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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로 하는 커리어 낚시

by UX민수 ㅡ 변민수

커리어가 만약 극악하고 아주 잔인한 악당 아니 악마라면, 우리는 어떤 무기를 들이대서 처치해야 좋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총'을 떠올릴 것이다. 간단하고, 빠르고, 확실하니까. 총은 멀리서도 쏠 수 있고, 한 발이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환상도 준다. 도덕과 윤리를 떠나 수단으로써 이보다 명쾌할까. 커리어라는 이 놈을 향해 일격필살로 쏘아버리고, 내 인생은 깔끔하게 해결되리라는 부푼 기대. 그래서 우리는 학위 하나면, 스펙 몇 줄이면, 자격증 하나면 커리어가 고개 숙이고 항복할 줄 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커리어는 그렇게 한 방에 죽지 않는다. 도리어 총을 들이대면 어깨너머로 비웃고 달아난다. 어느새 다른 이름표를 달고 다른 위치에서 홀연히 다시 나타난다. 이직을 했는데 똑같은 문제를 또 겪고, 자격증을 땄는데도 전혀 다른 역량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전공을 살려 시작했는데 실무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커리어는 뭔가 좀비나 괴물처럼 잘 죽질 않는다. 요괴처럼 형체를 바꿔 또 내게 돌아온다. 성가시고 괴롭다.


살아남는 쪽은 누굴까, 결국 그것을 ‘죽이려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낚는 사람’이다.




커리어는 ‘쏘는 것’이 아니라 ‘낚는 것’


커리어를 쏘려는 마음은 다분히 조급한 마음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해결하고 싶다는 초조함,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함. 하지만 진짜 커리어는 성급한 사람에게는 다가오지 않는다. 빠른 총알보다 느린 바늘이 더 효과적이다. 바로 낚시다. 물고기처럼 낚는 것이다.


낚시는 무기라기엔 바늘과 미끼로 꼬시는 기술이다. 그리고 낚시는 무엇보다 기다림의 예술이다. 바늘 하나에 실을 매고, 미끼를 단 다음, 고요하게 물 위를 응시한다. 손끝은 느슨하지만 눈은 예민하다. 미세한 떨림, 아주 사소한 물결의 움직임에도 집중한다.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는데도, 결국 허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엔 무엇을 바꾸면 좋을지 알게 된다. 미끼였는지, 시간대였는지, 낚싯대의 무게였는지. 낚시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훈련시킨다. 커리어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상상해 보자.



총으로 얻은 기회, 바늘로 이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커리어의 문턱 지근거리에서 여러 표적을 향해 무턱대고 ‘기관총’을 난사한다. 공채, 스펙 경쟁, 졸업 요건, 국가고시—그 모든 건 일련의 폭격이다. 문 하나 열기 위해 다 같이 총을 들고 좁은 바늘구멍 사투를 벌인다. 그래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문을 통과한 이후다. 실력도 관계도, 결과도 전부 바늘로 연결된다. 꼼꼼히, 천천히, 조금씩.


입사 이후의 커리어는 ‘쏘는 게임’이 아니라 ‘낚는 게임’이다. 사람을 낚고, 타이밍을 낚고, 기회를 낚고, 신뢰를 낚는다. 그리고 그 모든 낚시는 바늘의 감각으로 이루어진다. 사소한 시선, 우연한 대화, 작은 성과 하나가 실처럼 엮여 커리어를 만든다. 또 총은 필요 없고, 바늘만이 남는다.



회사에 낚이지 말고, 회사를 낚아라


커리어 낚시에서 또 중요한 건, 누가 낚는가이다. 내가 회사에 낚이는 건 가장 피해야 할 일이다. 요란한 미끼—연봉, 복지, 네임밸류, 사내 문화라는 이름의 패셔너블한 포장—에 홀려 들어갔다가, 정작 내가 낚인 고기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의 감정은 비참하다. 주도권을 놓쳤다는 사실은 그토록 뼈아프다. 남는 건 떨어진 자존감뿐.


반대로 내가 회사를 낚는, 낚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상황은 반전된다. 어떤 회사를 어떤 시기에 어떤 미끼로, 어떤 채비로 낚을 것인지 주도적으로 고민해 준비한다. 그 모습은 책략가나 다름없다. 스스로의 커리어를 전략적으로 바라보고, 연속성 있게 설계하며, 장기적으로 판을 짠다. ‘어디든 들어가고 싶다’가 아니라, ‘어디쯤부터 나와 맞는 수심인가 날씨인가’ 등을 먼저 따진다. 그것이 바로 바늘을 쥔 자의 태도다.



바늘은 지루하다. 하지만 유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바늘을 피한다. 따분하고 느리고, 불편하며 불확실하다. 낚시엔 결과는 물론 시기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바늘을 들고 있으면 조급한 마음이 무한팽창될 거 같다. 그러다 보니 경쟁은 언제나 총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바늘을 든 사람은 언제나 외롭다. 하지만 낚시의 진짜 미덕은 그 느림 속에서 생긴다. 바늘을 통해 얻게 되는 커리어는 벽돌보다 단단하다. 즉, 무엇보다 유연하다. 유사시엔 총이 되어줄 수도 있다. 이것을 우리는 활이라고 부른다. 방향을 바꿀 수 있고, 다시 낚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낚은 것이라는 자부심도 묵직하다. (물론 총도 그렇지만)



커리어 낚시의 3가지 법칙


낚시를 인터넷 용어의 감각으로 나쁘게 보지 않길 바란다. 낚는다, 낚인다는 행위보다는 마치 인연과 같이 1:1 매칭이 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춰보자. 조율이 되었다면 다음의 법칙 아닌 법칙을 잘 생각해 보자.


낚시터를 고르라

커리어에서 모든 곳이 낚시터는 아니다. 지금 있는 곳이 ‘물고기 없는 호수’라면, 애초에 아무리 바늘을 던져도 잡히지 않는다. 눈치껏 옮겨야 한다. 좋은 팀, 좋은 업계, 좋은 흐름은 결국 생명력 있는 커리어 어장이다.


미끼를 정교하게 준비하라

미끼는 당신이 가진 고유한 역량이다. 모두가 비슷한 자소서를 들이밀 때, 나만의 포인트를 정교하게 갈고닦아야 한다. 회사마다 좋아하는 미끼는 다르다. 어떤 회사는 논리적 설계를 좋아하고, 어떤 회사는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에 약하다. 맞춤형 미끼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때론 내 서브 프로젝트에 반색해 연락이 올 수도 있다. 명심해라. 미끼는 면접관을 위한 것임을.


입질을 기다릴 줄 알라

커리어에서 타이밍은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너무 성급하게 낚아채려 들면 찢어진다. 성과도 관계도 여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은 느슨하지만, 감각은 예민해야 한다. 눈치는 관찰력이다. UXer의 중요한 본능이기도 하다.



‘총’은 기능적으로 누구나 손쉽게 쏠 수 있다. 방아쉬만 당길 힘만 있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바늘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익힘을 필요로 한다. 손끝으로 체득하고, 수면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 자기만의 리듬을 가져야 한다. 취업과 이직은 그래서 엄연히 기술이다. 운이나 기회도 맞지만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훈련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어떤 ‘감각’이다.


그 감각은 바늘에서 나온다. 커리어를 ‘쏘려는 사람’이 아니라 ‘낚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제된 미끼, 훈련된 인내, 정확한 수심 감각—이 모든 것을 갖춘 바늘 하나면, 오늘 낚지 못해도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잡는다.


회사에 낚이지 마라. 회사를 낚아라. 그리고 바늘을 절대 놓치지 마라.



PS.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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