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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패악: 생각하지 않음이 업무가 되는 세상

eXtreme Go Horse

by florent

이 글은 Pavel Samsonov의 The future of AI-driven development isn’t Agile. It’s XGH.를 번역, 의역, 재구성한 글입니다.



[XGH, 익스트림 고 호스(eXtreme Go Horse)란?]


'익스트림 고 호스'는 '극단적으로(Extreme) 말을 탄다(Go Horse)'라는 뜻을 가지며, 브라질 개발자가 의도적으로 문법적인 틀린 표현을 통해 잘못된 개발 상황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XGH는 주로 IT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아무런 계획이나 생각 없이 "내가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을 타고 미친듯이 달려보자!"라는 식의 개발 방식을 비꼬는 표현이다.


즉, 비정상적이고 어설픈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하는 것으로, 낭비를 줄이고 고객 관점으로 빠르게 실행하는 애자일(Agile) 개발 방법론을 그저 '막 질러버리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 경우를 칭하는 말이다. 이는 2018년에 개발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풍자 밈이었으나, 2025년 현재 소셜 미디어를 둘러보면 진심으로 XGH의 마인드셋을 찬양하고 설파하는 행태가 적지 않다.



[XGH가 AI가 만나 총체적 난국이 되어가는 조직]


XGH의 패악은 비단 개발 직무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획서를 작성할 때도, 고객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도 AI에게 맡긴 뒤, 최소한의 생각과 검토조차 하지 않고 보고를 올리는 경우가 주변에 적지 않게 목격된다. 그러면 XGH와 AI가 만나면 어떤 현상이 조직에 일어날까?



[XGH+AI 마인드셋의 현상]


주의: 다음 사항들은 애자일 방식을 잘못 이해하고, AI를 악용하는 IT 업무자들의 행동을 풍자한 것입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건 실제 방법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면교사 삼아야할 사항들입니다. 원문이 '개발'이라고 적혀있어 개발이라는 단어 중심으로 적혀있으나, 기획, 마케팅 등 다양한 직무도 적용 가능합니다.


(1) 나는 생각한다. 고로 XGH가 아니다.

- XGH에서는 생각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걸 그대로 하면 된다. 더 나은 두 번째 옵션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다.

⇒ XGH+AI적 사고: 고객과 대화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다. AI는 이런 생각 과정도 대신해주기 때문에, 코딩뿐 아니라 문제 해결까지 AI에 맡기면, 원하는 기능을 만들기 위해 직접 고민할 필요도, 고객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


(2)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 정답, 오답, 그리고 XGH 방식이다. XGH는 오답과 똑같지만 훨씬 빠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

⇒ XGH+AI적 사고: XGH와 AI가 함께라면 ‘잘못된 것’을 역대급 속도로 더 빠르게 배포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의 목적은 실패를 목격하는 것이니, 그저 미친듯이 빨리 찍어내는 게 더 이득이다.


(3) XGH는 갈수록 더 많이 필요해진다.

- XGH로 버그 하나를 해결할 때마다 7개의 새로운 버그가 생긴다. 그리고 그 7개도 XGH로 해결되기 때문에, XGH의 유용성은 무한대로 수렴한다.

⇒ XGH+AI적 사고: AI가 도움이 되든 말든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지금, 뭘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건 이상적인 결과다. 어차피 버그는 미친듯이 생길 것이고, 할 일은 끊임없이 생기고, 이걸 또 AI로 해결하면 되기 때문에 일을 안 했다는 이유로 해고될 일도 없다.


(4) XGH에서는 누가 오류라고 말하지만 않으면 오류가 아니다.

- 문제나 오류는 누군가가 그것을 알아차릴 때에만 존재한다.

⇒ XGH+AI적 사고: 대부분의 AI 도구는 오류 검사를 회피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문제될 일은 적다. 지금 당장 작동만 되면 되기 때문에 상관 없다. 누가 잠재적 문제를 지적하지만 않으면 된다.


(5) XGH에서는 뭐든 다 된다.

- 작동 및 컴파일이 된다면 커밋하고 끝이다. 더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

⇒ XGH적 사고: AI 도구가 개발자 생산성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굳이 AI 코드의 버그를 고치기 때문이다. 그냥 신경 끄고 바로 커밋한다면 두 배 빠르게 더 많이 작업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그러는가?


(6) 항상 업데이트 전에 커밋한다.

- 문제가 생겨도 내 쪽은 늘 ‘정상’이다. 문제나 오류는 문제나 오류라고 생각하는 쪽이 처리하면 된다.
⇒ XGH+AI적 사고: 가장 빠른 총잡이가 이기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AI를 쓰면 누구보다 먼저 배포할 수 있고, 앵커링 효과 덕분에 항상 ‘능력자’처럼 보일 수 있다.


(7) XGH에 일정이란 개념은 없다.

- 클라이언트가 주는 일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것이든 제시간에 구현할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진다. 설령 그게 미친 스크립트로 DB에 접근하는 것이라도 말이다.

⇒ XGH+AI적 사고: 때때로 ChatGPT가 멈추는 바람에 코딩을 못 할 수도 있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고객도 이해해줄 거다.


(8) 프로젝트가 침몰할 때를 대비해 도망칠 준비를 한다.

- XGH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프로젝트가 무너지는 날이 온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은 괴물처럼 커져서다. 그날이 올때 쯤, 이력서를 준비하거나 남 탓할 사람을 정해두면 된다.

