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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Nov 17. 2019

차를 마신다는 의미에 대하여

스위스 바젤 천천히 차 한잔 




뒤늦게 다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했던 내용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20대 대학생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줄곧 만났던 연령층은 내 또래 30대 후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똘똘한 학생분들을 매일마다 만나니까 젊은 에너지가 마구 느껴진다. 마침 대학원 입학하자마자 여행 관련 서비스 기획을 하게 되었는데 서로에게 여행 기록에 대한 여러 의견을 물어보았다. 


여행을 기록한다는 점은 훑어 지나가는 풍경을 붙잡기 위해 하였는데 과연 나는 그 안에서 무엇을 붙잡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생전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을 먹었을 때의 놀라움,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소를 갔을 때의 기쁨도 크지만 일상을 벗어나 낯설게 보이는 풍경들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습관처럼 매일 마시는 커피 한잔조차 여행을 시작하면 낯설어진다. 왜 사람들은 이런 커피를 마시는 것일까, 왜 이 카페는 이곳에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때 스위스의 예쁜 도시 바젤에서 만난 한 찻집이 그 해답으로 떠올랐다.  유럽여행을 할 때 좋았던 점은 때론 커피 한잔이 물 한잔보다 저렴하다는 점이었다. 그 정도로 커피 한잔은 그들에게 일상이었다. 워낙 커피를 좋아하는 데다 이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습관이 되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카페부터 찾는다.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천천히 도시 산책을 시작하려고 역을 둘러보니 카페 대신 웬 찻집에 먼저 눈에 띈다.      


초록빛 양철통이 실내를 가득 에워싸고 있는데 초록 양철통 안에 찻잎이 한가득 들어있는지 차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향긋한 냄새가 난다. 양철통은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한가득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안에 어떤 찻잎이 들어있든 초록빛 일정한 색깔로 입혀져 전체적으로 세련된 숲같이 보인다. 초록색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 역시 동시에 느껴지는 것만 같다. 


 "당신이 추울 때면 자기 몸을 따뜻하게 녹여줄 것이고,
당신이 더울 때면 시원하게 식혀줄 것이다.  
당신이 우울할 때면 위로해 줄 것이고
당신이 흥분해 있을 때면 진정시켜줄 것이다.


   


영국의 한 수상은 차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도시 어디를 가도 카페만큼이나 찻집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차 한잔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감정은 ‘기다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티백에 물을 부어 적당히 우려내는 시간만큼 맛과 향이 달라진다. 가만히 우려내는 동안 깊어지는 것은 맛과 향뿐만이 아니다. 천천히 차분해지는 마음, 고요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마음 역시도 깊어진다.      

“스위스 사람들은 차를 좋아해요?”     


찻집 안에 들어가 모르는 척 찻집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차 한잔 마시러 종종 들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냥 차 한잔이 아니라 차 한잔마다 이 차를 마시면 무엇이 좋은지 적혀있다. 에너지가 생기는 차 한잔도 있고 활력이 넘치는 차 한잔도 보인다. 이렇게 차 한잔을 마시면 내 몸이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든 까닭일까? 이른 아침 그 작은 찻집에는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조차도 어느 순간부터 ‘건강’을 민감하게 챙기게 된다.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한다지만 한때 수영선수를 했을 만큼 기본적인 체력은 자신 있었다. 하루정도 밤샘해도 그다음 날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넘어가면서 조금만 무리를 하면 며칠간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진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면 흰머리가 수도 없이 나와 부랴부랴 염색을 하러 미용실을 찾았던 일도 빈번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나도 내가 좋아하는 ‘컵라면’ 대신 ‘샐러드’를 찾아먹게 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커피 중독자인 나조차 위가 쓰리거나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을 땐 그렇게나 좋아하는 커피 대신 구수한 차 한잔을 마시며 속을 달랬던 기억이 난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차를 찾는 문화를 살며시 바라보면 수백 년 전 유럽에 차 문화가 들어와 유행처럼 번져나갔을 때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 당시는 사교적으로, 개인의 여가생활을 위한 용도로 차를 이용했다면 요즘은 개인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차를 마시는 이들이 늘고 있다. 더불어 바쁜 일상 속 삶의 여유를 갖고자,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즐기기 위한 마음으로 조용히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게 아닐까. 관심을 갖고 찻집을 둘러보니 바젤의 찻집을 시작으로 곳곳에 찻집이 눈에 띈다. 몸의 독소를 빼준다는 디톡스 차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도 있었고 찻잎을 말리는 장면까지 직접 보여주며 향기로운 차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찻집도 보았다. 관심을 갖고 찻집을 둘러보니 도시마다 수많은 찻집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대부분 건강을 찾고 싶거나, 혹은 천천히 여유를 갖기 위해 찻집을 들리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건강한 서비스, 건강을 위한 서비스'는 무엇일까?

단순히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는 1차적으로 끼니를 때우면 그만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단순 끼니를 넘어 보다 건강하고 감미로운 분위기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갖고자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건강하다'라고 생각하는 어떤 형상을 머릿속에 이미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멘탈 모델'이라 부른다. 즉 새로운 서비스나 디자인을 접할 때  '건강함'을 유발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기 기억에 저장하여 자신만의 '멘탈모델' 즉 심성 모형을 만들어 낸다. 


서비스 기획자는 사용자가 갖고 있는 멘탈모델과 서비스 간 일치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만 '건강'에 대한 서비스 인식을 확실히 시킬 수가 있다. '건강한 서비스', '건강을 유발하는 서비스' 등은 사람마다 멘탈모델이 다르므로 참 애매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마다 정성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복합 감정은 1차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멘탈모델'을 걸러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색깔, 조명, 테이블 수와 같이 외형적인 것부터 직원의 행동, 표정 등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아울러 '건강'을 연상시키는지 조사하고 관찰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어떤 부분이 가장 '건강함'을 유발하는지도 소비자 인터뷰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주로 소비자는 형용사(예쁘네요, 귀엽네요, 둥그렇네요) 답변을 통해 호감을 가지는지 비호감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일주일은 서울의 남쪽인 서초에도 갔다가 동쪽인 여의도에도 갔다가 여기저기를 이동하며 업무를 한 한주였다. 체력도 바닥까지 떨어질 데로 떨어지고 피곤까지 쌓여있는데 들어오는 일은 많아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있었다. 모처럼 유럽에서 여행을 다니며 촬영한 찻집 사진들을 보니 향긋한 ‘페퍼민트’ 차 한잔이 생각난다. 


'바쁜 일상 중에 향긋한 페퍼민트 차 한 잔의 상쾌함을 아는, 30대의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찻집에 가서 조용히 차 한잔을 우려 마시면 그간 묵혔던 스트레스가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허리가 조금은 건강해질 수 있을까. 천천히 차를 우려 마시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 흩어지는 순간을 기억하고자 기록합니다.

@traveler_jo_

* book_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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