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스형 행성을 닮은 UXer

형태보다 중심이 중요한 직무의 본질

by UX민수 ㅡ 변민수

UX 직무를 설명할 때 나는 종종 이런 비유를 꺼낸다.


공무원이 암석형 행성이라면, UXer는 가스형 행성

처음엔 다소 엉뚱하거나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한 문장 안에는 UX라는 역할이 가진 유연성과 복잡성, 그리고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심'에 대한 본질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비유를 더 잘 이해하려면, 먼저 행성의 과학적 분류를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태양계에 존재하는 여덟 개의 행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지구처럼 고체 표면을 가진 '암석형 행성(terrestrial planet)', 다른 하나는 목성이나 토성처럼 내부에 작은 핵만 존재하고 외피는 부풀어 있는 '가스형 행성(gas giant)'이다.


전자는 경계가 명확하지만, 후자는 어디까지가 행성인지조차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구조가 다르면 존재 방식도, 생존 방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어떤 직업은 경계가 뚜렷하고 단단하며, 또 어떤 직업은 역할이 일정하지 않고 모호하다. 마치 행성이 그렇듯이 말이다.



직무의 구조에 따른 존재 방식


암석형 행성과 닮은 직무들이 있다. 구조가 명확하고,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며, 제도 안에서 작동하는 일자리들이다. 공무원, 교사, 회계사, 연구원 같은 직업군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직무는 진입장벽이 명확하고, 경력이 쌓일수록 승진이나 보상도 일정한 흐름을 따른다. 성장의 경로는 계단식이며, 필요한 역량도 정량적으로 정의된다. 물론 이런 직무 방식이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안정적인 틀 안에서 덜 흔들리며 일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반면, UX 직무는 다르다. 같은 'UXer'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도, 어떤 조직에서는 사용자 리서치를, 또 다른 곳에서는 GUI 설계나 BX 브랜딩을 전담하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이름 아래에서도 화면 설계부터 서비스 전략까지 전혀 다른 역할을 요구받는 일이 많다. 업계 전체를 바라보자면 고정된 역할이란 없다. 그래서 UXer는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어떤 틀에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만의 역할을 그려내는 일’에 가깝다.



중심을 가진 사람만이 궤도를 유지한다


가스형 행성은 외형만 보면 불안정하고 경계도 모호하다. 실제로 표면이 없어 끊임없이 요동치며,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형태마저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작지만 단단한 중심핵이 존재한다. 이 중심이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만의 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


UXer도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보기엔 애매한 역할이고, 조직 안에서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유동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은 결국 자신의 ‘중심’에서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중심이란 특정 툴이나 스킬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싶은 사람인가?

나는 사용자의 어떤 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나는 어떻게 문제를 풀고 설명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본 사람만이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 수 있다. 중심이 단단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수직이 아닌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성장


UX 직무의 커리어 경로 역시 일반적인 직무와는 다르다. 대부분의 직무가 계단식 혹은 수직적 모델을 따른다면, UXer는 한 방향으로만 쌓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며 퍼져나간다. 일종의 방사형 성장 모델이다.


처음에는 GUI 중심의 디자인(d) 업무를 하다가도, 사용자 리서치로, 또 브랜드 설계로, 나아가 서비스 전략까지 자신의 활동영역을 넓혀가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경험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고유한 UX 언어와 관점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UX 커리어에서 중요한 것은 직급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자기 인식이다. 퍼져가는 확장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UXer다.



다학제적 환경에서의 자기 설명력


UX 조직은 유독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심리학, 언어학, 컴퓨터공학, 산업디자인,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이 UX라는 교차점에서 만난다. UX 자체가 다학제적이고, 여러 관점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UXer는 서로 다른 전공 언어와 사고 방식을 가진 동료들과 협업해야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관점을 ‘설명 가능한 형태’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중심이 없으면 쉽게 휘둘린다. 자신의 기준 없이 업무에 참여하면 결국 타인의 기준에 의존하게 되고, 역할이 명확하지 않을수록 정체성을 잃기 쉽다. 반대로 중심이 선명한 사람은 애매한 상황에서도 기여할 지점을 스스로 정의해낸다. 중심을 가진다는 것은 곧 ‘설명 가능한 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기


이쯤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UXer로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정체성을 다시 묻는 일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화려하거나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단순하고 반복적인 질문이 중심을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어떤 문제에 끌리는가?

나는 사용자의 어떤 순간에 민감한가?

내가 가장 잘하는 UX는 어떤 영역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조직이든, 어떤 프로젝트든 중심을 잃지 않고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조직은 바뀌고, 역할도 바뀌며, 툴도 계속 달라진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UXer라는 직무의 본질적인 생존 방식이다.



형태 없는 직무에서 살아남는 방식


UX 직무는 정의되지 않는 역할, 기준 없는 평가, 불완전한 경계 속에서 지속된다. 그래서 입문하는 사람에게는 막연하고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직무가 가진 유연성과 확장성은, 중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오히려 강력한 기회가 된다.


UXer는 형태가 없는 직업이다. 그러나 형태가 없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가능성은 중심이 있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UXer로서 살아가는 이 길 위에서, 당신은 어떤 중심을 지니고 있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