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온몸으로 보여주는 전시의 방법
‘초콜릿을 주제로 전시를 하다니!’
나는 어른이 된 다음에도 초콜릿을 한 조각 입에 물고 하루를 마무리할 정도로 초콜릿을 사랑한다. 초콜릿에 대한 나의 사랑은 단순한 ‘맛’을 넘어 ‘향’까지 탐닉할 정도로 강렬해서, 흔히들 상큼한 과일 향이나 부드러운 꽃 향을 사용하는 바디클렌저까지 초콜릿 향으로 사용할 정도이다. 초콜릿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런 내게 독일 ‘쾰른’의 초콜릿 박물관은 그 어떤 세계 문화유산보다 소중하고 기대되는 장소였다.
초콜릿을 주제로 전시하였다는 점만 들어도 흥미롭지만 건물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쾰른 시에서 알아줄 정도로 즐길 거리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걸음에 초콜릿 박물관으로 뛰어갔다.
초콜릿을 사랑하는 사람도 흥미롭겠지만 초콜릿에 별다른 애정이 없다 할지라도 지루할 틈 없이 온몸으로 초콜릿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다. 초콜릿의 기원을 이야기해주기 위해 무성의하게 독일어 패널을 세워 놓은 대신 식물원의 한 장면처럼 카카오나무를 몇 그루 심어 놓았다. 카카오나무를 만지고 숨 쉬고 보면서 느끼는 것부터 전시는 시작하였다.
입가에 맴돌고 있는 초콜릿 한 덩어리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카카오 열매를 수확하여 잘게 분쇄를 한다. 이 역시도 그냥 분쇄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지고, 향을 맡아볼 수 있도록 나무 상자에 분쇄되어 있는 형태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저기 어딘가 거대한 기계가 보인다. 바닐라, 설탕 등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가 카카오와 함께 혼합을 하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사진 한 장으로 불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초콜릿을 만드는 거대한 공장용 기계를 갖다 놓아 투명한 창을 통해 공정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앞치마와 작업복을 입지 않았을 뿐이지 투명한 유리창만 없으면 지금이라도 바로 공장에서 초콜릿을 만드는데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만드는 것을 비롯하여 초콜릿에 대한 역사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데 이 역시도 과거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하여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초콜릿을 담았던 상자, 포장지, 그릇은 물론 초콜릿 우유를 만들어 서빙하는 여직원들의 모습이나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들의 사진도 살펴볼 수 있어 초콜릿에 담긴 수백 년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아 오랫동안 집중을 한 탓인지 계속 걷기만 해서 다리가 아픈 탓인지 잠시 전시관을 나와 앉아서 쉴 장소를 찾으려 하는데 저기 어딘가에 거대한 조형물이 보인다. 성인 남성보다 훌쩍 큰 조형물이 눈에 띄어 가까이 가보니 초콜릿 분수였다. 200kg의 초콜릿이 쉴 새 없이 흘러 내려오는 분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쇼콜라티에는 웨하스에 초콜릿을 묻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있었다. 그것도 무료로 원 없이 계속 계속 쉴 새 없이 사람들에게 우유맛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초콜릿을 찍어 주는 것이었다. 물론 원한다면 사람들이 직접 펑펑 흘러나오는 초콜릿 분수에 대고 찍어 먹을 수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전시를 다 마친 뒤에 벌어졌다. 만족스러운 전시를 보고 집으로 가려는 찰나 뭔가 저만치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에 적힌 글자를 드문드문 읽어보니 일정 금액을 내면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초콜릿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3가지 종류의 초콜릿 베이스를 선택하고 접시 위에 올려진 40여 가지의 토핑을 접시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을 위한, 내가 직접 만든 초콜릿이 탄생한다는 것이었다. 이 특별한 기념품에 당장 지갑 문을 열어 가족들의 초콜릿을 하나하나 정성껏 만들었지만 결국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가 다 먹었던 기억이 난다.
쾰른을 떠나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초콜릿 박물관’에 대한 경험은 선명하다. 그 이후로 쿠바 ‘아바나’의 초콜릿 박물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초콜릿 박물관 등 여러 초콜릿 박물관을 찾아다녔건만 왜 이곳만큼 선명한 기억은 나지 않는 것일까. 쾰른의 초콜릿 박물관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향을 전시하는 방법
‘쾰른’이라는 도시가 나와서 이야기하는 김에 빠뜨리기 아쉬운 박물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향수 박물관’이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이 외에도 쾰른은 매력이 참 풍부하다.
18세기 쾰른의 물은 신비한 효능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물이 워낙 신비로와 사람들은 쾰른시에서 나온 물을 갖고 향수까지 만들게 될 정도였다고 한다. 때마침 프랑스 군대들이 잠시 쾰른을 거쳐 원정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이 향수를 사용하면서 쾰른의 향수는 유럽 전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게 되었다. 향수로 점점 유명세를 더하면서 ‘콜로뉴의 물’이라는 브랜드로 향수를 만들기 시작한다. 오늘날까지 수백 년간 향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향수 박물관은 이렇게 수백 년의 역사가 담긴 쾰른시의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감각과는 전혀 다르다. 어떻게 후각을 시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길 때 즈음 모차르트 동상에서나 볼 법한 하얀 가발을 쓴 어떤 아저씨가 중세시대 복장을 하고 인사를 한다. 그 아저씨의 인사와 함께 그 전시실에 함께 있던 전시 관람객들은 다 같이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중세시대로 함께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은 300년의 전통을 지닌 아주 오래된 향수 공장이라고 한다. 1723년부터 이 장소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아저씨는 향수 공장 가문의 사람이라고 소개를 한다. 마치 연극을 보는 것처럼 아저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표정, 말하는 어투, 제스처까지 생동감이 넘쳐 아저씨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 들어간다. 아저씨가 “나를 따라오세요.”라고 하면 그가 이끄는 대로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어떻게 향수를 제조하게 되는지를 더욱 자세하게 볼 수 있다. 300년 전 향수 공장을 그대로 재현하여 그 당시 사용한 수많은 삼나무통과 탕제기는 물론 비커, 스포이드까지 향수 제조 기구들을 볼 수 있다.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하나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향을 수집했고 어떻게 섞어 하나의 독특한 향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며 느껴볼 수 있다. 향을 맡은 뒤 향을 맞춰보는 과정도 흥미롭다. 수많은 향을 맡고 유추하고 조향 하는 과정이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어서 더 특별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3세기에 걸쳐 만든 향수를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약 45분이라는 시간 안에 응축적으로 설명해주시는데 그 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진다. 여기에 더불어 ‘쾰른 향수’에 대한 위조품에 대한 문제까지도 함께 설명해주면서 한때 당면했던 어려움도 함께 알 수 있도록 들려주는데 그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다. 모든 설명이 다 끝나고 향수 샘플러를 하나씩 나눠 주는데 오렌지의 상큼한 향과 함께 전시가 마무리되어 더욱 즐거운 감정이 배가 된다
최근 재미있는 뉴스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교 ‘다이애나 테미르’ 교수팀은 뇌 실험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바로 자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뇌의 반응은 돈을 가졌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와 동일하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면 줄수록 그 아이템은 사랑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초콜릿 박물관과 향수 박물관은 모두 단순히 눈으로 감상하는 것을 넘어 직접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참여를 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의미가 더해진다. 단순히 타인이 만든 것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가 우리도 일부 기여를 하고, 참여를 하는데서 나 역시도 이 전시의 일부가 되고 호감이 생긴다. 이 두 박물관을 보며 흥행하는 서비스, 상품의 기획 역시 어떤 방향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다.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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