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지역을 정하고 난 후 현실로 복귀했다. 이제 막연한 꿈이 아니라 현실로 돌아와 현실적인 과정들을 해내야만 했다. 우리는 먼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다. 찾아보니 우리가 발급받아야 하는 비자는 417 비자였다. 우리는 카페에 마주 앉아 무작정 호주 이민성 사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먼저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비자를 발급받는 창으로 들어가 차근차근 정보를 입력했다. 이건 구글링하면 세세하게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과정 그대로 따라 했다.
둘이 마주 앉아 사람들이 알려주는 대로 모든 정보를 다 입력하고 설문을 마쳤다. 한 20분 이상 소요된 것 같다. 모든 것을 마치자 영문잔고증명서와 여권사본을 등록하라는 화면이 떴다. 이 두 가지의 파일을 등록하면 메일로 바로 헬스폼을 보내준다.(헬스폼은 건강검진을 할 때 가지고 가야 하는 서류이다.) 하지만 이것은 당장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각자 집에 가서 차차 하기로 했다. 대신 우리는 건강검진 예약부터 하기로 했다. 예약은 변경할 수 있으니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 변경하자는 생각이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우리는 성격이 아주 급하다.
우리는 돌아오는 다음 월요일로 예약을 잡았다. 일주일 정도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전까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영문 잔고 증명서를 발급받고, 여권 사본을 만들어 호주 이민성 사이트에 전송하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과정 후 바로 헬스폼이 발송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어렵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다. 다만 영문 잔고 증명서에 $5,000 이상(당시 455만 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모자란다면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우리 중 Q가 먼저 헬스폼을 받았다. Q는 바로 다음날 영문 잔고 증명서를 발급받았고 바로 여권을 스캔한 파일을 만들어 전송했다. 나는 돈이 모자랐고 월급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월급이 들어오기까지 기다리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리고 나의 경우 영문 잔고 증명서를 발급받다가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나는 월급이 들어온 후 적금을 포함해 딱 455만 원이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오전에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나는 노트북으로 은행 사이트에 접속해 영문 잔고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귀찮은 일을 얼른 끝내버리자는 생각이었다. 신청을 마치고 증명서를 확인했을 때 나에게 적힌 잔고는 $4,998.06이었다. 한국 돈으로 1,760원 정도가 모자란 상황이었다.
내가 환율을 잘못 계산한 것인지 혼란스러워 은행 어플을 들어가 확인해 봤다. 알고 보니 잔고 증명서를 신청하던 도중 핸드폰 요금이 출금되었던 것이다. 나는 당일 잔고로 증명 신청을 했기 때문에 당일 24시까지는 입출금이 정지된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신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신청을 완료하기 전까지 모든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은 내가 바보 같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싶어 황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무사히 해결됐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여전히 바보 같지만 이 또한 하나의 재밌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건 안 되니 앞으로는 더 꼼꼼하게 확인해야겠다.
우리는 신체검사를 하러 삼육서울병원으로 갔다. 신체검사는 우리가 으레 아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문지 작성, 접수, 비치된 검사용 옷으로 환복 후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 비자 센터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큰 병원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모든 검사를 마치는 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신체검사를 하러 가면 머그샷을 찍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대체 사진을 어떻게 찍길래 그러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사실 사진이 이상해봤자 뭐 얼마나 이상하겠냐고 생각했다. 사진은 그냥 의자에 앉아 비치된 카메라를 바라보고 찍는 형식이다.(병원마다 다를 수도 있다) 얼굴을 구분하기 위해 사진 자체가 가깝게 찍히기도 하고 흑백이라서 정말 머그샷 같았다. 나와 Q 역시 서로의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나는 신체검사 이후 병원에 한 번 더 방문했다. 오프라인 설문 중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냐는 질문이 있었고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을 다 적었다. 이에 대해 병원에서 영문소견서를 받아와야 했다. 다음 날 약을 처방해 줬던 병원에 내원해 의사 선생님에게 영문소견서를 요청했다. 이후 다시 신체검사를 했던 병원에 방문해 (이 경우 미리 병원에 연락한 후에 가야 한다. 나의 헬스폼 서류를 미리 준비해둬야 하기 때문) 영문소견서를 제출했다. 혹시 제출해야 하는 약이 있다면 두 번 내원하지 않도록 미리 영문소견서를 준비해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나는 이런 것이 처음이라 바보같이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삼육서울병원에 다녀온 지 3일 후, 비자 신체검사 결과를 심사국으로 전달했다는 문자가 왔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아무런 결격 없이 무사히 비자가 승인되었다. 이제 정말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80만 원 정도를 썼기 때문에 절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호주로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이다음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고민했다. 출국일을 정하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보험을 가입하고, 임시숙소를 예약하는 것이 우리가 넘어야 하는 큰 산이었다. 우리는 꼭 가야 하는 날짜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우선 떠나려는 시기만 정하고 그 기간 중에서 비행기가 가장 싼 날을 출국일로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은 우선 비행기를 예약해야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일단 가장 중요한 비자발급을 끝냈으니 남은 것들은 나중의 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막연하게 여유롭게 생각하기로.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모든 일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