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_서점에서 당신의 취향을 엿본다
10살 무렵 우리 집 옆엔 서점이 있었다.
"야, 엄마 정신없으니까 나가서 책 좀 보고와!"
엄마는 내가 거추장스러울 때마다 <?> 서점으로 나를 보내셨다. 덕분에 엄마가 요리를 하실 때마다, 주무실 때마다 서점에 가서 만화책과 잡지책을 실컷 읽었다. 글자가 빼곡한 세계문학전집보단 알록달록한 ;빨강머리 앤'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심부름을 할 때마다 ‘명탐정 코난’을 사달라고 조르고 엄마, 아빠 몰래 '댕기'를 산 다음 전과 사전을 샀다고 하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도 서점에 초대해 옹기종기 의자를 갖다 놓고 같이 책을 읽었던 기억도 난다.
몇 년 뒤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면서 서점은 사라졌다. 서점이 있었던 자리엔 중국집도 나타났다가, 도시락집이 생겼다. 수많은 장소가 들어섰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사이 내 어린 시절의 추억도 희미해져만 가는 것 같다. 다행히 요즘엔 '동네책방'이 많아지면서 다시 옛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있다.
물론 25년 전 어린이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어렸을 적 책방은 '만화 캐릭터를 만나러 가는 곳'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풀하우스 주인공들이 한 대사를 하나하나 따라 읽으며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이제 더 이상 만화를 보지 않는다. 그림보단 글이 많은 책으로 '연애'이야기보단 '마음'이야기에 손이 간다. 요즘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만화는 단 한컷도 들어 있지 않다. 글자가 빼곡하지만 내 관심사이고 전문분야이니 그 책에 푹 빠져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데 왜 읽는 책은 이렇게 다를까? 취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취향은 개인의 고유한 관심사, 관점인데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분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개인의 취향을 알아차리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참 요즘처럼 개인의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도 없었지만 또 개인의 취향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시대도 없다. '취향'이 너무 다양하고 많기 때문이다. 반은 여행가, 반은 기획자로서 이렇게 취향이 산재되어 있을 땐 서점으로 간다. 수많은 책을 둘러보고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고른다. 이 책들의 집합체가 내 취향인 셈이다.
요즘엔 취향을 찾기 위해, 타인의 취향을 들여다보기 위해 서점을 간다. 여행지에서 내가 특별히 오랫동안 머무르는 서점은 내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다. 지로나에서 발견한 어린이책 서점은 천장에 종이학이 가득 매달려있었다. 노란 형광등 아래 포근한 일러스트 그림책이 켠켠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림책 전시관 같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부담 없이 들어와 책을 읽는다. 그들이 집은 알록달록한 책을 통해 그들의 취향은 넌지시 엿본다.
사람의 취향을 엿보기에 여행자 겸 기획자 입장에서 '서점'이 제격이라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가장 훌륭한 서점은 바로 '마드리드'의 간이 서점이다. 이곳은 지하철 역사 안에 서점이 있는데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언제든지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파는 장소이다. 사람들은 걸어가다 쉽게 책을 만날 수 있고 흔쾌히 구매를 하였다. 종이의 재질은 고급스럽지 않지만 한 손으로 들고 다닐 만큼 가볍고 실용적인 책들이 어느 서점이든 존재하였다. 서점이라고 거창할 것도 없었다. 라면 박스 같은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 와서 책을 여러 권 담은 뒤 가격만 붙어 놓았다. 사람들은 가볍게 놀이터 들리듯 이 장소로 와서 천천히 책을 뒤적거리며 살펴보는 식이었다. 그들에게 서점은 특별한 장소가 아닌 일상이었다.
인간의 근본적인 내면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들이 집은 무언가를 통해 넌지시 추측해볼 뿐이다. 서점은 단순히 책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취향을 탐닉할 수 있는 곳이다. 취향을 발견하는 장소, 지적 허기를 달래주는 장소를 오랫동안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 봐야 한다.
'유지' 측면에서 생각나는 도시가 있다. 아까 예시로 들었던 그림책방이 위치한 도시는 '지로나'라는 도시이다. ‘지로나’는 스페인의 수도나 주도가 아니다. 바르셀로나에서 1시간 정도 기차 타고 가면 다다를 수 있는 작은 도시이다.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은데 100년 이상의 전통으로 서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역사는 단순히 시간의 축적이 아니다. 사람들의 사랑, 관심, 이야기 그리고 지속 가능한 구조가 녹아 있다. ‘업’이란 단순히 애정만 있어선 유지하기가 힘들다. 생존 가능해야 한다. 수백 년간 운영될 수 있었다는 점은 그 안에서 소비가 이루어져 버틸 수 있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옆집 서점이 사라진 뒤 그 후 한참 동안 동네에서 서점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트렌디한 거리에 동네 책방이 들어서고 있다. 심지어 연예인까지 동참해 다양한 콘셉트의 책방을 열고 있다. 요즘의 동네 책방은 예전 서점과는 다르게 적극적이다. 그저 책은 고리타분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보란 듯이 파괴하고 있다. 좀 더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워크숍도 열고 저자 강연회도 개최한다. 지역의 문화 생산자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책방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적극적인 운영에도 불구하고 동네 몇몇 서점은 사라지고 있다.
“촬영하지 마세요. 서점은 당신의 인스타그램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제주도 책방 여행을 했을 때 한 서점에서 읽은 문구이다. ‘책방’이라면 느껴지는 지적인 분위기에 반해 그저 보여주기 식의 사진만 찍고 나온 적은 없었는지 뜨끔해진다. 일과 삶과의 조화,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문화사업은 점차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분명 그 중심에는 작은 책방들이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
어린 시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서점들이 더 많이, 더 자주 동네에 있기를 바란다. 재미있는 콘셉트의 책방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문화의 다양성 역시 풍성해질 것이다. 좋은 취지의 시작이 더 자주 일어나고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해 계속 고민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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