람은 어떤 불편함을 채 느끼기도 전에 바로 해결해 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해결이라기보다는 치워버린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러다 보면 문제의 본질을 깊이 고민할 기회까지 놓치고, 어쩌면 의미 있는 해결책에 맞닿지 못할 수도 있다. 눈앞의 문제를 부지런치 치워버릇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돼도 그 부지런함으로 맞서 계속 지울 수 있다. 즉, 게을러야 마찰계수에 덜컹덜컹 걸리지, 부지런하면 마찰계수를 무시하게 된다.



게으름이 주는 의외의 장점


게으른 사람은 다를 수 있다. 움직이기 귀찮아서 불편함을 마주하는 경우기 잦다. 그 불편함을 오래 느끼다 보면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해결책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너무 게으르다면 아예 답이 없겠지만 말이다.


결국, 약간의 게으름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문제 자체를 빠르게 제거하기 바쁘지만, 그러다 보면 때론 근본적인 원인을 고찰할 기회마저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게으른 사람은 문제를 자주 마주하고 고민하다가 우연히라도 최적의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실수 같은 상황 덕분에 우리 일상의 문제가 해결된 사례는 많다. 역설적으로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마주치지 않으려면,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본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무작정 힘을 쓰면 안 되는 이유


모든 문제를 단순히 열심히 대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을 때, 밀어붙여서 없앨지, 돌아갈지, 아니면 작은 구멍을 뚫고 지나갈지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작정 힘을 쓰면 오히려 에너지만 낭비하거나 이내 문제를 쉽게 치워버릴 수도 있다. 이것이 문제라는 마찰계수를 느껴가며 문제 해결이라는 디자인(D) 행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돌덩이를 옮겨야 할 때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고 지렛대를 이용해 쉽게 옮길 수도 있다. 전자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고도 매번 어렵게 해결해야 할 수 있지만, 후자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효율성까지 얻은 결과다. 이는 단순한 힘의 문제가 아니라, 마찰계수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다루느냐의 문제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지혜로운 솔루션을 위해서는 마찰계수를 직접적으로 경험해봐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도 나와 같을까?


사람마다 느끼는 마찰계수가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멈춰 서고, 어떤 사람은 큰 벽 앞에서도 끊임없이 나아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속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왜 멈춰 있는지 혹은 왜 그렇게 천천히 가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부지런한 사람은 "왜 저 사람은 빨리 해결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게을러서 일 수도 있겠지만) 그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며, 최적의 해결책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감지하는 마찰계수값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남을 쉽게 평가하는 것은 그래서 무의미할 수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적당한 게으름은 오히려 디자인(D)의 재료이자 덕목이 될 수 있단 점이 아닐까 싶다.



적절한 게으름이 필요한 이유


때로는 일부러 멈추고, 게으름을 즐길 필요가 있다. 서두르지 않고 불편함을 충분히 느껴보면서, 정말 해결해야 할 핵심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지루한 과정이 어쩌면 중요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순간에 효과적으로 움직여 문제를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게으름은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움직일 최적의 타이밍을 찾고, 적절한 힘을 써서 마찰계수를 극복하는 지혜와 방법을 배우는 찰나일지도 모른다. 너무 부지런해서 마찰계수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약간의 게으름 속에서 마찰계수를 느끼며 이해하고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Photo by Bethany Leg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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