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n년지기 Q와 Y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
사실 우리가 워킹홀리데이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나도, Q도 무언가를 선택할 때 오랜 시간을 들이는 편은 아니기에 그저 빠르게 호주행을 결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그 많은 나라 중 호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도저히 그 이유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그저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향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주로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남들이 알아본 걸 따라가자’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가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중 고르기만 했다. 그리고 그걸 고르는 데에 걸린 시간은 카카오톡 대화를 나누던 고작 몇 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우리에게 ‘왜 호주로 가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느낌이 좋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가장 끌리는 나라였고 말 그대로 느낌이 좋았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면서 나는 다양한 차별과 혐오를 마주했다. 그중 가장 많이 겪은 건 성별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엄마는 내가 기죽지 않고 멀리 날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의 도전이 때로는 ‘나대는’ 것이나 ‘쓸데없는’ 것이 되기도 했다.(이 점에 대해 반박한다면 굳이 대꾸하고 싶지 않다. 차별을 겪어보지 않은 이에게 일상 속 사소한 차별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으며 굳이 내가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눈치 보지 않기를 원했으나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나에게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것도 눈치를 봤고, 내가 누군가와 다르게 행동할 때면 내가 틀린 것 같아 걱정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만 살기에 시야의 폭이 좁으니 해외로 떠나라거나, 요즘 한국 사회가 살기 팍팍하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라거나, 정말 셀 수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해외에서 살면서 겪은 변화에 대해 ‘나의 가치관이 긍정적인 쪽으로 많이 변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는 그 하나를 바라보고 Q와 함께 워킹 홀리데이를 결정했다.
무작정 결정한 계획은 아무렇게나 흘러갔다. 그래도 국내가 아닌 해외로 간다는 데에서 오는 부담 탓에 우리는 나름대로 조사를 차곡차곡 해나갔다. 모두가 그렇듯 우리는 지역부터 정하기로 했다. 지역을 추리는 건 간단했다.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도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퍼스 이렇게 네 곳 중에서 정하기로 했다. 사실 지역을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성향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분명 정해두고 가더라도 더 나은 것이 생기면 금세 바꿔버릴 것이 뻔했다.
“멜버른이 커피가 유명하대. 나는 여기서 살아보고 싶어.”
“너 워홀 가면 얼마나 있을 생각이야?”
“글쎄… 일단은 1년? 너는?”
“나는 뭔가 1년만 있기는 아쉬울 거 같아. 세컨 비자를 따서 2년 정도 있는 건 어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있지. 이건 그냥 내가 생각한 계획인데 한 번 들어봐. 어차피 세컨 비자를 따려면 농장에서 일을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처음에 브리즈번으로 가서 일을 하고 적응을 한 뒤에 반 년 정도 후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건 어때?”
먼저 가고 싶은 지역을 말한 건 Q였고, 1년 이상의 체류를 제안한 건 나였다. 우리는 짧은 대화 끝에 처음 머물 지역으로 브리즈번을 선정했다. 어차피 가는 거 2년 이상 살아보자는 마음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컨비자를 위한 조건이 필요했다. 세컨비자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이상 국가에서 지정한 분야의 일자리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브리즈번 인근 농장에서 시작해 먼저 세컨비자를 취득한 후에 지역을 옮기기로 했다. 우리는 브리즈번에서 생활하며 쉬는 날 최대한 많은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직접 경험하면서 우리가 살고 싶은 지역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해외살이에 대한 조사를 해나가며 기대도 됐지만 동시에 한국에 대한 미련도 계속 떠올랐다.
“사실 나 조금 걱정돼. 나 한국에 미련이 너무 많아.”
“나도 그래. 친구들도 그렇고, 내가 여기 두고 가는 것들에 미련이 남아.”
“근데 왠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지금이 아니면 흐지부지되고 나이가 지나서 후회할 것 같아.”
“그건 맞아…. 나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어. 해외로 가서 3개월까지는 너무 힘들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대. 근데 그 3개월이 지나고 나면 거기서 평생 살고 싶어질 정도로 적응한대.”
“우리 둘 중 하나가 일을 못 구해서 백수라면 그동안 다른 하나가 먹여살리자.”
“혹시 알아? 내 숨겨진 재능을 호주에서 발견할지?”
“그래도 돈은 많이 모아서 가자… 우리가 일을 못 구할 수도 있잖아.”
“좋은 생각이야.”
Q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그 역시 같은 마음이라고 고백했다. 여행이 아니고서는 평생을 살아온 곳을 두고 떠나기란 쉽지 않음을 느꼈다. 사회로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태껏 내가 머물던 자리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직 닥친 일이 아닌데도 호주로 가게 되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워홀을 마음먹고 조사를 시작하며 고민은 금세 사라졌다. 환경이 달라지니 뭐든 다 괜찮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선택할 수 없던 일들이 해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부 쉬워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험하는 많은 일들이 실패뿐이라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둘이라서 그런지 괜히 든든했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절망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그에 대비하고자 했다. 현실은 더 고난이도일 것이고 우리는 대책이 없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