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전공 vs. 불전공

언어가 규정하는 가능성과 자격의 미신

by UX민수 ㅡ 변민수
비합리적은 있는데 불합리적은 없다
비합리주의 있는데 불합리주의 없다

불은 없다 = 0
비는 아니다 부족하다 ≠ 100

불가능 = 0
비가능 ≠ 100

따라서,

비전공은 가능
불전공은 불가능


말의 앞자리에서 세상은 갈린다


비합리는 있다. 불합리도 존재한다. 비합리주의는 철학이 되었고, 사유의 입구가 되었지만, 불합리주의는 어색한 조합으로만 남아 있다. 어감의 차이인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不)’과 ‘비(非)’는 단순한 접두사가 아니다. 이 둘은 언어가 세상을 나누는 방식, 나아가 가능성과 불가능을 설정하는 방식 그 자체다.


‘불’은 단정한다. 아예 없음, 못함, 안 됨을 뜻한다. 말 그대로 ‘0’이다. 그 앞에서는 어떤 가능성도 출입할 수 없다. 문은 닫히고, 상황은 봉인된다. 반면 ‘비’는 구분한다. ‘아님’, ‘다름’, 혹은 ‘범주 밖’에 있다는 의미다. 100은 아니지만, 0도 아니다. 이 둘은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작동 방식이 다르다. 하나는 가능성을 가두고, 다른 하나는 그 바깥을 상상하게 한다.


이를테면, 불가능은 절대 안 되는 일이다. 불가능은 단어 자체로 금지를 선언하고, 그 선언은 다시 시도를 막는다. 하지만 비가능은 가능은 아니지만, 곧바로 불가능이라 단정할 수도 없는 상태다. ‘비가능’은 사전에 등재된 단어는 아니지만, 개념적으로는 분명 유효한 틈새를 형성한다. 현실은 종종 이 ‘비가능’이라는 회색지대에서 시작된다. 언어는 이를 인정하지 않지만, 경험은 언제나 그 틈을 먼저 발견한다.


이처럼 말의 앞자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세계관의 진입로다. 그 한 음절이 문을 닫을 수도, 새로운 여백을 남길 수도 있다. 언어는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게 가능성을 관리하고 있다.



비전공은 있지만, 불전공은 없다


비전공은 가능하다. ‘비전공자’는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누군가의 출발선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사람의 가능성을 판단할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아님’은 결핍이 아니라, 종종 접근의 다른 방식일 수 있다. 비전공자란 말은, 안쪽이 아닌 바깥에서 시작했다는 의미이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선언은 아니다.


반면 ‘불전공자’라는 말은 없다. 사전에도 없고, 관용적으로도 쓰이지 않는다. 왜일까? 단순히 어색해서가 아니다. 불전공이라는 개념은 성립 자체가 어렵다. 전공할 수 없다는 전제가 들어 있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학습 능력과 유연성을 부정하게 된다. 누구나 새로운 분야를 배울 수 있고, 관심을 품고, 전환할 수 있다. 불전공이란 말은 이러한 가능성 자체를 봉쇄하기 때문에, 언어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 대조는 비와 불의 철학적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는 아직 도전하지 않은 상태일 뿐이고, 불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비전공은 가능하지만, 불전공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말을 쓰지 않는 이유는, 그 개념이 인간의 조건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비전공자’라는 가스라이팅


우리는 흔히 비전공자라는 말을 쓰곤 한다. “나는 전공자는 아니다”라는 말에는 때로 조심스러운 자기소개가 담겨 있고, 새로운 접근을 위한 전제가 되기도 한다. 다소 겸손의 표현 같기도, 혹은 자신이 속한 위치를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방식 등 각자의 상황에 맞게 통용된다.


하지만 이 단어는 동시에 선도 긋는다. 나는 중심이 아니고, 자격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꼬리표처럼 붙인다. 비전공자는 가능성의 언어이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주변에 고정시키는 말이 되어버렸다. 마치 ‘불전공자’처럼 말이다.


말했듯이 불전공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전공할 수 없다는 전제는 인간의 맥락과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분명 비전공자란 가능성을 열어두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단어를 점점 경직되게 쓰고 있는 점을 발견한다. ‘비’의 여백을 ‘불’의 단정함처럼 다뤄버리는 것이다.


전공의 기준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학위나 전공 명칭이 더 이상 전문성의 유일한 증거가 아니다. 실무 경험, 독학, 전환 학습… 다양한 경로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비전공자라 부르며, 자격의 언어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 그 말이 열어주던 문이, 언젠가부터 닫힌 프레임이 되고 있다.



말은 사람을 규정하고, 사람은 언어에 갇힌다


비전공자는 실은 되고자 하는 자다.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는 표현이면서, 동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자꾸만 중심에서 멀어진다. 말은 스스로를 어떤 위상으로 고정시키고, 그 고정은 곧 자격의 틀이 된다.


비전공자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결핍의 이미지를 갖는다. 마치 무언가가 빠져 있어야만 정의될 수 있는 것처럼, 정체성을 타인의 틀로 채우려 한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 많은 것을 누락시킨다. 호기심, 열망, 실패, 도전, 관찰, 감각, 실험, 전환… 이 말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빈 공간으로 압축해 버린다.


말은 이렇게 작동한다. 사람을 감추고, 가능성을 가둔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이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비전공은 가능하지만, 비전공자라는 말은 그 가능성을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한 이름이다. 그것은 점차 사라질 말이며, 언젠가 웃으며 돌아볼 단어다.



말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


언어는 세상을 나눈다. 그리고 그 나눔은 사고의 습관이 된다. 어떤 말을 쓰느냐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태도다. 스스로를 비전공자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내가 되지 않은 무엇’을 먼저 상정한다. 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그것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 즉 인간의 감각과 호기심을 완전히 포획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영역에서 배우고, 전환하며, 연결된다. 그 가능성은 자격의 언어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자란다. 불을 경계하고, 비를 넘어서, 이제는 이름 없는 가능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말을 발명할 시점에 서 있다. 그것은 더 이상 결핍을 전제로 하지 않는 말이다. 전공도, 비전공도 아닌, 그 어떤 언어보다도 더 넓고 유연한, 가능성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 아직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그 말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