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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uze Aug 06. 2019

중고서점에 일본여행 가이드북을 팔았다

한동안 일상을 같이 할 수 없게 된 그 나라, 일본  

날씨는 덥지만 오늘 며칠 동안 생각했던 것을 행동에 옮겼다. 도쿄 시티 가이드 한 권, 나고야 및 교외여행 가이드 두 권, 그리고 일본만화 네 권. 모두 일곱 권을 에코백에 넣고 중고서점까지 걸어가자니 땀이 흥건해졌지만 웬지 오늘은 실행해야 할 것 같았다. 극일이나 불매운동 뭐 그런 거창한 마음은 아니었고, 다들 일본여행 안 갈 테니 가이드북 중고가가 더 떨어지기 전에 팔자, 약삭빠른 속셈도 아니다. 그냥, 한동안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내가 가본 일본 도시는 도쿄, 오사카, 교토, 나고야 정도. 대도시 여행을 좋아해서 홍콩, 싱가포르, 방콕도 사랑하지만 그중에서도 도쿄 사랑은 압도적이었다. 정확히 세 본 적은 없지만 취직해서 내 수입이 생긴 다음부터 지금까지 족히 열 번은 넘게 다녀온 것 같다. 맘에 맞는 친구들과도 갔지만 주로 혼자 갔다. 20~30대에는 식당에서 혼자 밥먹어도 아무도 뭐라 않는 일본이 '오지랖이 태평양'인 한국보다 100배 쿨해서 너무 좋았다. 가벼운 가방 하나 메고 취향 맞는 카페나 서점, 쇼핑몰을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야마노테선 전철에서 바라보는 도쿄의 해질녘 풍경은 화려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했다.    


난 특히 일본 미스테리의 광팬이다. 어떤 정도냐 하면 에도 시대(1603~1867)를 배경으로 한 미야베 미유키의 시리즈물(현재 총 21권이 나와있음)을 다 섭렵한 덕분에 그 시대 일본 서민들의 풍속까지 얼추 아는 반면 조선시대 상인들이 어찌 살았는지는 전혀 모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릴러도 꽤 많이 읽었고 영화 자체를 그닥 많이 보지 않는데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은 거의 다 보았다. 한때는 분기별로 발표되는 일본 각 방송사 드라마 라인업을 다 외웠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내 어린 시절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일상은 계속된다'랄까. 부조리하고 어긋난 세상이 크게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집을 치우면서 하루를 이어나가는 담담한 태도가 좋았다. 호기심에 번득이는 눈, 높고 큰 목소리로 번번이 남의 선을 침범하는 한국의 쩔쩔 끓는 온도보다는 난 그 미지근한 듯 일본의 온도가 맞았다. 그래서 한때는 도쿄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했었다'라는 과거형인 건 시간이 지나고(정확히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 시대물에서 무사의 아내가 끝도 없이 남편에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드라마 속 회사 탕비실이 대졸 남자사원을 쟁취하기 위한 OL들의 전쟁터였던 건 뭐 우리나라도 그랬었다 납득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이로 인한 원전 누출 때의 반응은 놀라웠다. 비영리 쪽에 있던 때라 반원전 등 사회운동을 하는 일본 활동가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들은 스스로 일본 사회에서 아직은 비주류라고 했다. 지금까지 집계도 안 되는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떤 시민들은 '먹어서 응원하자'며 쏟아지는 후쿠시마산 농작물을 조용히 피해가고, 정부의 주장만을 주로 방송하는 NHK 수신료를 순순히 내고, '재건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기대에 차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돈을 주었고, 2015년 위안부 합의로 또 돈을 주었는데 한국은 왜 자꾸 그러냐며, 성가시고, 귀찮게 되었다는 반응도 있단다.


조금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남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향은 예의바름만이 아니라 피차 상관하기 싫어하는 자기보호의 의지일 수도, 외부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생활에 집중하는 자세는 의연함이 아니라 능동적인 변화를 애당초 포기한 무기력함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혼네(본심,本音)과 다테마에(배려, 建前). 일본인들에게는 두 개의 마음이 있다고들 하니 그럴 수도 있는 일. 그러나 한 개든 두 개든 간에 명백한 침략과 수탈까지 깡그리 부인하는 일부 일본인들의 마음은  대체 어느 쪽일까. 아니면 머리에서 나오는 계산?


분명히 일어났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살아 있는데 그 자체를 없는 것으로 치는 데서, 나아가 전혀 다른 것이라 주장하는 데서 두 나라의 비극이 시작된다. 악랄한 성범죄는 자발적인 성매매로, 손해 배상금은 원조금으로, 해방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베푼 은혜로 바꾸는 놀라운 정신승리. 문제는 아베 정부인데 새삼스레 예전부터 즐겨왔던 일본 콘텐츠가 고깝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도쿄, 나고야 가이드북과 함께 중고 서점에 넘긴 만화책은 풍광 좋은 섬에 사는 할아버지와 고양이의 이야기다. 아내를 여윈 뒤 고양이와 함께 노후를 보내는 할아버지와 그 이웃들 이야기가 푸근하고 정감있어서 네 권까지 사모았다. 


태평양 전쟁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할아버지는 어린 아이였는데 섬 사람들은 전쟁에 나간 남자들이 무사히 돌아가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섬 안의 개들을 죽인다. 이때 귀여워하던 강아지를 잃었던 친구와 당시를 회상하던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아련한 유년시절의 상실감 정도였지만 그 땅 어딘가 떠돌던 조선인들은 생사를 넘나들며 절박했겠지 하는... 온 동네 아이들이 한때 유일하게 텔레비전이 있던 집에 전부 몰려가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새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생겼다는 에피소드를 보고 손을 꼽아보니 그때가 딱 한국전쟁으로 특수를 맞아 전 국민이 허리를 펴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씁쓸했던 것도 그렇고. 


서로 쌓인 것이 있으니 평생 말 조심, 행동 조심해야 하는 불편한 이웃. 그래도 같이 어울려가며 살아가야 하는데 각자 가진 과거의 상 자체가 아예 다르니 현재와 미래까지 어그러져 버린다. 무심코 뱉은 말의 행간에서도 용케 아픔과 상처를 발견하게 되는 건 존재를 아예 부정당했다는 분노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을 리 없는 젊은 세대조차 기꺼이 100년 전의 정신을 소환하는 지금,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간다. 지난해 가을 4박 5일 멋진 여행을 했던 추부 지방의 중심도시 나고야에서는 소녀상이 쫓겨났고, 한국에서는 내노라하는 중견 정치인들이 '도쿄에 가면 코피가 난다'는 티셔츠를 입고 웃는다. 


양쪽 다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참에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 내가 만났던 일본인 활동가들이 지금 어딘가에서 #좋아요 한국이란 해시태그를 달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면 그나마 기분이 나아진다. 어쨌거나 한동안 도쿄는 갈 수 없을 테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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