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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Oct 03. 2019

왜 기획자는 경험에 집중을 할까?

소비: 소유보다 먹고, 만나고, 보고, 느끼고

우연히 스페인에서 경험한 플래시몹


"있잖아, 올 해 뭐가 가장 좋았어?"

"우리 엄청 힘들게 버스 2번 타고 굽이굽이 떠나 헤레즈 갔던 거?"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기억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기억이 특별한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순간순간이 모두 특별하다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우리 부부의 공통 화제는 단연 '여행', '함께 공유한 에피소드'였다. 가파른 경삿길을 한참 올라가 간신히 발견한 슈퍼에서 사 마신 오렌지 쥬스의 맛,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신나게 수영을 하며 웃었던 기억이 가장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는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할땐 되도록 그 문화에 풍덩 들어가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라오스에서는 6명의 인원들과 함께 라오스 전통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았다. 열대 야자수가 우거진 밀림 안에 들어가 울창한 초록빛 경치를 바라보며 마늘을 까고 레몬테라스를 다지기 시작했다. 라오스에 어떤 전통요리가 있는지 몰랐지만 쌀을 씻고, 가지를 으깨며 요리를 완성시키는 사이 내 가슴 속 라오스 전통 음식에 대한 사랑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카지노'가 생각났다. 나와는 거리가 먼 도시라고만 생각했었다. 우연히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바나나를 구매하려고 들어갔다가 20,000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에 하루 정선 여행을 다녀오는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되었다. 냉큼 구매를 하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남편과 정선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지자체 후원을 받아 '수리취떡'도 만들고 정선 전통시장도 들리는 일정으로 기획되었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수리취떡을 오밀조밀 만들어 빚고 야금야금 먹는 사이 '정선'은 더이상 카지노의 도시가 아니었다. 내 소중한 추억이 함께하는 도시, 내가 처음으로 떡을 빚어본 도시가 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가 무궁무진할 때 흥이 생긴다. 이 경험을 타인과 공유를 하였다면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는 순간 친밀감은 더 높아진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서로 수집하고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인생은 좀 더 다채로워진다. 이렇게 온몸을 경험 안에 풍덩 던지는 순간 그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라오스 쿠킹클래스, 정선 수리취떡 만들기 체험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때 그 느낌과 방법을 설명할 수 있지만 사실 3~4년 전의 이야기들이다. 아주 한참 전의 이야기지만 아마 10년이 지난 이 무렵에도 여전히 그때 그 경험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라오스의 음식에 대해 글로 읽는 수준이라면 마치 어제 점심 메뉴가 오늘 생각나지 않듯 아주 쉽게 지나치기 쉽지만 손끝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수준이라면 이해하는 깊이와 정보의 양이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왜 글로 보는 정보는 쉽게 지워지지만 내가 직접 풍덩 뛰어들어 경험을 할 땐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우리 두 부부가 해마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늘 여행지에서 x 고생한 기억이나 함께 경험한 것을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일까?


UX(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우리의 경험은 속성이 다양하다. 어떤 경험에 따라 짧게 단기 기억 내 저장되어 볼수도 있고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장기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온 몸을 다해 그 경험 안에 풍덩 뛰어들면 기본적으로 장기 기억 내 저장될 확률이 높고, 가볍게 물건을 소유해서 끝나는 경험이라면 단기 기억에 저장될 확률이 높다.

왜 어떤 기억은 단기로 끝나고 어떤 기억은 오랫동안 저장이 되는 것일까?


환경에 의해 무언가 여러 정보를 인지하게 되면 가장 먼저 감각 기억으로 이동을 한다. 눈, 귀, 코, 입이 1차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다. 약 12가지 감각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데 대신 아주 빠르게 기억이 사라진다. 그런다음 아주 빨리 단기적인 기억으로 넘어간다. 약 30초정도 기억을 하는데 아주 오랫동안 되뇌이지 않으면 이 기억 역시 사라진다. 단기 기억에 있을때 오랫동안 회상할만하고 아주 특별하거나 인상적이라면 드디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데 이렇게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면 비로소 수십년간 각인이 되는 것이다.


즉 장기기억을 하려면 오랫동안 회자 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계속 나야하고 특별히 인상적이야 하는데 소유보단 경험이 장기기억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 오감을 동원하고 이야기거리가 많아지고 이야기거리가 생겨 회상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단기 기억에 저장되는 영역과 장기 기억에 저장되는 영역은 다르다. 컴퓨터 용량처럼 뇌도 저장소처럼 한정량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기 쉽다.하지만 장기 기억에 저장되는 용량은 무한대로 볼 수 있고 그 기한도 현존하는 연구에는 정량화 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경험을 하면 할수록 추억의 양은 무궁무진해지는 것이고 더 이야기거리는 풍부해 지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소유를 줄이고 경험을 늘리는 여행을 추구하고 있다.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할때면 계획을 세울때 언제나  '경험'을 항상 최상위에 올려 놓는다. 기념품 한개를 덜 사더라도 특별한 투어나 흥미로운 맛집을 발견할 때면 몇 걸음 더 걷고 손을 바쁘게 움직여 경험을 먼저 해본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기획자, 특별한 서비스를 제시하는 기획자가 되기 위해 

먼저 나는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 바라본다. 


오늘도 열심히 사람의 행동과 행복의 요소들을 천천히 탐구해보고 있다.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traveler_jo_

유튜브 채널

* book_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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