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서는 일부 디자인과 디자이너란 용어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사용함
왜 사람들은 디자인을 그렇게 모호하게 말할까. “시각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포괄적인 의미”, “감으로 느끼면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정의하기를 피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속에 늘 의문이 든다. 정말 디자인이란 게 그렇게 설명 불가능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 굳이 그렇게 모호하게 남겨두는 걸까. 아니면 아무 생각조차도 없는 걸까.
UX가 어떤 면에서 디자인(d)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디자인(d)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어야지 디자인(D)이 아니라는 것은 오만한 배짱 아닐까. 그러니 정확히는 디자인(d)이면서 동시에 디자인(D)인 셈이라고 보야 옳다. 디자인(D)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이 디자인(d)으로 오인될 우려를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디자인 세계관 자체가 협소하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디자인(D) 못 보고 겁이 나니 디자인(d)이 아니라 에두를 뿐. 이런 이들이 하는 디자인(?)이라는 용어 사용의 용례를 살펴보면 광적이지 않다. 나이브함 그 자체.
굳이 구분해서 소문자 d는 손의 영역이고, 대문자 D는 뇌의 영역이라고 구분하면 설명도 쉽고 전달력도 명확해진다. 둘은 또한 분리될 수 없으며, 한쪽만 강조될 때 디자인이라는 전체상은 오히려 왜곡되기 일수지 그것이 더 올바른 주장이 되리라는 것은 편협한 기대다.
마술사는 진짜 마법을 부리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건 모두 트릭이다. 트릭은 물리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마치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것 같은 속이기를 통해 비일상적인 쾌감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 불과하다는 표현은 폄하가 아니라 사실 큰 틀에서 본질은 같다는 의미의 강조다.
마술이 신비로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 아닌 트릭에 의한, 그리고 그 트릭을 감추기 때문이다. 숨기면 신비가 되고, 모호하면 권위도 생긴다. 그래서 마술사는 더 빠르고 교묘하게 물리 법칙의 혼돈을 야기해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할 쇼를 기획하는 것이다.
결국 감각을 잠시만 속이는 것이지 물리 법칙 자체가 왜곡되는 것이 아니란 게 핵심이다. 그래서 가치 있고 재미있고 놀라운 것이다.
d와 D를 구분해 디자인이란 용어를 일일이 구분하는 건, 마술사가 관객을 무대 뒤로 불러 모든 장치와 손기술을 공개하는 일이나 어쩌면 같다고 생각한다. 마술사, 즉 디자이너 입장에서 애석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인지 교란을 명쾌히 하고 본질인 물리 법칙의 건제함이 드러나면서 허무하지만 이해가 되게 된다.
트릭을 알고 나면, 마술은 더 이상 마술이 아니기에 트릭을 감추는 것이 마술의 존폐와 공존한다. 그러니 마술사 같은 디자이너라면, 그 무엇보다 트릭을 수호해야만 스스로를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디자이너(d/D, whoever)라면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본인의 이름을 얼버무려 알려주지 않고 또량또량하게 전달하는 그 마음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처세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디자인이란 용어에 있어서 명료함은 권위를 잃게 하지만, 적어도 진정성을 남긴다. 굳이 논하지만 이게 내 디자인 철학 아닌 철학 중 하나다.
나는 마술사가 아니다. 나는 UXer다. 그래서 트릭을 감춰둘 이유가 없다. 오히려 나의 역할은, 그것이 트릭임을 드러내는 일이고 그것은 마술사가 아닌 나의 멘티를 위한 길임을 잘 안다.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모호함을 걷어내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어떻게 해서든 번역해 내는 커뮤니케이터.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멘토링이란 그 일이 실현된 하나의 용례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일은 회사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져 간다.
과거에는 초능력을 가장하며 사람들을 속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짜 마술사도, 디자이너 뭐도 아니었다. 트릭을 부정하고 모호함을 무기로 삼은, 사이비 마법사들이었다.
진짜 마술사와 사이비의 차이는 단 하나, 트릭을 인정하느냐, 숨기느냐다. 따라서 나는 마술사를 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경한다. 모든 디자인(?)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되어야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해야 할 상황에서 그것은 뭉뚱그리는 행위에 있다.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꿉니다
작고하신 예전 입시미술학원 선생님께서 현업 디자이너를 초청한 세미나 마지막 멘트였고, 이때 처음으로 디자이너란 단어에서 희열을 느낀 기억이 있다. 이 말에는 디자이너가 뭘 하느냐는 정확한 정의는 없다. 그럼에도 이 말은 모호함이 지탄받아야 하는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트릭을 인정한다. 트릭 자체도 디자인(d/D)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자인(?)이라는 표현은 트릭이 아니라 속임수다. 불분명함이 깊이로 오해받을 때, 그건 이미 설계가 아니라 연기처럼 사라질 사기꾼의 연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모호함은 통찰의 깊이가 아니라 명료함의 결핍이다. UXer는 신비를 팔지 않는다. 우리는 이해를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