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유럽에서 만난 트렌드
뉘른베르크는 히틀러의 정신적 고향이자 독일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다. 나치의 중심 도시이면서 유대인 학살의 근거가 된 ‘뉘른베르크 법’ 역시 이 도시에서 만들었을만큼 중요한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장소도 있고 박물관도 많아 대부분 사람들은 역사 공부를 하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다 하지만 내겐 크게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결정적으로 뉘른베르크에 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이곳에 ‘핸드메이드 마을’이 있기 때문이었다. 때론 눈에 보이는 유명 메이커의 스카프보다 꼬깃꼬깃 접은 종이에 손으로 쓰여진 편지글이 더 감동을 받기 마련이다. ‘핸드메이드’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이자 사람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상품이기에 그 이름만 들어도 언제나 마음이 설레인다.
뉘른베르크에 도착하자마자 마을 초입 ‘퀴니히 성’ 안에 들어가보니 옹기종기 마을이 하나 있다. ‘수공예 마을’답게 집 현관마다 손으로 직접 만든 모빌이며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약 11시경 여러 관광객들이 들어가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으로 만든 작품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른은 어른대로 “옛날에는 말이지...”라면서 직접 손으로 만들어 살던 이야기를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진기한 나무 장난감, 나무 모빌에 신기해한다.
수공예 마을에는 손으로 만든 인형들과 기념품으로 사기 좋은 악세사리, 인테리어 소품들이 특히 많다. 각 공방마다 직접 장인들이 나와 만들기도 하고 판매도 한다. 오랜 세월 누적된 예술을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역시 쏠쏠하다. 기계로 하나하나 뚝딱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시간과 정성을 쏟아 천천히 심혈을 기울여 다듬는 과정을 옆에서 볼 수 있다. 그저 단순한 ‘나무 모빌’하나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간 나무모빌이라는 점을 미루어볼 때 그 가치는 훨씬 배가 된다.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 핸드메이드 상품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다. 가령 문에 걸어놓는 나무 안내판은 쓰여진 폰트가 약간 다르기도 하고 나무 판대기 역시 모두 제각각이다. 이렇게 작품이 조금씩 다르다보니 조금 더 유심히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그렇게 마음을 기울이다보면 몇몇 작품을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나타난다. 나무로 만든 캐릭터만 보더라도 모두 얼굴 표정도 다르고 형태도 제각각이다. 손으로 만드는 과정 속에 즉흥적으로 장인이 형태를 수정하기도 한다. 장인의 숨결이 닿은 작품들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오리지날로 가치를 더하는 셈이다. 사람이 손을 닿아 만든 작품을 보고 애정을 갖고, 이 작품을 만든 사람과 교감하며 생각을 듣는 과정이 얼마만이었던지.....
수공예 마을을 벗어나 뉘른베르크의 한 노상 마켓으로 갔다. 주로 식재료를 파는 노상마켓에도 손으로 만든 무언가가 보인다. 엄마의 손맛이 담긴 쨈, 치즈부터 시작해서 정원에서 키우면 좋을만한 화초와 화초에 세워진 안내판까지 하나같이 손길이 묻어 있다. 독일이 어떤 나라인가. 정교한 기계 장치에 강해 폭스바겐, BMW, 벤츠의 나라이기도 하면서 최첨단 디지털을 지향하는 전동업체 보쉬의 본거지가 아닌가. 전 세계의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아 누가 보더라도 디지털을 지향하는 나라가 아닌가. 과학 기술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여 어쩐지 ‘핸드메이드’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법한데 이상하게도 독일 곳곳에서 핸드메이드 마켓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아무리 기계가 범람하고 디지털화가 된다고 한들 어쩌면 사람인이상 늘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는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요즘에는 사람과 사람의 정감어린 공간들이 점점 줄어드는게 눈에 띄고 있다. 얼마 전엔 갈증이 나서 수박쥬스 한잔을 사먹으로 쥬스 가게에 들어갔다. 한때는 상냥한 아저씨가 털털한 웃음을 지으면서 “오늘 수박 잘 익었는데 쥬스 한잔 줄까요?”라고 인사를 해야 하는 그 자리에 네모 반듯한 기계가 대신하고 있었다. 사람의 웃음과 대화에 반해 이런 저런 일상을 이야기하며 감정적인 교감을 하는 대신 모든게 효율만을 외치며 간소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세상이 점점 디지털화 될수록 사람의 정성의 가치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이 들어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괜시리 마음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실리콘 밸리의 핫한 다이어트 앱 '눔'이 떠오른다. '눔'이란 앱은 정말 사람을 투입하여 다이어트 코칭을 해주는 앱이다. 유료앱이지만 사람이 직접 나서 코칭을 해준다기에 인기가 대단하다.
'눔'은 디지털 앱에 사람을 도입하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적극 도입했다. 사람의 냄새를 풍기는 서비스를 군데군데 배치를 하였는데 예를 들면 '하이파이브'와 같은 기능이다. 오랜만에 고객이 들어오면 바로 하이파이브를 보낸다. 열렬한 환호의 의미이다. 다만 이렇게 사람을 고용하니 인건비가 무척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AI 알고리즘을 또 도입하였는데 AI라고 모든 처리를 하는게 아니라 '사람'의 메시지를 분석하여 '가장 시급도가 높아 보이는 문장'을 결국 '사람'이 처리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즉 AI는 반복적인 문장만 처리하거나 사람이 응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결국 매개체는 '사람'이 하고 있었다. 눔의 CEO는 결국 인간의 감정을 건들이는 것, 가장 심연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결국 AI보단 인간이 직접 나서서 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래서 어떻게하면 AI를 잘 설계할 수 있는지, 데이터 라벨링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 등등을 계속 배우고 관련 세미나들이 등장하는가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기술 문명이 발달한 도시일수록 핸드메이드의 가치, 오로지 사람의 숨결이 담긴 것들에 대한 가치가 더욱 조명을 받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 기계가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사람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감성, 아날로그적인 방식은 더욱 가치가 빛날 것이라 믿는다. 거리를 걷다 ‘바리스타 로봇팔’을 보면서 ‘언젠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유는 그래도 아직은 나를 보면 한 마디라도 근황을 묻는 바리스타 언니, 오랜만에 찾아왔다고 악수하는 바리스타 아저씨가 비교가 안될만큼 끌리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에 파고든 기계와 핸드메이드 마켓을 보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정감어린 감성과 특별한 생각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무렵 인간의 감성 역시 소중하다고 외치는 장소, 시간, 고민은 더욱 특별해지고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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