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트렌드를 엿보다
모두의 마음속에 동경의 나라가 있다. 나에게 그곳은 덴마크였다.색, 형태, 크기 등 시각적인 정보에 민감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서점에 가면 제일 먼저 디자인 코너로 직진하고, 여행 계획에서도 언제나 디자인 미술관이 빠지는 법이 없다. 흔히 ‘북유럽 디자인’이라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조화롭고 간결함이 특징인 덴마크 특유의 디자인들에 유독 관심이 컸다. 그러다 몇 해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덴마크 디자인 전시’를 통해 곡선의 간결한 디자인에 완전히 매료되기에 이르렀다. 디자인의 나라 덴마크에 가야한다. 이것은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진한 바램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되었지만 막상 실제 방문은 주저했다. 덴마크를 둘러싼 악명 높은 물가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은 컵라면 하나에 2만원, 김치 한 접시에 7천원이라는 식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도 비싼 물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가야지’ 하고 주저해왔다. 하지만 ‘나중’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나는 과감히 ‘지금’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덴마크의 물가는 비쌌지만 생각했던 이상으로 디자인의 수준이 상당했다. 괜히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닐 정도로 삶의 전반에 걸쳐 시각적인 요소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커뮤니케이션의 역할로서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었는데 가령 한 권의 책 표지라 할 지라도 읽지도 않았지만 대충 이 이야기가 무엇을 담고 있을지 그려질 만큼 표지 디자인이 독특하였다. 부엌에 당장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간결한 코펜하겐의 접시, 역삼각형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며 교차한 이불을 비롯하여 과자 한 봉지라 할지라도 디자인을 덧입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것이 많았다.
덴마크에서 ‘디자인’은 특별한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 하는 삶이었다. 도로변의 벤치 하나, 공원 입구의 안내 표지판 하나, 거실의 쇼파 하나, 침대 옆의 협탁 하나, 그 협탁 위의 유리잔 하나. 하나하나에 모두 덴마크가 담겨 있었다. 마치 덴마크의 공기에도 덴마크의 디자인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간결하고도 세련된 패턴과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고도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여행객인 나에게는 새로운 발견의 연속인 덴마크의 작은 덴마크들이 바로 덴마크 디자인의 정체 같았다. 가장 일상적인 것부터 아름답게 한다. 덴마크의 디자인이 언뜻 단순해보이면서도 모두를 놀라게 하고 현혹시키는 지점이 바로 여기 있었다.
이러한 덴마크 본연의 문화를 직접 화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은 자치구역이 있었으니
바로 ‘크리스티아나’라는 동네였다.
‘크리스티아나’는 코펜하겐의 자치행정구역이다. 이 지역에 들어가면 사진은 물론 비디오도 찍을 수 없다. 덴마크의 법도 통하지 않는 동떨어진 히피들의 공동체 구역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풀어주면 문제가 있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강제적으로 억압하는 것보다 한 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살라고 내버려두는 것이 문제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생각인가 보다.
버스를 타고 ‘크리스티아나’ 지역으로 들어가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태어나서 히피들을 공동체를 가는 것도 처음인 데다 ‘히피’라면 사회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무서웠기 때문이다. 혹시 붙잡혀 한국에 못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괜히 제 돈을 뺏어가는 것은 아닌지 등등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 한번 와보겠냐는 생각에 한 걸음, 두 걸음 히피들의 자치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온갖 과감한 그라피티가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벽면을 가득 에워싼 샛 빨강 색깔의 강렬한 그림이 끝없이 벽면에 그려져 있었다. 벽면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갔을까? 기다란 막대기로 만든 문이 보이는데 사람 얼굴이 새겨져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 동네에서 볼 법한 거친 조각과 문의 형태에 바로 사진기를 꺼내 들지만 그 옆에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표지판이 문 옆에 조용히 보인다.
다시 카메라를 가방에 넣은 채 조심스레 '크리스티아나' 동네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무서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순수하고 자유롭게 그려 넣은 그림들에 경직된 마음이 풀어진다. 저기 어딘가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팔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시장 구경을 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넣은 옷을 팔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이 가판대 위에 올려놓고 무언가를 팔고 있다.
“이 말린 식물들은 무엇인가요?”
“마약. 한대 피워볼래?”
지하철역에서 가끔 할머니들이 찹쌀떡을 팔고 있듯 이 동네에선 가판대에서 마약을 팔고 있었다. 어쩐지 약초가 타는 냄새가 살짝 풍기는 것이 ‘마약 냄새’도 살아생전 처음 맡아보았다. 마약을 이렇게 대놓고 자세히 볼 수 있기도 하다니 참 세상에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저 숨어서 조용히, 몰래 음지에서 거래를 하는 것이 ‘마약’이라 생각하였는데 대놓고 마약을 파니까 머릿속에 막연히 생각했던 일탈, 호기심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밤에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누군가를 환한 대낮에 민낯까지 훤히 볼 수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약을 대놓고 팔 수 있는 분위기도 놀랍지만 이곳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독특했다.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그리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살아가는데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느껴졌다. 반 미치광이들의 모임일 것이라 상상하였지만 어쩌면 반 미치광이를 만드는 세상은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로 본능에 충실하고 표현이 자유로웠다.
이쯤에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성공이나 경쟁관계없이 외딴 자치구역에서 나의 주관에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은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은 그리 쉽게 단정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여러 차원의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지만 분명 내 주관과 내 자유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데는 큰 만족감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주 40시간, 워라벨 등 점점 나의 삶을 주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이전의 세대와는 다른 또 다른 환경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 자치구역처럼 하루 종일 마이 웨이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잠시나마 마이 웨이를 펼칠 수 있는 장이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그저 맹목적인 성공과 경쟁에서 이기는 삶보다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작지만 나를 위한 가치들을 추구하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소소한 취미생활’, ‘나를 위한 선물’, ‘나만의 시간’ 등 요즘의 핫한 카페나 장소를 가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나에 대한 관심과 나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씩 우리의 진짜 삶, 진짜 행복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하는 움직임들이 보이는 것이다.
크리스티아나 자치 구역을 걸어 다니는데 이들이 마냥 이상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들이 모두 ‘행복’을 찾아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세대의 성공과 우리 세대의 성공이 다른 이유는 우리가 추구하는 생각, 보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나 자신에게 조용히 질문을 해보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고 제가 바라는 것, 원하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정작 나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반강제적으로 나가야 하는 모임을 잠시 뒤로 하고 오랜만에 내가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 한 편을 봐야겠다. 내가 원하는 마음의 목소리를 조금씩 귀담아 들어야겠다. 나만의 마이 웨이를 만들어 가기 위해.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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