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마 컨피그를 다시 바라보며 든 생각
올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거대한 기술 행사 두 개를 다시 보았다. 두 행사를 모두 감상한 뒤 드는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2025년을 반추하며 어도비 맥스에서는 기대감을 보여줬다면 피그마 Config 2025는 어땠을까? 개인적으로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도비 맥스는 그 기술 자체가 신선하고 놀라워서 계속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반면 피그마 Config는 기술이 놀랍다기보단 '아, 나는 어떤 포지션으로 살아야 할까.'이런 생각이 들었다.
먼저 피그마 Config도 어도비 Max처럼 1년에 한 번 있는 연례행사이다. 수개월간 준비한 신제품이나 업데이트 사항을 모두 공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Config 2025에서는 Figma 포트폴리오 추가 사항을 발표했다. 기존 피그마의 핵심 포트폴리오는 FigJam, Figma Slides, Figma Design, Dev Mode였다. 이후 Config2025를 통해 Figma Site, Figma Make, Figma Buzz, Figma Draw와 같은 4가지 포트폴리오가 추가되었다.
먼저 Figma Site는 기존 피그마 디자인을 실시간 웹사이트로 빠르게 전환하고 배포를 돕는 새로운 솔루션이다. 기존 피그마 디자인에 있던 Figma dev와의 가장 큰 차이는 figma dev는 개발자가 디자인을 정확히 확인하는 과정에서 코드를 볼 때 사용하는 형태라면 figma site는 디자이너가 라이브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Figma Make는 디자인을 완전히 코딩된 프로토타입으로 변환하도록 돕는 AI 기능이다. Figma Site와 같이 프로토타이핑을 만드는 것은 동일하다. Figma Site가 디자인을 완전히 배포 가능한 사이트로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Figma Make는 인터랙션을 가진 프로토타입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기존 디자인 툴로 구현하는데 복잡했던 음악 플레이어의 CD 회전과 같은 효과를 Figma Make에서 구현이 가능해졌다.
2025년 피그마 Config에서 처음 등장한 Figma Buzz는 마케팅이나 브랜드 콘텐츠 관리를 위해 개발된 솔루션이다. 데이터 파일을 대량으로 생성하고 디자인에 접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툴이다. 이 툴의 타깃 유저는 마케팅 담당자나 콘텐츠 제작자들이다. 비디자이너들이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관리할 수 있도록 템플릿을 제공해 콘텐츠를 대량으로 편집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솔루션은 Figma Draw이다. 그동안 전통적인 드로잉, 이미지 편집은 어도비에서 꽉 잡고 있었다. 워낙 이미지 편집 쪽으로 오래된 역사가 있기도 하고 기술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피그마는 '협업'을 강조해서 빠른 시간 내 현재의 UX Tool까지 올라오게 된 거라 판단했는데 'Figma Draw'로 어도비의 영역까지 넘볼 줄은 몰랐다. Figma Draw는 한마디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벡터 편집 기능을 협업할 수 있도록 설계한 툴이다.
기존 피그마에서는 이미지를 수정할 때 안 되는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 텍스쳐 효과가 너무 제한적이거나 아웃라인 스트로크가 적용되지 않거나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번 Config 2025에서는 Dynamic Stroke, Shape Builder Tool, Lasso Selection Tool, Text on a Path 등 22가지의 새로운 기능을 제시하면서 디자이너가 Figma 안에서 작업물의 퀄리티를 확 올릴 수 있도록 개선하였다.
피그마가 새롭게 내놓은 창작 솔루션은 모두 디자이너를 예술가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예술적 표현이나 장인 정신을 극대화하는 도구는 여전히 어도비 쪽이 더 가깝다. 반대로 이번 피그마 Config 업데이트는 창작 그 자체보다 팀이 협업을 통해 산출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Figma Draw조차 개인의 예술적 표현을 확장하려는 기능이라기보다 협업 환경에서 브랜드 일관성을 유지한 채 MVP를 신속히 시각화하는 도구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기능의 문제를 넘어서, 팀이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팀의 협업 구조가 변하면 자연스럽게 ‘역할의 경계’도 흔들린다. 디자인이 코드에 닿는 지점이 늘어나고 도구는 직무 간의 선을 점점 희미하게 만든다. 그래서 질문은 여기로 향한다. 디자인과 코드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 디자이너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야 할까?
아마도 전통적 디자이너의 이미지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디자이너라면 가시성이 좋게 화면을 그려야지.'
'화려한 비주얼을 보여줘야지.'
한때는 디자이너에게 막연히 이런 역할들을 배정하고 떠올렸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디자이너와 개발자 사이의 업무 경계는 흐려지고 디자이너는 점점 더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변화는 조직과 개인의 커리어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획자인 나 역시 내년부터 개발팀에서 업무를 수행한다. 조직은 더 이상 직무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지 않는다. 목적을 기준으로 팀을 유연하게 재편하고 개인에게는 ‘UI를 만드는 사람’이나 ‘코드를 짜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설계하고 해결 전략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요구한다. 상무님이 연구실의 모든 과제 기획 권한을 주며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보자”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돌아보면 나는 이미 1년 내내 개발자와 함께 일하며 이런 변화를 체감해 왔다. 앞으로는 기능 자체보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 구조를 짜는 능력이 더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여기에 AI가 본격적으로 협업의 파트너로 들어오면서 변화는 더 분명해진다. AI와 함께 작업하면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지고 짧은 시간에 수많은 MVP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결과물이 평균값으로 수렴될 위험도 커진다. 모두가 AI 기반의 도구를 쓰기 시작하면 2D 디자인의 완성도는 상향평준화되지만, 동시에 점점 더 ‘비슷한 결과물’이 쏟아지게 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작은 디테일이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플이 마이크로 인터랙션을 통해 보여준 촉감, 소리, 반응성 같은 섬세한 배려는 여전히 기계가 따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보이는 비주얼은 평범해질지라도 ‘인간을 배려하는 작은 차이’가 브랜드의 진짜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여러 차례 생각을 하지만 정말이지 '그리는 스킬'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고 본다. 잘하는 사람의 역할은 도구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파악하고 적재적소에서 해결하려는 역할로 변모하고 있다. 단순히 그리는 능력으로 판가름 나는 결과물은 AI가 너무나 빠른 시간 안에 잘 뽑아내 상당 부분 AI가 해당 역할을 담당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모든 결과물은 의도가 필요하다. 명령하지 않으면 AI는 움직이지 않기에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이 의도와 목적을 정교화하는 역할이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즉 ‘시작을 디자인하는’ 역할에 가까워진다. 어떤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하고, 수많은 후보군 중에서 무엇이 가장 적합한지 판단하며 왜 그것이 ‘최고의 선택인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능력. 이것이 앞으로 잘하는 사람의 기준이 될 것이다.
중간 과정은 AI의 담당이 되고 다시 마무리를 할 때 문제 해결사가 등장하여 빛을 발할 것 같다. 여러 결과물 중 최고를 선별할 수 있는 역할을 가져가면서 처음과 마무리를 담당하게 되지 않을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서 벗어나 문제를 구조화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하며 AI가 만들어낸 대안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지 않을까. 도구의 시대에서 이젠 의도를 설계하는 사람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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