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에게 현지인들과의 소통은 노력이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숨겨진 장소를 발견했을 때이다. 이런 장소를 찾을 땐 어학 능력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어 3줄을 암기하고 스페인어 스터디를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외국어가 특별히 거북하거나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되지 않지만 한때 ‘외국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입시 영어를 경험한 많은 이들은 느끼겠지만 ‘외국어’를 소통을 위한 도구로 여기기보단 공부를 위한 과업으로 여기곤 했다. 나만해도 유일하게 영어를 대하는 시간은 문제집이었다. 혹은 수십 명이 한가득 모여있는 대형 영어학원에서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점수를 잘 받기 위해 트레이닝을 받았다. 다행히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 평균 점수대를 무난하게 받을 수 있었지만 그 후로 완전히 학원가도 떠나 버렸고 영어도 내 기억 속에 지워버렸다. 한동안은 영어 없이도 편하게 살 수 있었다. 내 친구들, 가족들 할 것 없이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한국어로 소통하였고 모국어니 의사소통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일을 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장 내 to 부정사, 동명사를 찾는 일은 쉬웠지만 간단한 문장이 도무지 입 밖에 나오질 않았다. 동료 중에 외국인이 한 명 있었는데 친해지고 싶었지만 의사소통하는데 제약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동료를 자꾸 피하게 되는 것이었다. 영어 회의 때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영어와 관련된 모든 시간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시는데 한 번은 어떤 외국인이 아프다고 찾아왔다. 내심 부모님은 내가 통역을 해주길 바라는 눈치셨다.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래도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영어를 생각해 그 외국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뭐가 문제인지 외국인이 쏼라쏼라 말하는데 하나도 안 들리는 것이었다.
“pardon? pardon?"
뭐라고요?라고 몇 번 이야기하니 그 손님은 양 손바닥과 어깨를 천장을 향해 들어 올리더니 그냥 가버렸다. 오랜만에 집에 가서는 손님을 내쫓은 격이었다.
이 정도로 외국어를 기피하다 우연찮게 친구들과 일정이 어긋나면서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자유롭지만 그만큼 책임도 크다. 특히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에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크다. 다행히 혼자 여행하면서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의사소통은 반드시 필요했다. 덴마크 할머니 집에서 묵으면서 계속 할머니와 말동무를 하고, 할머니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사람들은 한국어의 ‘가나다라’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라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허접한 영어지만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더듬더듬 말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단어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하다 잘 모르시는 단어가 있으면 내가 대신 알려주는 상황까지 오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 마저도 다시 한국을 오면서 제자리걸음이 되었지만.....
한국에 오니 아무래도 한국인들과 대화하는 것이 편해 다시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자주자주 접했던 것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어학에 대해선 예전처럼 거북스럽지 않았다. 다시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 말하는 부분에선 퇴화가 되었지만 심리적으로 부담이 덜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크나큰 발전이었다.
그때 즈음 가고 싶은 도시, 다른 나라의 소도시가 궁금할 때마다 유튜브나 구글에서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공부로서 언어를 바라보기보단 여행 가기 전 사전 조사한다는 느낌으로 어학을 대하였다. 유럽의 소도시는 한국 사람들이 만든 콘텐츠보다 외국인들이 만들어낸 콘텐츠가 훨씬 많아 지루하지 않고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때론 도시 여행 탐구가 지겨워질 때면 쇼핑 사이트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하면서 후기를 읽어보기도 하였다. 이때 영어로 된 사이트 외 일본어로 된 사이트, 스페인어로 된 사이트를 같이 둘러보았는데 단어만 몇 개 알면 관련된 사진이나 이야기가 나와 단어를 습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외국어를 매일마다 꾸준히 접하고 있다. 단순히 시험을 잘 보려고 하기보단 꼭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여 지치지 않고 생활화할 만하다. 이렇게 외국어를 접하면 여행의 질이 확 달라진다. 먼저 ‘먹는 것’이 정말 편해진다. “소금을 빼주세요.”라는 문장만 말할 수 있어도 간이 딱 알맞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유럽 문화 상 아이스커피를 안 파는 곳이 많은데 ‘얼음’이라는 단어만 알면 즉석에서 쉽게 아이스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글을 읽을 수 있으면 같은 고기라도 어떤 고기인지,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재료를 활용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단어 몇 개만 알면 여행의 질이 확 달라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그렇지만 일상생활 중에 사용하는 단어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 핵심 단어만 알고 현지인과 대화를 하면 대충 무슨 상황인지 유추를 해볼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현지인들만 아는 정보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 어떤 소도시에선 한 동상의 발을 만지면 다시 이 도시로 돌아올 수 있다더라, 덴마크의 어떤 도시에 연인이 함께 가면 평생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살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직접 들어야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 작은 도시에서 어느 가게가 맛있는 가게인지 언제 축제가 열리는지에 대한 정보 역시 현지인들만이 알 수 있는 귀중한 정보이다.
현지인들과의 대화하는 도구로 좀 더 넓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언어를 접근한다면 한층 부담이 적을 수 있다. 유튜브 인터뷰 영상이나 쇼핑몰 웹 사이트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생생한 정보를 찾아가는 수단으로 바라보거나 나에게 좋은 정보를 주기 위한 도우미로 언어를 바라본다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늘도 뚜벅뚜벅 외국어 한마디를 더 뱉어봐야지.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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