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를 낸 후의 실무자

실무자형 인간은 기본적으로 백수가 되면 불행해진다

by 유즈 uze

브런치에도 퇴사 관련 글이 엄청 많은데, 사실 누구나 마음과 바탕화면 폴더에 사표 한장 품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실무자형 인간이라면 가능하면 프리랜서 또는 백수가 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문제는 이 사실을 퇴사 후 집에 혼자 남아 깨닫게 되는 것.


퇴사 러쉬라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사하지 않으며 이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고민해서 결행하든, 슬슬 밀려나 어쩔 수 없이든, 번개치듯 갑자기 울컥해서든 어쨌간에 퇴사를 하는 순간이 인생에 몇 번씩 찾아온다. 이때 실무자형 인간은 꼭 다음 자리를 알아보고 이직을 하던가 여의치않으면 적어도 백수 시기에 어떤 멘탈이 될 것인지 대비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실무자형 인간은 철저히 현장이 필요한 타입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전문직을 원하는 사람들처럼 안정성, 지속가능성을 담보한 '울타리'나 '안전망'을 원하는 거냐 하면 그것과는 좀 다르다. 실무자형 인간은 일단의 그룹이 한 목표를 향해 집중하는 분위기 그 자체를 좋아한다. 그는 야근을 하며 투덜거릴 동료와 대개의 경우 열받게 하지만 드물게 존경할 구석도 있는 상사, 밤새 작성한 팀 기획안을 발표할 회의석상이 필요하다. 해내야 할 일을 순조롭게 돌리고, 때로는 안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데서 짜릿함을 느끼는 사람. 그래서 남의 일까지 떠맡아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실무자형 인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철저히 조직형 인간인 것이냐. 그건 또 아니다. 실무자형 인간은 일이 제대로 되는 걸 중시하기 때문에 이를 저해하는 조직 풍토에는 내일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분노하며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예를 들자면 프리랜서의 마인드를 가진 월급쟁이라고 할까. 내 이름으로 나가는 일, 내 팀이 함께 하는 일, 내가 이 회사에 있는 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물론 실용적이라 이런 말은 낯간지러워서 입밖으로는 못 내겠지만.


사람들이 모여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 현장은 100% 웬만한 규모의 자본이 있어야 조성되고 유지될 수 있다. 뜻맞는 사람들이 모여 동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들이 모여 일하는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조직들도 있겠으나 그 비율은 미미하고 수입도 적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실무형 인간은 유전자 상 임금노동자 대 창업가 또는 프리랜서의 비율이 잘해야 7:3 정도로 월급쟁이의 핏줄이 세다. 한마디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데는 젬병이고 이미 만들어진 환경에서 일을 잘 한다는 것. 따라서 뭔 일이 생겨 퇴사할 때는 꼴랑 3 있는 프리랜서의 유전자가 발현해 결행하지만(내가 여기 아님 일할데가 없겠어! 확 나도 차리던지!) 울컥 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사무실 대신 집에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현타가 오는 것이다.


한동안은 그동안 못 읽었던 책도 읽고, 건강도 추스리고, 여행도 갈 수 있다. 그러나 뼛속까지 일 버릇이 젖어든 실무자형 인간은 다음 직장 출근날짜를 받아놓지 않은 이상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한다. 속도 상한다. 자기 몫은 커녕 남들 힘들게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인간들도 오래 오래 다니는데 왜 나는 주기적으로 구직사이트를 기웃거려야 하는지 열통이 터진다. 달력 넘어가는 거 보면 머리가 쭈뼛 설만큼 무섭기도 하다. 그래서 실무자형 인간은 백수시기 특히 세심한 멘탈관리가 필요하다. 물론 그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