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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란, 종이 위의 ‘경력 오마카세’

오직 지원 포지션과 면접관만을 위해 조리된 커리어 편집본

by UX민수 ㅡ 변민수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


이력서를 단순한 경력의 나열로 여긴다면 그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문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는 이력서를 ‘편집된 인생의 압축본’으로 본다. 실제로도 인사담당자나 실무자는 이력서를 통해 그 사람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판단력, 전략적 사고,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가늠한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나열하기보다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핵심 스토리’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UX 분야의 지원자라면 ‘사용자 중심 사고’나 ‘문제 해결 능력’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기 때문에, 이를 드러낼 수 있는 경험 위주로 재구성해야 한다. 단순히 프로젝트가 많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 프로젝트를 선택했고 어떤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 즉, 나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경험을 선별하고, 그것이 현재의 목표와 연결되는 서사를 만드는 일이 바로 ‘편집’이다.



불안해도 과도한 과거 회고는 지양


나 역시 이력서를 작성할 때마다 과거의 경험 중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고민이 많았다. ‘이 경험이 부족하진 않을까’, ‘이건 너무 오래된 경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력서나 포트폴리오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내 의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나의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멘티 분들 중에는 학창 시절 경험이나 전공과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 경력까지 다 넣으려 하시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보다는 해당 직무에 있어 어떤 경험이 전략적으로 효과적인지를 판단해 선택하고 편집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구성된 이력서는 보는 이에게도 신뢰를 주게 된다. 무엇보다 본인이 왜 그 경험을 넣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설명에 납득이 가야 진짜 ‘편집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UX 포지션이라면 더더욱 맥락이 중요


UX 직무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이력서나 포트폴리오에 있어서도 ‘사용자 중심’이라는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 즉, 이 문서를 읽는 인사담당자나 실무자가 ‘이 사람은 우리 조직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포트폴리오 역시 단순히 예쁜 결과물의 나열보다는, 문제 정의부터 사용자 분석, 과정 중 겪은 갈등, 해결책 제시 및 최종 임팩트까지의 ‘맥락’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예쁜 문서가 아니라 읽히는, 설득력 있는 스토리라는 점에서 편집의 본질과 닿아 있다.


따라서 어떤 조직에 지원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 경험을 조금씩 수정하고 포맷을 재정비하는 ‘편집의 반복’이 필요할 것이다. 같은 프로젝트라도 발표 대상에 따라 시각 자료와 키 메시지를 달리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이 익숙해지면 점점 더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단순한 자료가 아닌 ‘전략서’가 되어가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모든 회사에 이렇게 공을 들이긴 힘들다. 그래서 지원 도메인이나 산업을 묶으면 준비가 한층 수월해진다. 이 모든 것이 다 전략이다.



포장보다는 전략, 진실된 해석의 힘


경우에 따라선 ‘없는 경험을 부풀려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이 역시 ‘편집’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허위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경험이라도 어떤 시선으로 해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달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한 조교 활동도 ‘조직 내 학생(구성원)과 교수(이해관계자)의 니즈를 조율하며 콘텐츠 전달 방식에 대한 실험을 반복했다’고 해석해 내면 UX 관점에서 의미 있는 경험으로 풀어낼 여지가 발생한다. 억지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게 어려운 일인데, 아무런 시도도 없는 것보단 여지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의 흔적이라도 있는 게 난 낫다고 본다. 어차피 면접을 보면 억지인지 아닌지 대략 들통나기 마련이기에. 결국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그 해석이 지금 지원하는 조직과 직무에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핵심이라는 뜻이다.



면접관 입맛은 날 것의 경험보단 맥락


내 경우 이력서나 포트폴리오를 볼 때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보다, 그 경험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역할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려고 한다. 화려한 겉포장이 아니라 그 안의 논리, 설득력, 스토리라인이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다. 인생을 편집한다는 건 결국 과거의 장면 중에서 미래를 위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장면들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는 단순히 인생을 요약한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의 해석이다.


물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처음에는 삐걱거릴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번 써보고, 다양한 피드백을 받고, 실제로 인터뷰를 경험하면서 점점 더 날카롭고 진정성 있는 편집이 가능해질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고 얘기를 직접 들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얻은 편집본은 결국 진짜 나를 커리어적으로 잘 보여주는 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력서는 결국 정답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보여주기 위한 가장 정제된 형태의 문서라는 점에서, 단순한 경력 요약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판단을 해왔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여야 한다. 그것이 곧 ‘편집된 인생’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면접관이 보고 싶어 할 내용을 족집게처럼 잘 뽑아낸 일종의 ‘경력 오마카세’여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이라는 단어는 꾸밈이 아닌 ‘선택’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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