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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Oct 09. 2019

기획자가 천천히 걷는 이유

천천히 시간을 음미하는 방법

그냥 지나쳤을땐 몰랐지만 천천히 걷고 보니 그냥 장독대가 아닌 장독대 분수였다 -_-;;;


새로운 일을 기획할때면 마음이 바빠진다. 최근 엄마와 할머니를 위하는 마음에 애완동물 가전제품을 기획하게 되었다. 집에는 고양이 4마리가 있는데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용변을 치우는 일은 매번 엄마와 할머니의 몫이다. 이들을 편하게 해줄 생각으로 제품 하나를 기획하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서비스 기획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 시작하는 시기엔 마음이 분주해진다. 하늘을 볼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다. 유관 부서와의 회의가 무척 많아 워킹 런치를 먹으며 회의를 하며 몰아치는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한두주 분주하게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마음이 불안해진다.  


"이거 오늘까지 마무리 짓기로 하였잖아요. 언제까지 할 수 있어요?"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나 자신도 다그치고 상대방도 다그친다. 가끔은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온다. 기획한 제품에 호된 평가가 이어지거나 일이 생각보다 잘 안풀리면 눈을 감아도 감은게 아니다. 그 다음날이 되면 푸석푸석한 몰골로 하루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정신없게 다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열띤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하고 문자로 달라고 하니 바로 문자가 날아온다.


"야, 너 엄마한테 생신 축하하다는 연락은 해야 하는거 아니냐!!!!?"


헉, 엄마의 생신이었던 것이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획하였다지만 일에 파묻혀 엄마의 생일을 잊어 버렸던 셈이다. 

잠도 못자고, 엄마의 생일조차 잊어버리는 상황이 일어나자 내 마음 속 빨간불이 켜졌다. 

그날따라 내가 대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채 전속력을 다해 뛰어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걷기 좋은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도서관!



바쁘다는 말은 기획의 적신호이다



 한때 바쁜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소망은 마음 속에 품은지 1주일도 안되 현실이 되었다. 야근 특근이 일상이었고 업무는 부페같이 열렸다. 심각하게 결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바빠지고 싶었건만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무작정 쏟아지는 일을 처리하느냐 바빠지는 순간 나는 사라졌다. 


 '바쁘다'는 말은 한자어로 마음을 잃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쩌면 기획자에게 가장 경계해야 하는 순간은 아주 바빠지는 순간이 아닐까?

사람을 위해 하는 기획이지만 사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대화도 하고 부대끼며 이런 저런 상황들을 돌봐야 하지만 

정작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보기 


천천히 걸어다니기



한때 배낭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자연스레 꽤 많이 걷게 되었다.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별별 사건이 다 발생하는데 가장 황당한 순간은 아예 내 캐리어가 몇일째 목적지에 안왔던 순간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좌절감이 들어도 항공권이 아까워 밖에 나가 거리를 둘러 보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다소 누그러진다. 


머리가 복잡하고 무거울 때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에게 적신호가 찾아왔구나, 일단 밖으로 나가자."


배낭여행의 경험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지면 걷기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햇볕을 쬐며 말바닥에 , 주변에 신경을 집중한다. 신기하게도 잠깐 걷는데 안보였던 것들이 보인다. 아주 천천히 걷다보면 나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은근히 매력적인 장소도 찾게 된다. 만질만질한 돌멩이가 놓인 자리, 노릇노릇한 빵 냄새가 진동하는 빵집, 함박 웃음을 짓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는 천천히 걸어가야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장소의 재발견은 정서의 재발견으로 확장된다. 보기만해도 흐뭇해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동차, 기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결코 음미할 수 없다.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천천히 바라보아야 그래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장소들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미하기



여전히 나는 걷고 또 걷는다. 시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걷는 여행은 너무 비효율적인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그치만 꼭 바쁘고 효율적인게 능사는 아니다. 천천히 걸어갈때 내 마음을 챙길 수 있고, 사람을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가며 벽에 붙어 있는 광고 전단지를 읽어보기도 한다. 이렇게 골목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더 깊게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것이 고민이고 관심사인지도 자연스레 파악이 된다. 스페인어는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언어로 영어보다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니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영어를 배우려고나 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스페인 ‘론다’라는 시골마을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전단지가 모두 영어 수업에 대한 광고 종이였기 때문이다. 카페를 가도 영어 모임이 대부분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며 사람들을 보고 거리에 붙어있는 것을 보며 관심사를 읽을 수 있었다.  


아주 천천히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관찰하기도 한다. 매장의 디스플레이는 곧 사람의 숨겨진 욕망을 읽을 수 있는 교과서이다. 환경문제가 관심사일때는 의류 회사들도 사람의 머리 대신 지구를 배치해 개념있는 회사라는 것을 표현한다. 버려진 빨대를 모아 독특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간접적으로 환경 문제를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브랜드는 욕조엔 책을 가득 담아 한권의 책이 주는 휴식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단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메시지 역시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천천히 거닐며 생각을 할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기획자가 파악해야 할 핵심, 그러니까 숨은 욕망이나 본연의 마음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피상적으로 드러난 말투, 행동보다 왜 이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무의식 중 연출되는 눈빛과 정황에 따라 해석이 되는 부분이 많다. 기획자가 안보이는 감정을 읽으려면 아주 천천히 전체적인 맥락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은 사람들과 부딪혀 경험을 해야 하고 장소를 두 발로 걸어가 만져봐야 알 수 있다. 진짜 모습은 무의식 중에 드러내고 있는 소리, 구성, 눈빛, 표정, 제스쳐 등을 종합해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숨은 마음을 읽기 위해 아주 천천히 작은 보폭으로 걷고 또 걷는다. 여행은 바쁜 일상 속에 하지 못한 생각을 좀더 천천히 풍성하게 하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처럼 일상에 푹 빠져 있을 때 다시 의도적으로 골목길을 걸어나서야겠다. 조금 더 낯선 시선으로 나의 삶을 관찰하기 위해, 사람들을 바라보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야지.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traveler_jo_

유튜브 채널

* book_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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