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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가 돼라! 멘토가 되자!

멘토십에서 코-멘토링으로

by UX민수 ㅡ 변민수


교육이란 가능성 발현의 과정


감히 교육의 '교'자도 잘 모를 내가 교육이 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글쎄, 내세울 자격요건은 지난 9년 간의 꾸준했던 멘토링 활동의 자취밖에 없다지만, 혹여 누군가에게는 박수를 이끌 일이 될 수도 있을터. 어떻게 보면 멘토링에 대한 포부와 이상에 대한 고백을 에둘러 교육이란 표현에 묻혀 꺼내는 과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통해 ‘길러낸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길러낸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을 제대로 발현하도록 돕는 과정에 가깝다 경험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식물이 저절로 자라날 수는 없다. 반드시 씨앗이 심어져야 싹이 트고 성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육은 ‘씨앗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씨앗을 전제로 한 이후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교육의 첫 단계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가급적 좋은 씨앗을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씨앗이 최적의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적절한 생장법을 적용하는 것에 있겠다.



맞춤형 성장 지원의 중요성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씨앗이 다 같은 방식으로 자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씨앗은 햇빛이 많아야 하고, 어떤 씨앗은 그늘에서 더 잘 자란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씨앗이 있는가 하면, 너무 과하게 주면 오히려 뿌리가 썩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즉, 각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맞춤형 성장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될성부른 싹’을 구별하는 것이다.


무조건 노력한다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석유가 없는 땅을 아무리 열심히 시추해도 석유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가능성이 없는 곳에 무작정 투자하는 것은 결국 자원의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적 자원은 유한하며,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성장에는 결정적인 타이밍이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싹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채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


결국 맞춤이란, 상대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서비스 정신도 맞겠다. 하지만 표면을 뚫고 보다 내부로 들어가면 교육의 입장에서 보다 유의미한 싹이라는 가능성 여부가 실은 판가름 날 수 있다란 어찌 보면 꽤 무서운 뜻도 포함된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육자는 서비스로서 만인을 대하되, 내심 교육자의 눈높이에 맞을 이를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다는 소리다.



평가와 점검 그리고 투자


또한 교육은 그 한 번의 선택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벤트가 결코 아니다. 될성부른 싹을 선별한 이후에도 그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해주는 꾸준한 점검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평가 과정이다. 단순히 줄 세우기식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지원의 방향을 조정하고, 교육이라는 투자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자원을 투입하는 행위이며, 이는 투자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투자에는 항상 감독과 관리가 수반된다. 일종의 ROI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과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과정이 필연적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신생 기업에 대한 투자가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전략적 피드백이 필수적이듯, 교육 역시 감독과 관리를 통해 기대한 성장을 실현해야 한다. 교육이 겉으로 보기에는 지원이나 가르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명확한 투자 행위다. 제대로 된 투자라면, 계획과 실행뿐 아니라 결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멘토라는 자의식이 준 새 시력


시스템과 체제가 허락하는 시기가 유한해서 우리가 체감을 못해서지, 커리큘럼은 멈춰도 투자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아무리 가능성이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방치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지원하면 기대한 만큼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종의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교육을, 가능성을 키우고 가치를 창출하는 투자 활동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 전체에 걸쳐 체계적이고 책임 있는 감독과 관리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교육이 개인의 성장을 넘어 사회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근데 이걸 누가 할 것이냐?


내 경험담으로는 위의 물음에 대해 멘토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서두에 언급한 9년 여 시간은 나 스스로에게 자연스럽게 도대체 멘토가 뭐고 누구지?라는 자문자답을 계속하게 만든 감투 아닌 감투였다. 심지어 누가 씌운 적도 없다. 다만, 어느 순간 자의로 인정하기 전까지 작지만 타의의 인정이 몇 차례 있었다. 나는 이 과정을 멘토라는 '자의식'이라 표현하곤 한다.


어찌 보면, 나에게 면밀하게 여러 루트로 투자돼 온 내 삶의 교육적 자원들이 여차저차 나 스스로를 감독관으로 임명하게 이끌어 그 투자 효용을 스스로 빛내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기똥찬 자웅동체를 멘토라고 표현하며 스스로 그 정의의 발자취를 열심히 찍어온 여정이었다. 이런 경험을 한 이라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따를 수밖에 없다. 분명 우리 포유동물처럼 늙어가는 생명체도 있는 반면, 나비처럼 완전히 유년시절과는 다르게 새로 태어나는 생명체도 있는 것이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나 같은 사람 어디 없나 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에 지나지 않게 된다.



Co-mentoring을 통한 멘토링 생태계 구축


한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지원하는 과정은 결국 그 사람을 스스로 성장하게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그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이어지는 연결이 진정한 교육의 힘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성장은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은 주변과 사회로 확장된다. 이런 흐름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확장되었다.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차원을 넘어, 함께할 멘토를 키워내고, 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공동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제는 개별적인 멘토링을 넘어서, 멘토가 될 사람들을 함께 육성하고 싶다. 이들은 단순히 멘티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배움을 토대로 새로운 멘토가 되어 다시 누군가를 이끌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며 점차 그 규모가 확장되고, 각기 다른 배경과 경험을 지닌 멘토들이 모여 서로의 시각을 나누고 배우는 멘티는 이로써 Co-mentoring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내가 꿈꾸는 잠정적 이상이다.


사실 어떤 멘티들은 더 이상 멘티라 부리기 애매한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 역시 나를 부르는 호칭을 모호히 여길 때를 종종 느끼곤 한다. 너무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몇 번 이러한 상황을 겪고 나니 주니어가 어느 참엔가 시니어가 되어 있는 것 마냥, 멘티도 멘토가 되어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아직까진 상상 속 이야기로 현실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내가 그리고 있는 최종적인 목표는 이 교육을 통해 선발되고 성장한, 사실상 속아진 사람들이 명실공히 멘토가 되어 다시금 그 역할을 이어가는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멘토들이 함께 모여,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더욱 넓은 시야로 멘티들을 지원하는 Co-mentoring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이 멘토링을 하는 것을 넘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지속 가능한 멘토링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내가 꿈꾸는 최종적인 모습이다. 그저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일까?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나의 훌륭한 멘티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Photo by MD Dur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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