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50)이라는 나이
어찌 보면 구차하고, 또 어찌 보면 얄미운, 여튼 절대 안 되고픈?
'오십(50)대 취준생'이란 매거진을 발행하고 글을 올리면서 솔직히 많이 주저했다. 여는 글 '오십(50)대 취준생도 있답니다'에도 나오지만 오십대가 뭘 한다는 건, 특히 요즘 같은 불황기에 취직한다고 기웃거리는 모양새는 잘 봐야 칙칙하고, 심지어 얄미워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맞는 이야기다. 천성이 뭐든 진득하게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입사-퇴사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나는 그 많은 회사들 거의 대부분 정규직으로 다녔다. 지금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4대 보험, 퇴직금, 연차, 추석 상여금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나의 취준 이야기를 누군가는 짜증 나는 느낌으로 보지 않을까 두려웠다. 내가 '정년 은퇴 후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보면 드는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은퇴하신 분들 죄송합니다ㅠ) 이렇게 내릿사랑도 아닌데 나이별, 세대별로 흘러내리는 애증의 감정...
나이에 대한 자기 검열은 바로 직전 직장이 법청 청년, 그러니까 만 18세 이상 39세 이하 연령대를 주 대상으로 하는 곳이어서 더욱 심해졌었다. 업무 내용을 정확히 정하고 4대 보험 없는 계약직으로 들어갔는데도 한동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청년 일자리는 아니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잠깐이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됐을 때는 더욱 몸을 낮췄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볼까 봐 조마조마했고, 새치가 생기는 대로 흑갈색으로 염색을 했다. 회의만 하면 청년을 둘러싼 현 상황 분석이 필수고, '꼰대'론이 주석처럼 따라붙는 분위기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자격지심 탓이 더 컸지만 나로서는 최소한의 처세였다. 나온 지금은 아~주 마음이 편해졌다.
문제는 이 나이별, 세대별 구분이 반드시 정확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386, 586, 4050 세대, X세대, 88만 원 세대, 밀레니얼 세대, 90년대생 등 세대를 지칭하는 많은 말들이 쏟아져 한바탕 떠들썩하게 회자된 후 잠잠해진다. 이후 그들이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대로 쓰이기도 한다.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나온 4050 세대 책임론의 경우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거쳐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까지 연달아 보수 후보가 당선되면서 당시 기득권을 갖고 있던 중장년층에게 비판이 쏟아진 것인데 이미 그분들 중 일부는 지금 60대에 접어들었다.
386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나의 경우는 엄밀하게는 1990년대에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에 해당하진 않는다. 무엇보다 IMF 때 회사의 실무를 담당하던 대리 급이라 해고를 면했고, 2000년대에는 부동산 경기가 좋아 내 집 마련하고도 한 채 더 샀다는 선배님들의 발자취에 정확히 반 보씩 뒤처지며 물을 먹었던 것 같다.(IMF 때 주니어라 중노동에 닷컴 및 부동산 호경기에는 모아 둔 돈이 없었음..) 그분들이 다 성공을 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대충 가늠해보면 386세대와 88만 원 세대 중간 정도? 가끔 X세대라는 말도 들어보았지만 그건 문화나 소비성향 등에 더 집중한 개념인 것 같고 무엇보다 그때는 나보다 스타일 좋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남들 다 있는 세대 이름 하나 못 갖고 나이를 먹어 이제 오십이 되었네요.
누구나 자기 입장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법. 오십대에 막 진입한 나로서는 이 나이가 참으로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40대라면 20대, 30대가 큰 마음먹고 아직 안 늦었다 위로하며 품어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나이 같다.(차장님, 이리 오세요!) 60대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쌓은 성과와 지혜를 나누는 시니어로 자리잡지 않을까. 그에 비해 50대는 뭘 해도 욕심스러워 보일 것 같아 어디서든 조심스럽다. 물론 나만의 자의식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같은 연배의 마음은 비슷한 건지 한 후배는 브런치를 본 뒤 당부했다. "가능한 구질구질하지 않고 산뜻하게 보이게 노력해 달라"고 말이다.
다행히 나로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조회수와 라이킷(구독자도 늘었어요.. 엉엉) 덕분에 아주 이상하진 않았나 보다 짐작만 할 뿐. 간판에는 나이를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 이건 역설적으로 나이에만 신경 쓰느라 예전 직장 청년 동료와 술 한 잔 제대로 못 하고 떠나온 내가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다. 막연한 걱정과 불안, 후회에 가득 차 이곳저곳을 방랑하는 이야기, 그 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만 뱉어놓은 순간 '구질구질해 보일까 봐' 애써 삼킨 사람들의 에피소드다. 세대가 다르다고 누군가를 따돌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까워지는 노력도 내키지 않는, 그렇게 지금 현재의 나이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