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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가 되길 권하는 이유

디자이너의 완성

by UX민수 ㅡ 변민수

* 이 글에서의 디자인, 디자이너는 d/D를 포괄하는 전체상을 전제로 함


나에게 있어 멘토링이란, 호기심에서 시작해 진지한 취미가 되더니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내 삶과 커리어에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멘토가 된다는 것은 ‘디자이너의 완성’이라 고까지 생각한다.

- p.281 에필로그 '질문이 멘토를 만든다' 중



성장의 되새김질


디자이너는 피드백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클라이언트나 동료의 의견, 사용자의 반응을 빠르게 반영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든다. 그러나 자신의 성장을 되돌아보는 데에는 오히려 인색한 편이기도 한다. 나는 멘토링을 하면서 처음으로 제가 겪은 시행착오와 경로들을 다시 꺼내 정리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제 안의 성장 서사를 되짚을 수 있었다.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내가 어떤 디자이너인가’를 성찰하는 시간이 된 셈이다. 이런 되새김질은 어느 회고보다 밀도 높았다. 멘티의 질문이 없었다면 꺼내지 않았을 생각과 문장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멘토링이 경험의 반복이 아니라 확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전 감각의 재구성


실무 10년 차를 넘기고 나면, 나도 모르게 ‘선수들끼리 통하는 말’만 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맥락 없이도 대화가 되는, 하지만 비전문가에게는 낯선 말들. 그런데 멘토링을 하다 보면 그 말들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사용성 테스트요? 그건 이제...” 하며 건넨 말이 멘티에게는 ‘도대체 뭐죠?’라는 표정으로 되돌아온다. 그럴수록 저는 내가 몸으로 익혀온 감각을 언어로 명확히 정리해야 했다. 익숙함에 묻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던 개념들을 멘티의 눈높이로 다시 풀어내는 과정은, 내 일상의 UX 언어를 점검하는 일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멘토링은 나 자신의 ‘디자인 사고’를 리디자인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넘는 디자인


디자인은 타인을 위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종종 자신의 커리어와 스킬 향상에만 집중하곤 한다. 멘토링은 ‘나를 위한 디자인’에서 ‘누군가를 위한 디자인’으로 시야를 전환시킨다. 경험을 전달하는 일은 결국 상대의 여정을 가늠해 보고, 그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기에 일종의 서비스 디자인이기도 하다. 저는 멘토링을 하면서 더 나은 답변을 위해 참고자료를 찾고, 질문의 본질을 고민하며, 멘티가 겪을 상황까지 설계하게 된다. 그 과정이 마치 사용자 페르소나를 만들고 사용자 여정을 그리는 일과 흡사하다. 이쯤 되면 멘토링은 가장 인간적인 UX 실천이 아닐까 싶다.



인간관계의 UX 실천


상대방에게 의미 있는 멘토란 결국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는 자질을 뜻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내가 과거에 원했던 선배의 모습이 되는 것, 그것이 멘토링이다. 묻지 않아도 눈치채고, 알려주지 않아도 살펴봐주는 존재. 이런 사람은 동료로서도 귀하고, 팀워크에서도 신뢰를 쌓는다. 나는 멘토링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맥락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디자인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면,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조율하고 풀어가는 경험은 분명 UX에 도움이 된다. 멘토링은 단지 친절한 설명이 아니라, 공감하고 설계하는 일이며, 그 자체가 UX 실천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완성


멘토링을 통해 얻은 것은 단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디자이너’라는 직함에 부족했던 마지막 한 조각을 채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가능성을 매만지는 일이다. 멘토링은 그 가능성을 다른 사람에게도 확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순간 나는 디자이너로서 완성에 다가서고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의 성장을 설계하고, 그 여정의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디자인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실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멘토가 되어보세요’라고 권한다. 그건 결국, 나 자신을 더 완성된 디자이너로 만들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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