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어르신, 그 사이 어딘가
주말이 지나 다시 전화가 왔다. 주위에 같은 출판을 하는 지인들 위주로 의견을 들어봤단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다들 '오십대의 경우 귀농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등 선택지가 다양하므로, 취준을 하는 경우가 전반적인 호응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책으로 내기에는 대중성이 부족할 것 같다' 대충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고 한다. 뭔가 장황하게 들렸는데 계속된 통화에서 그가 다른 화제도 섞어가면서 돌려 돌려 하는 말들을 솎아낸 결과 내가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다.
*아무리 늦어도 마흔 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 2의 인생을 살 결심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마흔 어쩌고 하는 책이 압도적으로 많고 오십 관련 책이 적은 건 그 때문일듯). 그래서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농을 하든 자영업을 하든 다른 길을 가며, 너처럼 그 나이까지 면접시험장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특히 출판계 주 소비자층이 20~30대 여성임을 감안할 때 그 아이템은 좀 먹히지 않을 것 같다.(찌질하죠, 아무래도?)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가 이해한 바일 뿐 후배나 조언을 주는 분들이 말해주려던 취지는 아닐 수 있다.
직접 기획서를 써서 제안했는데 이런 답을 들었다면 섭섭할 수도 있었겠지만 짧은 블로그 글 하나 보고 잠깐이지만 괜찮은 아이템 대접을 해준 후배에겐 오히려 고마울 뿐. 게다가 때마침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뒤라 이 정도의 설왕설래는 사소한 일로 생각되었다. 무섭게 물이 차오르는 반지하방에서 필사적으로 물건을 건지다가 처연히 창문 밖을 바라보며 돌아나오던 송강호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던 타이밍이었다.
이 나이 먹으면서 그나마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멘탈 유지의 중요성이다. 모든 사람들은 크고 작은 개인적 불행을 안고 있으며, 그로 인한 어둠이 낮의 일상을 잠식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 사회의 속된 기준에서 잘 나가든 못 나가든 다 마찬가지. 그 어둠으로 들어가는 길의 초입에서 아주 잠깐 서 있었을 뿐이지만 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져도 이긴 척, 힘들어도 괜찮은 척, 울고 싶어도 웃는 척... 어떤 이들은 그걸 '정신승리'라며 비웃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 영화속 그처럼.
같은 나이인 한 친구는 우리가 60, 70대의 삶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그들 역시 마찬가지일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하긴 내 주변엔 방황하는 또래들이 꽤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는지는 좀 의문이다. 회사에서 임원급이지만 나오면 할 것이 없어 버틴다는 이, 수십년 출산과 육아, 입시 뒷바라지까지 해냈으나 이제 남편 눈치가 보여 알바라도 할까 고민 중인 이, 일 잘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으나 경력이 쌓일 수록 더 작은 회사에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고민 중인 이. 특히 이르면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 이제는 정년퇴직은 꿈도 꿀 수 없게 된 차장, 부장 연령대 사람들의 하소연이 많다. 다들 어떻게 살아야 하나 24시간 고민 중인 '취준생'인데 왜 없다는 걸까. 내 주변에만 유독 '루저'가 많은 건가.
어쩌면 지금 방황하는 오십대가 있다면 청년에게는 절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은 자신의 근미래로 여겨지기 때문일까. 어르신에게는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실수와 게으름 끝에 도태되어 버린 못난 놈으로 치부되기 때문일까. 그래서 청년과 어르신 사이, 그 어딘가에서 마흔 즈음에 새로운 길을 찾아 성공적인 커리어 전환을 이뤄낸 오십대들만이 공식적인 인정을 받고 나머지는 숨죽이고 있는 건가. 그 나이에 일자리를 찾는다, 지금 이 길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 쪽팔리니까 그냥 그림자로 조용히 살고 있는 건가.
이런 사연으로 잠깐이나마 출판 아이템으로 고려되었던 '오십(50)대 취준생'은 미천한 브런치의 말단 작품 꼭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정도가 딱 맞는 것 같긴 하다. 앞으로 그 존재가 희귀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혹 올릴 예정이다. 혹시라도 '이게 내 얘기다'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반갑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은 일이다. 어느 사회든 '찌질이'들은 적을 수록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