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일 늦은 아침에 깨어난다. 가족들에게 그럴 듯한(대충 날짜를 대야 함) 향후 계획을 둘러댄다
2. 평일 대낮에 지인들을 만나 밥을 얻어먹는다. 밥값으로 눈물 나는 퇴사 이유와 여전히 그럴 듯한 향후 계획을 늘어놓는다 3. 평일 밤도 2번의 반복. 다만 밥값 대신 술값을 선사받는다 4. 그럴 듯한 퇴사 이유와 향후 계획이 몇 가지 버전으로 진화되며 거의 외우게 될 즈음, 지인 찬스도 끝난다 5. 진짜로 약속 없이 밤이나 낮이나 놀게 된다
6. 눈치도 보이고, 돈도 떨어지고, 심지어 심심해서 다시 어디든 기어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7. 어케 꾸역꾸역 다른 회사에 들어간다 8. 일한다 9. 다시 1번으로...
문제는 6번에서 7번 사이에서 사람에 따라 만만찮은 심리적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이 필요하고 현장이 절실하며 동료가 그리운 실무자형 인간은 조금 더 괴로울 수 있다. 퇴사일이 지나자 마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공간에서 '신분이 변동되었다'며 득달같이 날라오는 우편물에 서럽고,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이 질문에 움찔하게 된다. "뭐 하세요?"
백수가 되고 나면 이웃집 아줌마부터 통신사에 이르기까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왜들 그리 궁금해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사이트 회원 가입을 하든, 간단한 워크숍 하나 신청하든, 신용카드를 새로 만들건, 어떤 신청양식에도 '직업' 란이 있다. 예전에는 몰랐던 건지, 아님 내가 백수가 되어서 민감해진 건지는 알 수 없다.
상대성의 원리도 시간을 통해 체감하게 된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근해서 커피 마시고 이메일 좀 체크하면 점심시간, 밥 먹고 좀 졸다 보면 오후 4시, 이후 적당히 눈치보다 칼퇴하면 하루가 슝 갔는데 백수만 되면 귀신같이 눈도 일찍 떠지고, 10분이 100분 같고, 밤에 잠도 안 온다. 혼자 살면 다행인데 가족과 동거하는 경우는 좀 난감한 노릇이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돌게 되는데 돈도 들지만 지금까지 집-직장-어쩌다 모임 이라는 판에 박힌 일상을 보내온 만큼 대낮에 거리를 헤매자니 순간 순간 허무해진다. 매번 친구 불러내기도 겸연쩍고.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자리,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수시로 들어 우울해진다. 돈을 벌지 않는 일은 쓸데없다는 월급쟁이 정신에 비춰볼 때 이런 일상은 무의미할 뿐이다. 회사일 할 때도 안 그랬으면서 백수가 되니 더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잔인해진다. 그런데.. 회사원일 때나 백수일 때나 같은 나인데... 왜 그래야 할까?
자신의 멘탈을 감시하지 말자
이것 하나만 기억해도 좀 쉬워질 수 있다. 어떤 비법을 써도 소나기 내린 후 날이 개듯 말끔히 유쾌해 질 수는 없다는 것. 또 그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수도 없다는 것. 일단 하루종일 기분이 괜찮을 수 있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 우리는 대부분 기분이 대체적으로 그냥 그렇고 자주 우울하며 가끔씩만 즐겁다. 게다가 지금은 퇴사라는 비상상황이니 당연히 우울-더 우울-비참해서 바닥-조금 살 만하지만 그래도 우울-보통의 우울 이란 사이클로 맴돌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회사 다닐 때도 죽지 못해 다녔다. 그때도 이렇게 비참한 사람은 나뿐이야, 라고 생각했다. 다만 과거여서 기억이 희미해질 뿐. 현재의 고통이 가장 강렬하고 시급한 법이다. 지금이 가장 괴로운 것 같아도 취업을 하면 곧 다른 형태의 고통이 싹을 틔울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자신의 기분, 마음의 상태에 예민해지게 된다. 우울하면 아, 난 왜 하고 싶은 퇴사를 해놓고 이럴까 자책한다. 모처럼 친구랑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낸 다음에는 백수 주제에 생각도 없다며 또 자기 탓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기분이 괜찮을 때도 걱정을 하는 편이다. '아, 기분이 또 다운되면 어쩌지?' 우울의 사이클이 한 텀 돌 것을 알기에 바닥을 치는 그 순간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오는 고통의 순간.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막막해서 참으려 해도 눈물이 터지는 그 순간. 그러나 어쩌겠나. 어차피 올 것이라면 그때까지는 힘껏 하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놀고 싶은 대로 있으면 어떨까. 백수로 계속 있든 취업을 하든 제 3의 길을 선택하든 바닥을 만나는 순간은 언젠가 또 닥칠 테니까.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라, 나를 위해
3년쯤 전(그때도 한 6개월 백수였음) <살아야 할 이유:자존의 철학>이란 책을 읽었다. 미국의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지인들의 잇단 자살에 충격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고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전 시대의 자살 관련 리서치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결국 인간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서로를 믿음으로써 존재한다는 감상적인 반(反) 자살론을 담고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어지려는 노력이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메시지에는 공감했다. 저자가 책 속에서 인용한 17세기 인본주의 사상가 존 던의 말처럼 '어떤 인간도 섬이 아니며 그 자체로 온전하지 않기' 때문.
