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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척력

악마란 없다. 다만 살아있음이 악마다.

by UX민수 ㅡ 변민수

살면서 내가 내린 대부분의 선택은 사실 별게 아닌 경우가 많다. 크게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없이. 대체로 평범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기에. 그런데도 문득 돌아보면, 그 조심스러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악을 만들어왔는지 깨닫게 된다.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 날, 사실 내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니고, 그저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잠깐 기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눈 감음 속에서 나만의 평온을 위해 누군가의 고단함을 밀어낸 셈이었다.


지인의 실수를 알면서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갔던 적도 있다. 내가 말하지 않음으로써 손해 볼 일은 없었고, 오히려 그렇게 두는 편이 나에게 조금 더 유리했다. 나는 침묵을 택했고, 그 침묵은 나를 보호했지만 다른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날엔, 누군가의 기쁨 앞에서 억지 미소로 박수를 친 적도 있다.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한 내 마음이 부끄러웠고, 그러면서도 ‘다들 이런 거지’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진심을 포기한 날들 역시, 내 안의 작고 보잘것없지만 악마였다.


이런 일들은 너무 사소해서, 심지어 악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악마 아님’들이 모여서, 결국 누군가를 조금 더 외롭게 만들고, 세상을 아주 조금 더 차갑게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당연히 누군가 역시 나에게 그러한 일들을 수없이 해오고 있었을 것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착한 사람이 되라는 지침은, 엄청 나쁜 짓은 하지 않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작은 악마군단을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러니 아이러니하다. 나를 괴롭히는 건 내가 하지 못한 큰 죄가 아니라,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해 왔던, 아주 작고 조용한 결정들이었다는 것을.


그 선택들엔 공통점이 있었다. 늘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편하기 위해' 누군가를 조금 밀어내는 것이었고, 그건 삶이라는 이유로, 보잘것없다는 이유로 쉬이 용서되곤 했다. 그래 비단 나뿐이랴. 그렇게 살아왔고, 그 삶의 방식은 언제나 누군가의 조용한 손해를 밟고 서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그래서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조금씩 짓누르는 일의 반복 같다. 사용자를 배려한다는 미명을 위해선 때론 개발자분들을 괴롭혀야 한다. 삶의 본질이 어쩌면 폭탄 돌리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니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그 무게는 우리가 어쩌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추구해야 할 것은 절대선이 아닌 것 같다. 평범한 이들을 끌어당기는 건 거대한 악이 아니다. 아주 작은 자기 중심성과 반복된 자기 보호의 선택들. 그건 불타는 형벌이 아니라, 매일을 살기 위해 조금씩 내려앉는 양심의 무게였다. 너는 지옥 오지마 깜냥도 안되니까 그렇지만 수준 이하의 악마야 이런 메시지. 이것을 나는 지옥의 척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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