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여는 그 마음
굳이 챙겨 닫는 내 마음은 또 뭘까
지난해부터였다. 초봄이 지나고 겨우 바람에 찬 기운이 가셨다 싶은 시기부터 어느새 아파트 계단 쪽 창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마주 보는 계단식이라서 복도식보다야 환기가 좀 안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각각 두 가구씩 공유하는 작은 통로로 들어가는 방화문이 하나 더 있고 통로에도 창문이 나 있어서 굳이 중앙 계단의 창문까지 열어둘 필요는 지금까지(생긴 지 10년 됐음) 없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 계단 창문을 일상적으로 열어두기 시작한 것이다.
참 얄궂은 게 예전에는 의식도 안 하던 것이 한번 눈에 들어오면 줄기차게 거슬리게 된다. 층간소음보다 심각하진 않지만 이 건도 그랬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아직 살쌀했을 때라서 '누가 음식이라도 했었나 보다'하고 무심코 닫았다. 그런데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보니 다시 열려 있었다. 또 닫았다. 그랬더니 다음 날 아침에는 마치 항의라도 하듯 한쪽 창문 전체가 홀랑 열려 있었다.(아예 열린 창문 부분이 반대쪽 창문 쪽까지 쭈욱 밀려나 있었다.)
한 두 번 누군지도 모를 이와 보이지 않는 실랑이를 하고 나니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으러 계단 아래위를 오가면서(꼭 두 층 창문 한쪽만 활짝 여는 것이 특징) 왠지 마주칠까 봐 소리 안 나게 살금살금 걸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아침에 내가 닫고, 점심에서 저녁 사이 누군가가 닫고, 다시 내가 저녁에 닫고... 언젠가부터는 나 또한 왜 이리 집요한가 고민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이 기묘한 창문 열기가 언짢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계단 창문에는 방충망이 없어서 빛을 쫓아온 각종 벌레들이 꼬였고 장마철에는 소나기가 들이쳐서 창문턱과 벽에 흔적이 남았다. 한여름 특대형 매미가 들어와서 층 전체가 떠나갈 만큼 엄청난 데시벨로 울어 대기도 했다. 결국 경비실 명의로 창문을 열지 말라는 게시물이 엘리베이터에 나붙었지만 얼굴 모르는 그는 줄기차게 창문을 열었고, 찬바람이 도는 늦가을에서야 겨우 멈췄다. 넌더리가 났는지 경비실은 창문 틈에 나사못을 박아서 열리지 않게 했고, 그 상태로 겨울을 지나 봄을 맞았다.
늦봄을 지나 날씨가 더워지자 창문틀의 나사못이 제거되었고 그는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문득 쳐다본 순간 다시 어김없이 오른쪽 창문(쳐다보는 방향에서)이 열려 있었다. 어쩌겠나. 이젠 그냥 놔두기로 했다. 나와 엄마는 그날 날씨를 확인하고 소나기나 비 예보가 있으면 닫고, 그렇지 않으면 놔두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그도 예전처럼 화가 난 듯이 한껏 창문을 열어젖히지는 않는다. 그냥 반 정도 연다. 다른 이들도 대충 그러기로 한 듯하다.
그 마음은 대체 뭘까. 앞 뒤로 아파트만 꽉꽉 들어찬 단지에서 속시원히 바람이 통할 리도 없는데 왜 아침저녁으로 자기 집 문을 열고 나와 계단 창문을 열까. 그걸 또 집요하게 계속 닫는 나 같은 사람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그 역시 브런치 같은 플랫폼에서 강박적으로 창문을 닫는 얼굴 모르는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애매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우리들도 '이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서울시나 구 같은 지자체에서 '마을 만들기'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행사들도 하고 있지만 내가 대충 접기로 한 건 그를 같은 마을 주민으로 생각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안쓰러운... 지하철에서 혼잣말을 하거나 욕을 하는 사람을 피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본격적으로 마음을 터놓고 해결하기보다는 서로의 스트레스 레벨을 조심스럽게 살펴 최악의 사태를 맞지 않도록 피해 가는 전략. 층간소음, 흡연 등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말 한마디 안 섞고 피차 타협하는 것이다. 이런데.. 무슨 '마을'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