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표류기 | 에필로그
#표류의 시작
친구가 빌려준 500만 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그저 ‘서울에서는 뭔가 다르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뿐이었습니다.
월세 50만 원짜리 당산동 단칸방의 눅눅한 공기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월급쟁이 표류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돌아보면 참 부끄러운 시간입니다.
월급은 그저 통장에 찍히는 숫자였고,
다음 달의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라 믿으며 카드를 긁었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덜컥 사버린 SUV의 할부금은 매달 어김없이 목을 죄어왔죠.
방향도, 계획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표류의 전환점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주머니를 뒤지던 그 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단돈 5만 원이 없어 느꼈던 비참함.
그날 저는 처음으로 제 삶의 민낯을 마주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이대로는 가라앉고 말겠다는 절박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표류기는 조금씩 방향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가계부를 쓰고, 신용카드를 잘랐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고,
돈 앞에서 솔직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인생의 첫 번째 나침반을 세웠습니다.
‘10년, 10억’
누군가에게는 허황된 꿈처럼 들릴지 모를 그 목표가,
제게는 망망대해를 비추는 등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지금도 가끔은 멋진 차가 눈에 들어오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소비의 유혹에 시달립니다.
목표와 욕심은 더욱 커져가고,
통장 잔고는 생각처럼 늘지 않아 조바심이 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이제 저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흔들릴지언정, 떠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
저는 또다시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꾸역꾸역 출근하겠지만,
그 발걸음은 더 이상 과거의 무기력한 표류가 아님을 압니다.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표류자분들께
그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며 함께 마음 졸이고,
또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저처럼 길을 잃고 헤매던 분들께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월급쟁이 표류기'는
여기서 잠시 쉼표를 찍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 월급쟁이의 삶은 계속됩니다.
저의 항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다음 항해의 기록을 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나아가고, 또 살아냅시다.
- 2025년 9월, 여전히 서울 하늘 아래에서.
헤이아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