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에서 스투키를 고르는 일
최근에 즐거운 경험을 했다.
꽃집에서 '마음에 드는 스투키'를 고르는 일이었다.
스투키를 사겠다, 결심은 했는데
꽃집에 들어가니 스투키 화분이 여러 개 있었다.
"이 중에서 선택하시면 되세요~"
꽃집 사장님이 말했다.
아.. 뜻밖의 결정의 순간.
스투키라고 모두 같은 스투키가 아니다.
우선 작은 사이즈로 할지, 중간 사이즈로 할지.
혼자 사는 집이지만 생명의 존재감을 느끼려면 중간사이즈 정도는 되면 좋겠어.
좋아 1차 선택 완료.
같은 사이즈라도 스투키 모양이 모두 다르다.
어떤 줄기는 장난스럽게 우측 곡선을 만들며 뻗어 있다.
어떤 줄기는 힘 있게 일직선으로 솟아 있다.
어떤 줄기들은 촘촘히 모여 있고, 어떤 줄기들은 간격을 두고 있다.
중간사이즈 스투키들 앞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결정은 한 번에 하겠지만,
나는 괜히 신중해지는 편이다(동지들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 집에 들여오면 함께 할 생명이니.. 그래 어떤 아이를 데려가는 게 좋을까?
비슷한 중에도 각자의 개성을 내뿜는 스투키들이었다. 집에 놓일 때 모습을 상상해 보고, 그 자체의 모양을 보고 이리저리 각을 쟀다.
역시 곧게 뻗은 스투키를 데려가야겠다- 하고 이성적(?) 판단을 내렸다.
결정하려는 찰나, 그 옆에 장난스럽게 뻗은 스투키가 눈에 밟혔다.
처음 중간크기 스투키들을 볼 때 띄었던 아이였다.
최후의(?) 결정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스투키가 나를 선택한 거야
뭔가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지만 내추럴함이 있는 그 스투키를 데려왔다.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다.
집에 마음에 꼭 드는 새 친구가 들어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선택이라는 느낌이 온몸으로 들었다.
선택은 내가 항상 주어가 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리저리 각을 잰 다음 남들이 보나 내가 보나 흠잡을 데 없는 선택을 하는 게 최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선택이 때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큰데도.
그저 고정관념에 따른 선택일 수 있는데도.
스투키를 골라 나오는 길이 즐거웠다.
어떤 선택을 하는 데서 ‘자유’라는 감각을 느꼈달까.
서로가 서로를 고르는 양방향 선택.
나도 너를 선택하지만, 너도 나를 선택한거야 라는 감각.
앞으로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떠올릴 것 같다.
나는 지금 선택을 하는(내려야 하는) 주체이지만,
동시에 어떤 것으로부터 선택을 받고 있는지 또는 받고 싶은지.
꽃집에서,
나에게 솔직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선택에 내추럴함을 더하는 일.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신 젊은 여자사장님에게도 감사하다(옆에서 키득하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