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에 백수 '시기'라고 했지만 사실 이 '시기'라는 말은 시작과 끝이 있을 때 사용한다. 보통 시작할 때 끝이날 때가 정해져 있던가 아니면 적어도 일단 끝난 뒤에 '아, 그때는...'하고 회고할 때 쓰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백수로서 현재진행형인 상태에서는 시작점은 알지만 언제 끝날지는 오리무중이라 상당히 막연해진다. 결국 이 상태가 영원히 이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으로 힘들어하게 된다. 죄진 사람들도 정해진 형량을 선고받는데 백수는 6개월인지, 1년인지, 또는 아예 무기징역인지 짐작이 안 간다.
모처럼 이야기가 오가고 있던 일이 엎어진다던가 최종 면접까지 가서 떨어지거나 백수 동기가 취업에 성공하던가 하는 일들이 생기면 시간, 날짜, 세월의 무게가 더욱 다가온다. 취업이라는 게 거의 전적으로 외부의 상황에 달려있는 요즘 같은 시절에(네가 노력하기 나름이라는 '조언'은 사양합니다) 더욱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어쩌겠나.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르고 날이 가는 게 무섭긴 하지만, 언젠가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때까지 세상과 이어져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무엇보다 취업이 된다 해도 이 역시 영원히 계속될 해피 엔딩은 아닐 것. 100% 퍼펙트한 완벽한 직장이 아니라면(과연 있기나 할까?) 어느 시점엔가 다시 다른 직장을 찾을 날이 있을 것이다. 취준 중이거나, 취직해 있거나. 결국 사람들의 상태는 이 두 가지다.
----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지만 정말 어렵다. ㅎㅎ 특히 일에 매달려 동동거리며 살아온 실무자형 인간에게는 더욱 그렇다. 원래 그들에게 쉼이란 일과 일 사이에 끼여들어 그간의 노동과 맞바꾼 돈을 쓰며 '일할 맛'을 만끽하거나 적어도 노동의 당위성을 납득하는 의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돈도 못 벌면서 쉬다니, 놀아야 한다니 재미 없다. 무엇보다 떳떳하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 놓고 놀지도 못한다.
퇴사 이후 세계여행도 가고, 한 달 살기도 하고, 다시 취업 준비도 하고... 길은 많을 텐데 왜 그리 전전긍긍하냐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못 벌면 마음이 약해진다.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드는 잔고에 애가 탄다. 벌어 본 사람들, 그래서 쓸 데도 많은 사람들은 한층 우울해진다.
2018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취업자 대 자영업자의 비율은 2682만 2천명 대 563만8천명으로 자영업자가 21%라고 한다. 항간에서는 한국 자영업자 비중이 OECD 최고치라고도 하고(사실은 2017년 기준으로 5위 수준), 너나 할 것 없이 '내 사업'하는 것 같아도 2018년에만 전년대비 4만 4천명이 감소한 수치라고 한다. 물론 특정 직업군 및 연령대에 따라 자영업 비중이 높을 수도 있겠지만 여튼 경제활동을 하는 열 사람 중 여덟이 어딘가 들어가 있고, 임금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돈을 못 버는 상태가 마음이 좋을 리 없다.
취업을 해야 그제서야 '아, 그때 좀 쉬면서 여행이라도 다녀올 걸'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은 이미 결말을 알게 되었으니 할 수 있는 것. 출구가 없는 동굴을 헤매는 듯 막막하기만 한 실무자형 인간 백수에겐 '좀 쉴 때가 좋은 거야. 지금을 즐겨'라는 말이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실질적인 백수 생활 가이드가 필요하다. 마치 회사에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