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 기획자 Oct 21. 2021

넷플릭스가 모르는 점이 하나 있다.

디지털 휴먼, 무조건적인 자동화는 해가 된다. 

난 지독한 영화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영화는 전부 최소 3번 이상은 볼만큼 좋아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구현하는 색감이 마음에 들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참고를 하는 편이다. 내게 영화 감상은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문과도 같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듯 영화의 목록들을 쳐다보는 건 궁금하고 또 설레는 시간이다. 영화들이 수천 개, 수만 개 들어있는 '넷플릭스'는 단연 들어갈 때마다 즐거운 놀이터이기도 하다. 외계인부터 아들을 잃은 엄마, 이복형제를 갖고 있는 자매들까지 온갖 희한한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이 집, 회사, 학교로 귀결되는 순간 영화 속 세계는 동경 대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수집하듯 보고, 모으다 보면 내 삶과 생각 역시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직접 하나하나 시놉시스를 읽고 짧은 예고 영상을 보면서 보석을 찾는 일이 재미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내게 넷플릭스의 추천은 필요 없다. 영화를 찾고, 뒤져보고, 짧은 예고편을 항해하듯 탐험하는 것 자체가 내 유일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여 만든 AI가 때론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즐거움을 앗아갈 수 있다. AI의 총체인 디지털 휴먼이 별다른 고민 없이 '추천'과 '자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디지털 휴먼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도 못하고 덜 사용할 것이다.    


디지털 휴먼에 무조건적인 '개인 맞춤형'과 만능 '자동화'는 지양해야 한다. 당연하게 여기는 '개인 맞춤형'과 '자동화'를 적용하기 전 내 개인적인 사례를 들었던 이유는 '맞춤형'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AI가 진화해도 자동화되어서는 안 되는 일들은 무엇일까?




1. 사람들이 진짜 좋아하는 일

2019년 MWC를 갔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운 장면은 디지털 휴먼이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었다. 작곡도 할 수 있었다. 인간의 감성 영역으로 일컬었던 부분까지 AI가 침투하여 대신 만들어주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만약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용자를 위해 자동으로 디지털 휴먼이 그림을 그려준다면 인간 고유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설사 디지털 휴먼이 진화하여 인간보다 예술적 기교가 뛰어난다 하더라도 창작하는 즐거움을 빼앗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즉, 인간이 좋아하는 태스크라면 그 태스크는 자동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케아 가구 조립하는 게 번거롭지만 굳이 공구를 갖고 조립을 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자동화는 인간의 성취감, 기쁨까지 앗아갈 수 있으니 사람들이, 고객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표정까지 인터랙션이 가능한 소피아


2. 결과에 대한 감정적 책임이 중요한 일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유성 중 '감성'이 있다. 우린 인간과의 교류를 통해 미안함, 고마움, 사랑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인간이 가진 감정 때문에 예기치 않게 상황이 변하는 경우가 있다. 어제는 남편이 갑자기 노트북을 샀다고 해서 근검절약을 해야지 웬 노트북이냐며 말다툼을 하고 금세 화해를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AI가 자동화를 한답시고 '당신은 정말 나쁘군요.'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개인의 책임이나 감정의 역할을 '디지털 휴먼'이 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특히 디지털 휴먼은 얼굴의 표정, 상태까지 인간과 그대로 흉내 내는 것만큼 감정이 극대화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적인 책임을 안 져도 되는 것들 예를 들어 수도요금 자동 납부는 얼마든지 자동화하면 편리하다. 결과에 대한 감정적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3. 상황 자체가 위험하거나 중요한 일

목숨과 귀결되는 일, 금전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일과 같이 상황 자체가 위험하거나 중요하다면 인간이 통제권을 쥐고 싶어 한다. 최첨단 기술을 다루고 있지만 이상하게 핸드폰에는 별 욕심이 없다. 하지만 하도 오래 쓰니 먹통이 되었고 나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이 고물 핸드폰, 빨리 하나 사야지 원.' 말하곤 한다. 만약 어떤 상점의 디지털 휴먼이 그동안 내 발화를 이해하고 바로 핸드폰 추천에 결재까지 해버린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경험을 안겨주는 셈이다. 결재를 하고 내 돈이 빠져나가는 통제는 내가 직접 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목숨과 귀결되는 자율주행, 수술 등과 같은 경우도 무조건적인 자동화는 심리적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때론 불필요한 자동화로 인해 법적, 재정적 책임까지 개인에게 물을 수 있어 중요하거나 위험한 문제는 개인에게 통제권을 전달해야 한다. 




4. 개인의 취향에 대한 일 

관심 없는 도메인, 개인의 취향이 없는 분야에서는 상관없다. 얼마든지 자동화를 해주면 오히려 도움이 된다. 하지만 특정 취향이 이미 존재할 땐 주의해야 한다. 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편도체와 해마가 기억을 증폭시켜 끄집어내는 역할은 단순히 자잘한 정보처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예 인식의 패턴이 새겨 질정도로 정보처리 증폭이 반복되면 자잘한 기억이라고 보지 않는다. 전두전야에 새겨진 인식 패턴이다. 사람들은 이 인식 패턴으로 인해 본인의 인격을 결정하고 심리적 특성을 반영한다. 만약 디지털 휴먼이 개인별로 새겨진 인식 패턴까지 바꾸려 든다면 큰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개인의 취향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면 그 취향을 존중해야 하는 것도 현명한 디지털 휴먼이 할 일이다.  



디지털 휴먼이 우리를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인간의 특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술이 뒷받침할 때 좀 더 지혜롭게 공생할 수 있다. 무차별적으로 '자동화', '개인화'를 남발하기 전 인간이 정말 자동화와 개인화를 원하고 있는지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원한다면 언제 원하는지, 불필요하다면 왜 불필요한지 숙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하는 만큼 인간과 디지털 휴먼에 대한 연구들로 조화로운 공생 관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