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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YAOWL 유야아울 Mar 06. 2021

다리 꼬지 마

의도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의도하고 있는 것

전기 파장들이 근육 사이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자극한다. 평소에는 느껴보지 않은 자극이다. 아프지 않은 쪽은 섬세하게 파장이 느껴지는데 아픈 쪽은 영 시원찮아 미간에 힘을 주어 파장을 느껴보려 한다. 침을 놓아주시던 한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아픈 쪽이 감각이 둔해져 있다고 하셔서 혹시나 집중을 하면 더 빨리 좋아지려나 하며 애를 써본다. 침과 뜸 치료를 받고 전기자극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이곳은 힐링의 장소이면서 치료의 공간인 한의원의 치료실이다. 적당히 뜨근한 베드에 엎드려 고개를 돌리면 빛바랜 회색 벽면의 은근히 멋을 낸 스크래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귓전에 들려오는 신비로운 명상 음악을 듣고 있으면 한약재 향과 더불어 오감이 걸어 잠근 걸쇠를 스르륵 열어젖힌다.

며칠 전부터 왼쪽 허리에서 슬며시 경미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세수를 하기 위해 숙이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지고 힘이 들어가질 않아 얼굴에 칠한 비누를 말끔히 헹궈내지 못하고 이내 허리를 곧추 세워야만 했다. 바지를 입기 위해 다리를 들어 올리는 지극히 평범한 동작들이 잘 되지 않고 한 손은 다른 곳을 지탱하고  발끝으로 바지를 낚아채듯 입어야 했다. 절을 하듯 웅크리는 자세가 잘 되지 않고 여전히 세수를 하려면 몇 번을 쉬었다 해야 했고 결국 엄마 손에 이끌려 한의원을 오게 되었다. 한의원이라는 공간은 나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웬만하게 아프면 자연적으로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미련을 떠는 성향이라 자주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원장님을 만나 뵙고 불편한 사항들을 말씀드리고 내 나름의 분석으로 통증이 발생한 원인이 될 법한 이유들을 말씀드렸다. 하루 대부분을 의자에 앉아 있으며 다리까지 꼬고 있었고 무거운 것도 허리 힘으로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며 이실직고를 하였다. 원장님께서 보통 앉아서 일을 하면 30~40분에 한 번쯤은 일어서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왠지 그렇게 하면 집중력이 없고 산만하다고 느껴질 것만 같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허리 인대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뭔가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기라도 하라는 뜻의 엉력을 장려하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무심코 망부석처럼 앉아 있는 동안에 왼쪽 허리의 인대는 조용히 늘어짐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식조차도 하지 않았던 자연스러운 일상의 생활들이 불편한 것이 되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않는 착한 어른이가 되었다. 밥을 먹을 때 식탁 의자에 앉아 굳이 양반다리를 하던 쓸 때 없는 습관도 하지 않는다. 일을 하며 장시간  의자에 앉아있어도 다리를 꼬지 않는다. 구부정한 허리를 의식적으로 곧추 세워 바른 자세로 앉는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아래쪽 물건을 꺼낼 때 다리 근육을 수축 이완시킨다. 이 모든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게 세수를 잘하기 위해서 이고 양말을 잘 신기 위해서다.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하자 고질적이고 쓸데없는 습관들을 고치기 시작했다. 늘 해왔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제 역할을 잘 해왔는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 한의원을 찾아와 문진을 하고 치료를 받는 일련의 과정들이 따사로운 햇살에 반짝이는 잎을 바라보는 행복감과 버금가는 호사라는 것을 알았다. 문득 한의원 복도 모퉁이에 놓인 화분의 잎사귀 일부가 유독 시들어 있어 눈길이 갔는데 왜 그럴까 지켜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지나갈 때 그 부분이 옷깃에 닿아 흔들렸다. 연약한 잎사귀가 반복적으로 치이다 보니 그렇게 찢어지고 색이 변해 시들해져 있었다. 한뿌리에서 돋아난 줄기와 잎들이지만 어느 잎은 온전하기 그지없고 어느 잎은 성한 곳이 만무하여 애처롭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오고 갈 적마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바스락거리는 아우성을 내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 그 누구라도 그 식물을 아프게 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무관심했을 뿐 식물이 나라면 꽤나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고 하듯 일상에서 작은 습관들이 누적되어 어느 날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려와 평범하기 그지없던 일상을 빼앗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구에게 바라지 말고 스스로를 지켜주자. 우리는 의도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의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리를 꼬는 습관이 어느 날 갑자기 양말을 신는 즐거움을 빼앗아 갈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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