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간 것은 특별하게 기억된다
재현은 최근 춤을 추는 동안 깨달았다. 생산자로서 직접 과정에 들어가면 대상에 더욱 애착이 생기고 특별하게 기억하게 된다는 것을.
사실 춤을 배우기 전엔 한국 대중가요를 거의 듣지 않았다. 모든 멤버 이름을 아는 아이돌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좋아했던 에스엠 소속 그룹 엑소(EXO)까지였다. 방탄소년단 노래는 2020년 Answer:Love myself 그리고 Dynamite에 감명받아 듣기 시작했다. 블랙핑크, 레드벨벳 등 걸그룹이 컴백해도 길에서 우연히 듣는 걸 제외하고는 접할 일이 없었기에 어느 그룹 곡인지, 요즘 어느 그룹이 핫한지 등 모두 관심 밖이었다. 쉽게 말해 대중문화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좋고 나쁘다라는 게 아니라 재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면 무엇을 들었냐고 물으신다면) 팝송과 어쿠스틱 커버를 주로 들었다. 아무튼 한국 대중문화와 가요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재현은 춤을 추면서 K-POP을 본격 접하게 되었다. K-POP 클래스로 시작했지만 그건 K-POP이 좋아서라기보다 기초반 수업 시간이 딱 맞아서였다. 사실 춤 자체도 그러한데 K-POP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잘 듣지 않던 장르이다 보니 그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한국 아이돌 가수들 댄스는 난이도도 꽤 있을 거라 생각해서다.
역시 유명한 곡도 몰랐기에 댄스 수업에 가서 처음 그날 배울 곡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 그저 춤을 추는 게 재미있고 좋았기에 수업 곡에 맞추어 기본기와 안무를 배웠다. 그런데 수업에 가서 춤을 출 때마다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곡마다 포인트 안무를 한 동작씩 단계별로 배우고 무한반복하다 보면 「그 노래」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집에 와서도 I'm a queencard, I'm a queencard, I'm a I'm a..(곡명. 아이들 - Queencard)하면서 가요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요즘 인기 많은 가수나 노래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자신 있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즐거운 관심사로 향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던 팬덤 문화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 한국 아이돌 그룹들이 진짜 최고이긴 해'라면서 말이다. 춤을 추며 K-POP이라는 장르가 정말이지 멋진 춤을 추기에 최적이고 가수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이유를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가요 문화가 세계적으로 탑급에 자리한 이유가 춤과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번주에는 스우파2에서 계급미션 곡으로 나온 곡을 배운다(솔직히 계급미션이 뭔지는 잘 모른다. 재현은 스우파를 챙겨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나믹듀오, 이영지 - Smoke(Prod. Dynamicduo, Padi)
나는 달리거나 넘어지거나
둘 중에 하나야 브레이크 없는 bike
택도 없는 것들을 택도 안 뗀 옷 위로 stack it up
난 절대 빠꾸 없는 type
언더 그라운드와 힙합은 잘 듣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던 재현은 요즘 잠자기 전에도 Smoke를 듣는다. 잠자기 전에 힙합을 듣다니 과거의 재현이 놀랄 일이다.
이 곡을 좋아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수업에서 춤을 추면서 들은 가사에 반해 곡 전체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곡 전체를 들어보니 다이나믹듀오 특유의 힙합 알못도 듣기 부담 없는 힙합이라 재현은 감탄했다. 곡 전체를 들어보고 별로면 어떡하지 라는 (우스운?) 우려도 솔직히 있었지만 다이나믹듀오와 이영지는 멋지게 해냈다. 아무튼, 스스로 춤을 춘 곡을 좋아하게 되는 건 언제나 신기하고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재현은 생각한다.
다음 수업 시간에 댄스 강사님을 만나자마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저 목요일 수업 이후로 Smoke 맨날 듣잖아요 큭큭."
선생님이 특유의 큼지막한 반달웃음을 띄우며 말한다. "아 진짜? 어 그런데 그런 거 있어요. 춤추면 좋아하게 되는 거. 잘 안 듣는 노래도 춤으로 추면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그 순간 깨달았다. 느낌적으로만, 들어서만 알았던 것이 재현의 것으로 삶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이는 재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공유하는 경험 속 감정이었다.
아! 뭔가를 「직접 하게」 되면 애착이 생기고 더 좋아하게 되는 거구나.
비슷한 경험들이 떠올랐다. 재현은 홀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만의 특색이 담긴 액티비티에 참여하는 걸 좋아했다. 태국 방콕에서는 쿠킹클래스를 예약해 현지 시장에서 장을 보고, 똠양꿍부터 팟타이와 망고밥 등을 만들어 보았다. 똠양꿍이라는 음식은 딱 재현 취향은 아니지만 직접 만든 똠양꿍을 한술 두술 맛나게 떠먹었다. 그리고 쿠킹클래스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웍질을 하고, 다른 참가자들과 킬킬대며 한 테이블에 앉아 같이 만든 요리를 즐긴 순간은 방콕에서 며칠간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남았다. 그건 재현이 직접 야시장, 시암 스퀘어, 왕궁 등 방콕에 많은 즐길거리가 있었지만 역시 가장 선명한 기억은 어느 골목에 자리한 생기 있는 노란색 인테리어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곳에서 했던 쿠킹클래스라는 걸.
한강공원에 갔을 때는 친구와 함께 10km를 러닝했던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걸. 수십 번 와 본 한강공원이지만 달리면서 흘린 땀과 들뜬 기분이 만든 그날의 한강공원이 재현에게 한강공원 하면 떠오르는 보다 선명한 모습으로 남았다는 걸.
소비자를 넘어 직접 그 과정에 참여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인간이라면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직접 즐거이 참여한 경험과 그를 통해 만들어 낸 결과물은 개인적으로 더 강렬한 의미와 여운을 선사한다. 이렇게 즐거운 느낌은 자기가 직접 주무르고 노력을 기울인 대상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준다. 이는 어쩌면 무언가를 탐색하는 데 있어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면서, 나아가 지속하는 데 있어서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재현은 깨닫는다. 팔짱을 끼고서 무언가를 제대로 즐기기는 쉽지 않다는 걸. 춤을 추면서 재현은 문화를 소비하는 데서 나아가 생산자가 될 수 있었다. 보기만 했던 안무를 직접 연습하여 몸으로 표현해 낼 때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감각들이 열려 재현을 가득 채웠다. 또한 춤을 추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촬영하고 공유하면서 스스로를 작은 무대에 올리는 시도를 해 본다. 재현은 춤을 추면서 몸으로 노래를 접하고 표현한다. 재현은 춤을 추면서 느끼는 주체성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는 재현이 K-POP을 사랑하게 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