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n년지기 Q와 Y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막연한 꿈이 하나 있다. 바로 ‘독립’이다. 이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고생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 거라며 어린애 취급을 했다. 그런 말들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자랐다. 초, 중, 고, 대학교 모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녔고 심지어 성인이 되고 일을 시작했을 때도 일하는 곳이 집과 가까웠다. 그래서 배가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주어진 이 교통과 편리함을 당연하게 여겼다. 모순적이게도 그런 이유에서 나는 독립을 하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쭉 비슷한 동네에서만 살았다. 그래서 초등학생을 지나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늘 같은 곳에서 친구를 만나고 같은 곳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익숙하고 편하지만 또 지겹기도 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자신의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살 거나 자취를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에게 욕을 먹을 걸 알기에 늘 속으로만 삼켰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었다. 성인이 되면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 나에게 성인이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컸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더 냉혹했고 직접 마주한 돈으로 이뤄진 세계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시급을 받는 대학생이 되면서 독립이라는 꿈은 자연스럽게 잊혀갔다.
“나 워홀 갈까 생각중이야.”
내 생일을 축하해 주며 서로의 안부를 나누던 중 친구 Q가 한 말이었다. 최근 주변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지인들이 많았던 탓에 그저 ‘얘도 가는구나.’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나도 해외를 가고 싶다거나 부럽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의 나는 제주도로 떠나 한 달 살이를 하거나, 혹은 강릉 구석에 있는 숙소를 장기 대관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해외보다는 국내가 좋았기에 굳이 해외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여행에도 큰 흥미가 없었다. 물론 이런 성향은 코로나를 거치면서 조금 변했다. 평소에는 즐기지도 않았는데 괜히 여행을 가고 싶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국내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싶었다. 강제로 하지 못하게 되니 청개구리처럼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도 해외를 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딘가로 떠난다면 산이나 바다가 잘 보이는 국내 어디든 괜찮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별안간 해외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Q에게 ‘나 워홀 한 번 가볼까 생각 중이야. 해외에서도 한 번은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하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심코 던진 그 말은 Q가 준비하고 있던 계획과 마주했다. 막연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Q와 무작정 추진하는 내가 기어이 만나버렸다. 그 당시 나는 ‘독립’이라는 꿈을 바라고 있던 상태였고 이왕 독립한다면 국내보다는 해외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Q는 생각보다 치밀했다. 그는 자신이 처음 워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기억했다. 그는 종종 만날 때마다 영어 공부나 워홀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점점 내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고 작은 관심은 ‘재밌겠다.’로 변했다.
“내년 초에 워홀 같이 떠나볼래?”
“좋아.”
Q는 가볍게 제안했고, 나는 그 제안을 빠르게 수락했다. 12년 동안 친구로 지내면서 단 한 번도 여행을 같이 가본 적이 없던 우리는 이렇게 얼렁뚱땅 해외로 떠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아마도?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