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을 닮은 아름다움에 대한 픽션
아름다움에 관해 생각할 때면 네가 떠오르곤 한다.
허튼 말들은 흘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곧은 눈썹과 굳게 다문 입매를 가진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애쓰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눈길을 끄는 이들이. 마치 무대 위 배우를 따라가는 조명처럼 네 곁에는 언제나 너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엔 타고난 빛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네가 없는 삶을 살다가 아주 오랫만에 화면 속에서 너를 다시 만났다. 사진 속에서라도 너의 얼굴을 보니 좋다. 먼 곳을 또렷이 응시하는 너의 표정을 본다. 그것만은 그대로구나. 가슴이 시려서 옛 생각이 난다. 어딘지 결연해 보이는 태도 때문일까. 너는 턱을 습관적으로 치켜들고, 수심에 잠긴 듯 미간을 살짝 내리는 습관이 있어서 꼭 굴복하지 않을 싸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곤 했지. 그렇지만 정작 눈이 마주치면 그런 짐작이 무색해지도록 해사하게 웃어보이는 사람이었다. 너는 알까. 그런 부조화가 내 부정맥에 얼마나 해로웠는지.
돌이켜보면 네가 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았다. 말을 아끼는 네가 말을 할 때, 그저 오감을 동원해 집중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사모의 전부였다. 낮은 음성으로 곧게 정돈된 언어가 신중하게 울리면 나는 귀를 쫑긋하고 숨을 한 모금 머금었지. 얇은 입술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귀중해서 단어 하나라도 혹여나 어디 흐르지 않을까 싶어 조심조심 들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경탄해 마지 않는 건 너의 두 눈이다. 탁한 도시에 집어 삼켜지지 않고, 진한 속눈썹 아래로 맹렬하게 일렁이는 분노와 사랑을 숨겨둔 깊고 새카만 바다. 언젠가 물살이 높아지면 다시 만날 지평선을 응시하듯, 흔들림 없이 여운을 담은 눈과 빛 말이다. 그 빛에는 순수가 있다. 흐리고 뿌연 세상의 가장 지독한 불순물조차 침투할 수 없는 석영 같은 눈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언제고 기꺼이 굴복한다.
사랑하던 청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와 세상은 같지 않다. 이곳은 날마다 조금씩 탁해지고 추해진다. 너는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이 모든 촌극과 더러움을 목도하고서도 평온을 유지하게 해 줄 한 쌍의 렌즈를 취하고 싶다. 너의 편에서. 너의 시선으로 네가 보는 걸 같이 바라보면서.
하지만 청아, 너를 듣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네 아름다움을 나눠줄 수는 없을까. 너 같은 자가 또 생겨날 수 있을까. 세상이 이보다 불결해지지 않도록. 너의 광휘로 이 세상을 비출 수 있다면. 왜곡할 수 없고 녹여버릴 수 없고 더럽힐 수 없는 너의 순수로 모두 닦아버릴 수는 없을까. 속을 알 수 없는 네 시선 너머로 깊고 반짝이는 것을 잠깐 엿보았다고 착각한 나는 그 희망에 매달리고 싶어진다.
청아 「명사」
누에나비의 푸른 촉수와 같이 푸르고 아름다운 눈썹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청아-하다1
속된 티가 없이 맑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