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고민을 듣는 법
늘 주의하지만 무심코 잊어버리는 그것
일전에 예전 직장 동료와 밥을 먹으며 들었던 말이 새삼 와닿는다. 직장에서 번아웃 상태인 그녀는 나도 아는 한 지인을 만난 게 큰 힘이 되었다고 전했다. "그냥, 그런 말만 해줬어요. 얼마나 힘들었을 거야. 그랬겠네. 그렇게 들어주기만 하니까 속이 시원하고 정리가 되더라고요."
세상 친절하고 사려깊은 이들도 남의 고민을 들어주며 실수를 한다. 이중 가장 흔한 것이 상대방의 문제를 '축소'하거나 '비교'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퇴사를 고민하는 이에게 "지금 취직못한 사람이 지천인데 행복한 고민"이라고 한다거나 전세금 인상으로 골머리를 앓는다는 말에 "월세 사는 건 더 팍팍하다"고 응수하는 것.
나름 선의에서 우러난 '객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받아치면 고민 당사자는 머쓱해지고 만다. 이런 말들은 수없이 변주된다. 넌 집이 있잖아. 대기업 다니잖아. 공무원이잖아. 부모님 형편이 괜찮잖아. 남편도 벌잖아. 애들이 그 정도만 공부해도 난 걱정이 없겠다. 연금도 나오는데 무슨 걱정이야 등등. 나 또한 조심스럽게 퇴사 의향을 밝혔다가 '속편한 소리'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고 결혼한 친구들한테는 '혼잣몸이라 팔자 좋은 줄 알라'는 이야기는 무시로 듣는다.
물론 세상에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 건 좋은 일이다. 나라, 세계, 지구의 시민으로서 공동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러나 남의 불행이 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디딤돌로 사용되는 건 반대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나으니까 라는 만족감이 내가 저 사람을 밟고 일어섰어, 라는 승리감보다 나을 건 뭔가.
자신의 처지를 들려주며 '나보단 네가 나아'라고 위로해주는 것도 별로다. 심사 꼬였을 때는 그냥 별 거 아닌 걸로 징징대지 말란 소리로 들린다.
사람들의 고민은 가지가지. 그들이 처한 상황은 더욱 가지가지. 서로 견주어보며 누구의 고민이 더 절실한지 타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 하소연을 하면 절대 토달지 않고 들어줘야 하는데 내 앞가림이 시급하여 자꾸 '비교의 본능'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조만간 그 분 좀 만나러 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