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이는 사람'이기를 멈추고 싶었던 순간에 관해
한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너 아니면 안 돼.”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나는 하루를 버텼고, 밤을 새웠고, 내 한계를 조금씩 갉아먹는 줄도 모른 채 움직였다.
사람들은 나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 맡기면 안심이 되는 사람.
그 말들이 고맙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런 말에 목말라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마치 나의 존재가 정당해지는 기분이었다. 일로, 관계로,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그렇게 필요에 부흥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움이 될수록, 고맙다는 말을 들을수록, 나는 조금씩 가벼워져야 할 것만 같은데… 점점 무거워졌다. 자꾸만 나를 부르는 말들에 밀려, 나는 내 목소리를 잃어갔다.
부르면 달려갔고, 부탁하면 도왔고, 기대하면 맞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에게는, 그 '나'를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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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나는 ‘자기 동력’을 잃고 있었다.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누군가 원하거나 기대하는 일들을 먼저 처리하고 있었다. 어느새 내 하루는 요청으로 시작해, 반응으로 끝났다.
이름이 불리면 반응하고, 메시지가 오면 답장하고, 누군가의 피드백을 처리하고, 누구의 일정에 나를 맞췄다.
‘부탁’을 거절하면 미안했고, ‘응답’을 미루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유능한 사람으로, 따뜻한 사람으로, 일 잘하는 사람으로 남길 바라면서.
그런데 그렇게 산다는 건, 매일 나를 조금씩 비워내는 일이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나는 점점, 내가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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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몸이 먼저 멈췄다.
사소한 일도 피로했고, 아무 말도 하기 싫었고, 듣는 것조차 버거웠다.
누가 나를 불러도, 이름을 들어도,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몰랐다. 내가 지금까지 버텨온 힘은 애정도 열정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유용하다는 착각이었단 걸.
사람들은 그걸 ‘번아웃’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마뜩잖았다. 번아웃은 너무 깔끔하고 기능적인 이름 같아서.
내가 느낀 건 단순한 고갈이 아니라, 쓸모로만 존재하던 인간이 더는 기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이었다.
몸이 무거운 게 아니라, 삶의 이유가 무거워졌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뭔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고 싶지 않았다.
욕구가 아니라 의무로만 쌓여 있는 나날은, 언젠가 생존 본능마저 갉아먹는다.
나는 더 이상 반응하는 존재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로 또 무언갈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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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연습 중이다.
쓰이지 않아도 괜찮은 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허락받을 수 있는 나를.
한때는 무용한 존재로 사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요즘은 안다. 진짜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쓸모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라는 걸.
어쩌면 그렇게 무용한 날들이 있어야, 인간은 조금 덜 부서진 채로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전에, '나'에게 먼저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나'를 다시 불러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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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아니라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 마음,
나도 이제 조금은 이해, 아니 절실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