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를 줄여 나가야지
세상에 벌써 2023년이라니. 2023년의 시작은 원고 마감과 함께 하였다.
2시간만 바짝 집중해서 쓰면 다 쓸 것 같은데 딴짓을 하면서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아침에 시작해 방금 원고 한편을 마무리하였다. 꾸준히 글을 쓰기가 어렵다. 기계가 아니니까 글쓰기 싫은 날도 있겠지... 싶지만 며칠째 글을 못쓰고 있는 나를 보면 마음이 우중충해진다. 그나마 이렇게 원고 마감이 있으니 꼬박꼬박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쓰다가도 인터넷에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딴짓거리가 많은지 '데이터, 인공지능'을 검색하다가 맥락도 없이 다꾸용품 쇼핑몰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빠져 버린다. 누군가 재미있게 딴짓을 하는 것이라면, 그 시간도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하던데, 괜스레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2022년의 회고를 하자면, 힘들었다. 어찌 되었든 이겨냈지만 힘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팠던 한 해이다. 두려웠고 정신적으로 몇 번이나 무너져 내렸다. 사람은 딱 자기가 겪은 경험까지만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상황은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신적 충격이었고, 그래서 드라마나 책으로 보는 간접 경험은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막상 내가 올해 경험해보니 아주 진한 인생 경험을 한 느낌이다.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시간을 지나갔고 그 시간을 천천히 감내하면서 나는 좀 더 강해진 것 같다.
병원에서 내가 보호자로 있는 동안 몇 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목격하였다. 한밤중에 코드블루 방송이 나오면서 어떤 보호자가 아주 서럽게 눈물을 짓는 장면을 보았다. 파티션을 하나 두고 아주 가깝게 죽음의 광경을 처음으로 옆에서 보게 되었다. 죽음은 막연하고 멀게만 느꼈었는데 삶과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인생에서 언젠가 마주해야 할 것들에 대해 나는 너무나 무지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죽음, 탄생, 병과 같은 것들을 마치 내게 없는 일처럼 여겼다. 나는 기획자라서 뭐든 만들고, 생각하는데 익숙해 마치 죽음, 병도 내가 관리를 해 나가면 된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죽기 전에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적어도 남편을 포함한 직계 가족에게만큼은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싶다.
나에 대한 기록도 계속 남기고 싶다. 내 자식이 언젠가 탄생하게 된다면, 내 자식에게 나라는 사람은 이 시기에 무슨 생각을 했었고, 어떤 장소를 좋아했었는지, 어떤 목소리를 하고 있었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공유해주고 싶다. 아직 자식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계획형 인간이라 매년 새해만 되면 엄청난 계획을 야무지게 세운다. 2022년 한 해를 보내며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일까, 자잘 자잘하고 타이트한 계획보다는 느슨하지만 큰 골격을 유지하며 2023년 보내고 싶다. 더 자주 글을 쓰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2년은 힘들었지만, 내 삶이 귀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호자가 되어보니 시간제한이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더욱 깊이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할 테다. 2023년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들에 집중을 하며 하루를 만끽하고자 노력하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진행한 글쓰기, 그림 그리기, UX 공부, 디자인들을 성실하게 꾸준히 해 나가면서 그래도 재미있다고 외칠 수 있는 한 해가 되고 싶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내 만족에 의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의 2022년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단단해졌다. 병원에서의 보호자 생활이 있었기에 생각이 더 깊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와 같은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고통의 깊이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지. 돌이켜보면 거의 병원 이야기만 떠오를 정도로 병원의 시간은 강렬했지만 생각해보면 이탈리아 출장도 다녀왔고, 새로운 책도 출간되었고, 새로운 강의, 새로운 매거진 칼럼기고 등 재미있는 기회도 많이 해볼 수 있는 한 해였다. 내겐 그 모든 순간들이 귀중하고 감사하다. 2023년에는 재미있는 시간들로 채워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