저자는 까뮈를 인용하기도 한다.
"카뮈는 사람들이 자살을 궁극적인 저항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그의 글에 따르면 고통을 견디는 삶이야말로 궁극적인 저항이다. 자살은 <극단적인 수용이다>. 우리의 과제는 죽음을 인식하는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죽음을 날카롭게 의식하는 것과 그에 굴하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이 부조리를 만들어 내고, 부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사람을 살아있게 한다."
저자는 카뮈의 말처럼 하루하루를 헤쳐 나가는 선택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계속 호기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는 삶이 시시포스의 힘든 노동처럼 잔인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뻔한 결론이긴 해서 내가 이야기를 했던 몇 안 되는 지인들 반응은 하나같이 신통찮았다. 허나 대표적인 마음의 병들의 공통 증상이 '자아감 상실'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를 이어가는 건 중요한 일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계속 몰입하고 있던 내 문제에서 잠깐 벗어나 사회적 자아를 가동시켜야 한다. 물론 귀찮고 신경쓰이는 일이다. 가뜩이나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때는 전화도 받기 싫은데... 그래도 힘을 내서 누군가와 마주앉으면 나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내가 날 어떻게 보고 있고 판단하고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남에게 들려주는 나의 스토리텔링은 속만 끓일 때와는 달리 정리되어 보인다. 내 스토리를 듣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해주는지, 또 그 말을 듣고 무슨 감정이 드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당신에게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다만 마음이 그럴 뿐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를 꾸준히 해야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고, 자기 감정을 알아주길 원한다. 이를 위해서 만나는 것이니 'Give & Take'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일터를 떠나 한동안 개인적인 공간에만 머물게 되는 실무자형 인간 백수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침 탕비실, 점심 식당, 저녁 술집, 비공개 톡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오갔던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나 끈끈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경우 공통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퇴사 이후 서로의 공감대가 사라지는 건 당연하고 그게 'office friendship'의 한계다. 퇴사자는 더이상 현장에서의 기민한 어드바이스를 제공할 수는 없으므로 다른 것을 준비해야 한다.
'Give & Take'라고 하니까 정이 없다거나 사람 만날 때도 그렇게 의도적이어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가족도 무조건 내어주기만 하진 않는다.(저희 가족은 그렇습니다. ㅜㅜ) 뭐 대단한 걸 주라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만 하면서 만남을 독점하지 말라는 것. 거의 매일 카톡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점심을 같이 먹어주면서 내 멘탈을 챙기는 30년 지기도 내가 신세한탄을 너무 오래 하면 눈빛이 달라진다. ㅎㅎ 고민도 들어주고, 같은 회사에 다녔던 이들 취업정보도 찾아주고(내꺼 찾는 김에), 만날 때는 그쪽 사무실 근처로 간다. 마음이 괴로워서 그렇지 시간은 많으니 예전보다 조금 더 내어주는 것. 늘 답보상태인 내 이야기 하느니 남들 이야기 듣는게 재미도 있다.
항상 쉽지는 않다. 내가 아쉬워서 눈치 보는 것 같아 다 끊고 싶을 때도 있다. 한번 만나자고 거듭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인 날짜를 안 주는 지인이 있었는데 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나나?' 거듭된 실패자 또는 영양가 없는 사람의 냄새 같은 것? 근데 그렇다 한들 뭐 어쩌겠나. 대놓고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상 그 속마음은 영원히 알 수 없다. 만남이라는 건 나든 상대방이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니 그만큼의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피차 성사될 수 없는 것. 내가 만나고 싶으면 연락해서 약속이 잡히면 만나고, 아니면 패스. 심플하게... 안 그래도 백수 시기 마음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