⇒ XGH+AI적 사고: AI가 딱 남탓하기 좋은 대상이다. 그냥 “ChatGPT가 이렇게 짰어요”라고 하세요. 그럼 면책될 것이다. AI 사용이 당연한 시대인데, 당연히 이해해주지 않을까?


(9) XGH는 패턴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독창적이라고 볼 수 있다.

- 문제를 해결되기만 하면 된다. 규칙따위 얽매이지 말고 코드는 마음 가는 대로 작성하면 된다. 커밋하고 잊는다.

⇒ XGH+AI적 사고: AI가 원하는 방식대로 코드를 작성하도록 놔두면, 나중에 그걸 고칠 필요도 없습니다. 속도가 훨씬 빠른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되지 않는다.


(10) XGH에서는 리팩토링따윈 없다.

- XGH로 문제가 생기면 XGH로 빠르게 땜질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다가 해괴망측한 소프트웨어가 되어 전체 소프트웨어를 다시 짜야 할 정도가 되면, 그냥 회사를 손절하고 탈출할 때다.

⇒ XGH+AI적 사고: AI는 리팩토링을 할 수 없다. 그러니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11) XGH는 원칙따위 필요없다.

- PM도 필요 없다. 책임자도 없고, 문제나 요구사항이 생기면 아무나 알아서 처리하면 된다.

⇒ XGH+AI적 사고: AI는 코딩뿐 아니라 관리 과정도 민주화했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누가 뭐라 하면 “AI로 혁신 중입니다”라고 반박하면 된다.


(12) “나중에 고치자”는 약속은 믿는 게 미덕이다.

- 코드에 TODO 주석만 달면, 내가 만든 엉망진창 코드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리팩토링은 할 필요는 없다.

⇒ XGH+AI적 사고: AI가 나날이 빠르게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AI 기반 스타 개발자의 핵심 덕목 중 하나다.


(13) XGH는 절대적이다.

- 납기일과 비용은 절대적이다. 품질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렇게 품질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최소한의 시간으로 구현하는 것만 생각하면된다. 잠깐, 생각 하면 안 된다. 생각하는 것은 XGH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지성으로 그냥 하면 된다!

⇒ XGH+AI적 사고: AI 시대에선 ‘작동 여부와 상관없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제대로 굴러가든 말든, 확장성이 없든 말든,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14) XGH는 유행이 아니다.

- 스크럼? XP? 그런 건 그냥 유행이다. XGH 개발자들은 그런 일시적 흐름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XGH는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품질을 경시하는 이들에 의해 계속 쓰일 것다.

⇒ XGH+AI적 사고: AI도 사라질 일이 없다. 모두가 미친듯이 맹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말은 곧 XGH와 AI를 함께 쓰는 것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이런 툴은 항상 싸거나 공짜로 사용할 수 있고, 절대 요금이 인상되지 않을 것이다.


(15) XGH는 항상 WOP(Workaround-oriented programming)와 같은 건 아니다.

- 많은 프로그래밍 방법론들은 나름의 생각과 고민이 필요하다. XGH는 생각이 필요 없다.

⇒ XGH+AI적 사고: 바이브 코딩이 가능한 지금, 어정쩡한 프로덕트를 만드는 건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나머지 30%에서 마음에 안 드는 제약들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팀의 누군가가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기 때문이.


(16) XGH의 흐름에 거스르려 하면 안 된다.- 당신의 동료들이 XGH를 쓰고 있는데 혼자서만 제대로 하겠다고 버티는 건 의미 없다. 올바른 디자인 패턴 하나를 만드는 시간에, XGH로 열 배 더 지저분한 코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XGH+AI적 사고: “그냥 포기하고 AI를 받아들여라. 아니면…”라고 억만장자들이 말한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하길래 그렇게 부자가 됐을까? 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AI 툴을 팔아서다!


(17) XGH는 질서나 원칙이 보이기 전까진 위험하지 않다.

- 이 항목은 좀 복잡합니다. 핵심은, XGH 프로젝트는 늘 혼돈 상태라는 것이다. 질서를 부여하려 하지 마세요. 시간 낭비일 뿐이며, 상황은 본인에게 더 손해로 바뀔거다.

⇒ XGH+AI적 사고: 질서나 원칙을 잡는다고 칭찬받을 일은 없다. 그냥 놓아버려야 한다.


(18) XGH는 당신의 친구다. 하지만 복수심이 있다.

- XGH를 쓰는 동안에는 든든한 아군이다. 하지만 중간에 애자일 같은 트렌디한 방식으로 갈아타면 망한다. XGH에 리팩토링이나 질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럴 땐 다시 XGH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

⇒ XGH+AI적 사고: 수많은 연구에서 AI가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난 생각이란 걸 하는 것을 싫어하고, XGH+AI를 쓰는 한 더 이상 그런 사고는 필요 없다. XGH 방식을 그만두지만 않으면 된다.



[XGH+AI 문제의 본질]


맹목적인 AI 활용은 본질적인 문제 파악의 여부와 고객의 실제적 사용 맥락이 결여돼 있다. AI가 '대신 해줌'을 망각하고 그저 내가 직접 개발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착각에 빠져, 자기위안 혹은 자기과시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로 변질된 것이다.


내가 AI 프롬프트를 넣었다고 해서 이를 통해 나온 결과물은 온전히 나의 것일까? 단순히 프롬프트의 입력의 주체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사용하는 것이며, 어떠한 구체적 목적과 결과물을 원하는지 자각하는 것'이다. 어떤 목적인지도, 어떤 결과물이 나와야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AI에게 생각마저 의탁한 것은, 본인이 스스로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AI에게 자신의 일을 무책임하게 넘기고 태만함이라고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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