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pil. 당신도 표류중인가요?

월급쟁이 표류기 | 에필로그

by 헤이아빠

#표류의 시작

​친구가 빌려준 500만 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그저 ‘서울에서는 뭔가 다르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뿐이었습니다.

월세 50만 원짜리 당산동 단칸방의 눅눅한 공기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월급쟁이 표류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돌아보면 참 부끄러운 시간입니다.

월급은 그저 통장에 찍히는 숫자였고,

다음 달의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라 믿으며 카드를 긁었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덜컥 사버린 SUV의 할부금은 매달 어김없이 목을 죄어왔죠.

방향도, 계획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표류의 전환점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주머니를 뒤지던 그 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단돈 5만 원이 없어 느꼈던 비참함.

그날 저는 처음으로 제 삶의 민낯을 마주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이대로는 가라앉고 말겠다는 절박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표류기는 조금씩 방향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가계부를 쓰고, 신용카드를 잘랐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고,

돈 앞에서 솔직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인생의 첫 번째 나침반을 세웠습니다.


‘10년, 10억’

누군가에게는 허황된 꿈처럼 들릴지 모를 그 목표가,

제게는 망망대해를 비추는 등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지금도 가끔은 멋진 차가 눈에 들어오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소비의 유혹에 시달립니다.

목표와 욕심은 더욱 커져가고,

통장 잔고는 생각처럼 늘지 않아 조바심이 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이제 저는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흔들릴지언정, 떠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

저는 또다시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꾸역꾸역 출근하겠지만,

그 발걸음은 더 이상 과거의 무기력한 표류가 아님을 압니다.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표류자분들께

​그동안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며 함께 마음 졸이고,

또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저처럼 길을 잃고 헤매던 분들께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월급쟁이 표류기'는
여기서 잠시 쉼표를 찍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 월급쟁이의 삶은 계속됩니다.

저의 항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다음 항해의 기록을 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나아가고, 또 살아냅시다.



​- 2025년 9월, 여전히 서울 하늘 아래에서.

헤이아빠 드림.

keyword
이전 10화EP9. 표류기의 나침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