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로도 '디자이너'로도 불리지 못하는 존재감
안녕하세요, 멘토님. 저는 콘텐츠 마케터로 3년간 일한 후, 사용자 경험에 매력을 느껴 UX 리서치와 설계 관련 공부를 시작한 30대 중반의 직장인입니다. 하지만 아직 현업 전환까지 이르지 못한 채 “UXer도 아니고, 마케터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 머무는 기분입니다. 리서치/전략 쪽 UX 커리어를 생각하고 있지만 디자이너(d)처럼 툴이 능숙하지도 않고, PM처럼 조직을 리딩한 경험도 부족해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내가 UXer라고 말해도 되나?’라는 정체성 고민과 함께 어떤 역량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 “UXer도, 마케터도 아닌”이라는 말에서 멘티님의 혼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지금 멘티님이 겪는 모호함은 UX라는 직무의 특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정체성 고민은 커리어 전환자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통과의례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당연하니 걱정 말라고만 할 순 당연히 없겠죠. 나름의 생각을 전해보겠습니다.
UX는 ‘문제 정의-아이디어 설계-검증 및 전달’이라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직무입니다. 어떤 이는 리서처로, 어떤 이는 인터페이스 설계자로, 어떤 이는 PO나 전략가로 포지셔닝되어 활동합니다. UXer는 역할과 소속에 따라 정체성이 전혀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도, 조직도, 그를 정확히 무어라 불러야 좋을지 잘 모르겠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바꿔 말하면, 내가 정체성을 세우는 게 어쩌면 본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혼란스러운 것은 오히려 매우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지금은 멘티님이 전환기의 모호한 구간에 있는 것이지,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일단 업계에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통해 UXer 혹은 그에 준하는 타이틀을 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나의 욕구와 일치되지 않더라도 말이죠.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아 보입니다. UX는 시작점보단 지나온 궤적과 마지막이 더 중요한 커리어 방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콘텐츠 마케터 출신의 강점은 리서치와 커뮤니케이션에서 드러납니다. 사용자 페르소나를 그려본 적이 있다면, 이를 UX 리서치로 확장할 수 있고, A/B 테스트나 유입분석을 해본 경험은 사용자 데이터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마케팅도 마케팅 나름일 것입니다. 정확히 어떤 경험을 해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서치/전략을 염두하고 계신 것으로 보아 기획형 디자이너(D)이길 원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입증할 경험을 모아 내가 목표한 직무와 직군을 정조준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경험을 ‘UX 관점으로 번역하기' 까다롭다는 점이겠죠. 즉, 내가 UX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은 없더라도, 업무 중 했던 고민과 판단을 ‘사용자 중심 사고’라는 언어로 바꾸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게 의미 있을까 싶더라도 그렇게 해봐야 합니다. 이때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글쓰기보다도 ‘UX 전달력’이 중요합니다. 조직 내에서 UX적 관점을 잘 설득하고 조율한 경험이 있다면 이것도 분명 실전 역량입니다. 무턱대고 포장을 하라는 게 아니라 잘 '연출'을 할 필요가 있단 것입니다.
툴은 회사의 업무 방식과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조직에는 툴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맥락이 흐를 수도 있고, 어떤 조직은 과도기에, 어떤 조직은 배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리서치 기반 UX 커리어를 목표로 한다면, 피그마보다 중요한 건 인터뷰, 설문, 시나리오 작성, UT 설계, 리서치 보고서 작성 능력입니다. 이를 툴 수준에서가 아니라 “리서치의 목적 → 설계 → 분석 → 전달”의 흐름으로 잘 표현해 낸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직결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가진 걸 활용해 최대한 '연출'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접점을 만들고 이를 통해 푸시해보셔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부족한 부분 중에서도 뭘 해야 하나 스스로 우선순위를 감잡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전략적 UX를 지향한다면, 비즈니스와 사용자의 언어를 동시에 다룰 수 있어야 하므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서비스 모델링, 문제 정의 경험이 역량과 연결됩니다. 이 과정에서 ‘UXer가 되겠다’는 선언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자 경험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정리하면 툴은 기본, 남들 수준이어도 충분하고 실은 내가 가고자 하는 포지션의 직접적으로 원하는 역량이나 경험을 했는지가 관건이기에, 이전 활동에서 이를 잘 추출해서 어필해 내는 '연출력'이 관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말이 쉽지, 어려운 과정임엔 틀림없습니다.
‘UXer인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자 경험 향상에 기여하고 싶은가입니다. 어떤 이는 리서치로, 어떤 이는 기획으로, 어떤 이는 비즈니스 전략 수립으로 기여합니다. UX 타이틀이 없이도 하고자 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이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멘티님은 콘텐츠 마케팅에서 시작해 리서치 기반 기획자로 가고 싶은 방향이 있는 만큼, 전직의 언어를 새롭게 재해석해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무엇으로 불리고 어떤 타이틀이 주어지고도 중요하지만 커리어는 내가 만들고 선언하기에 따라서도 색깔을 다르게 가져갈 수 있는 대상입니다.
만약 보다 직접적인 경험을 선보이고 싶으시다면, 이를 위해 한두 개의 리서치 기반 프로젝트라도 기획해 직접 실행해 보세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충분합니다. 사용자 인터뷰나 설문을 통해 페인포인트를 도출하고, 시나리오 기반 개선안을 문서화하는 방식으로요. 잘하고 잘하고 싶은 그 모습을 담아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UX 방식’을 정립할 수 있고, 목표도 조금씩 다듬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멘티님은 이미 “왜 이 길을 가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고, 이는 많은 전공자 UXer들보다 강력한 내적 동기일 수 있습니다. 이름을 얻기 전에 방향을 먼저 잡는 것이 UX 커리어의 출발입니다. UXer가 되겠다는 선언보다,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어쩌면 원하시는 상황 속에 이미 들어와 계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민은 꼭 해소하실 수 있길 바라며, 그 여정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