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Oct 10. 2020

달의 다른 이름, 어머님

  “어머님!”


  하늘이 구름 사이에 섬처럼 떠있고, 구름 테두리는 하얗게 빛났다. 구름은 안개가 되어 산봉우리를 덮었고, 사라진 산과 하늘의 경계로 젊은 남성의 소리가 퍼져나갔다. 나는 수영장 끝자락에 맞닿은 충주호 풍경을 보고 있었다. 남자의 외침에 나는 수영장 바깥에 앉아 계신 시어머님을 돌아봤다. ‘어머님’이라는 호칭이 처음으로 내 인생으로 들어온 6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28살 겨울이었다. 미국식 중식당에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예비 시부모님과 시누이를 마주 본 채 지금의 신랑과 나란히 앉았다. 얇은 입술이 활짝 펼쳐지며 웃는 모습을 보고 신랑의 웃는 모습이 어머님으로부터 온 걸 알 수 있었다. 그날 어머님은 자신의 아들이 커플링을 집에 두고 갔다가 황급히 돌아온 이야기를 하셨는데, 나는 신랑이 아닌 신랑의 행동을 사랑스럽게 보는 어머님이 보였다. 그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님의 얼굴은 빛이 났다. 긴장으로 묻힌 대화 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이야기이다. 어색하게 ‘어머님’하고 부르던 그날 이후, 나는 결혼했고 시어머님과 가족이 되었다.  내가 ‘어머님’하고 부르는 사람은 오직 시어머님뿐이었다.


  “어머님! 수영모자 쓰고 들어가셔야 돼요!”


  충주호의 풍경이 펼쳐진 숲 속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이 일어나서 걸어 나오셨다. 단발 길이의 파마머리, 컬 있는 앞머리, 신랑과 닮은 미소까지 어머님의 모습은 6년 전 그대로였다.  어머님은 시누이와 함께 숲으로 둘러싸인 수영장 풀 가까이 다가오셨다. 6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지금 어머님은 머리를 뒤로 묶고, 앞머리를 하늘색 모자로 덮었다는 점이다. 아까부터 젊은 남성이 부르는 수영모자를 써야 하는 ‘어머님’은 내 ‘어머님’이 아니었다.


  맙소사. 나는 수영장 풀에서 모자를 쓰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내 몸을 확인했다. ‘어머님’이라고 부를 만한 이유를 몸에서 찾으려 했다. 지독한 입덧으로 먹는 거마다 토해낸 임신 기간 덕분에 출산 전 후로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출산으로 달라진 골격 때문인 걸까. 나는 ‘저기요’도 아닌 ‘어머님’으로 나를 부르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언제부터 ‘어머님’이었던 걸까.


  출산하는 날부터 처음 듣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병원에서 ‘산모님’이라는 호칭을 내내 들었다. 산후조리원을 지나면서 ‘산모님’과 함께 ‘어머님’이라는 소리도 듣기 시작했다. 출산 4주 차에 아기에게 BCG 예방접종을 맞추러 소아과를 방문 한 날에는 병원 관계자가 모두 나를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점점 ‘산모님’은 사라지고 ‘어머님’만 남았다. 어떤 날은 아기용품을 판촉 하는 판매원이 전화해서 ‘어머님~’하고 부르기도 했고,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상담을 할 때도 선생님들은 나를 ‘어머님~’하고 지칭했다. 아기가 9개월이나 되었으니, ‘어머님’이라는 호칭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을 만도 한데, 수영장에서는 충격으로 얼어버렸다. 수영장에 울려 퍼지는 ‘어머님’이라는 소리가 세상을 향해 내가 ‘어머님’이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소리친 직원에게 나를 부른 거냐고 쭈뼛거리며 확인했다. 그는 맞다며 다시 한번 나를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로 황급히 수영모를 렌트해서 받았다. 그 사이 내 ‘어머님’은 수영장 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신랑과 9개월 아기를 보셨다. 튜브에 팔을 걸친 아기가 발을 바 등대는 모습이 귀엽다고 시누이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말하고 계셨다.  어머님의 웃는 얼굴이 처음 뵀을 때처럼 어딘지 빛이 났다.


  출산 후 나는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했고, 시댁을 나온 뒤에도 시부모님은 근처에 사는 우리 집에 자주 방문해서 아기를 보셨다. 아기가 너무 예쁘다고 하는 내게 어머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클수록 더 예쁘다고. 신랑을 키울 때도 옹알이하고, 걷고, 크는 순간마다 예뻤다고 말씀하셨다. 어느 날 내가 우는 아기를 달래다 지치자 어머님이 아기를 안고 달랬다. 나는 어머님께 신랑 아기 때도 힘드셨겠다고 말했는데, 어머님은 신랑이 아기 때 운 기억이 없다고 하셨다. 울지 않는 아기가 세상에 있을까. 어머님은 신랑의 밝은 날만 마음에 담은 것 같았다.


  또 어느 날 아버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아기와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신랑도 아기 때 대학병원을 자주 갔다며, 당시 어머님도 걱정을 많이 했고 집에는 신랑 이름으로 된 진료카드가 대학병원 별로 하나씩 있었다고 이야기하시고는 웃으셨다. 무탈하게 성장한 신랑처럼 우리 아기도 별 일 아닐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버님 말씀처럼 날 때부터 휘어있는 우리 아기의 왼쪽 가운데 발가락은 그냥 두고 키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며 어머님을 떠올렸다. 어머님은 신랑 이름으로 된 대학병원 진료카드 수만큼 더 많은 걱정의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신랑이 아빠가 된 후에 어머님은 반찬을 해주고, 과일을 사다 주기 시작하셨다. 어머님은 오실 때마다 힘들지 않은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으셨다. 자신의 아들이 이룬 가정에 추가된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항상 살피셨다. 어머님은 분명 아들의 고된 날을 걱정하신 것이다. 신랑의 날들을 밝히는 어머님의 얼굴은 항상 빛이 났던 것 같다.


  태양을 가린 충주호 구름 아래 어머님 얼굴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어머님은 아빠가 된 아들이 아들과 수영장에서 보내는 행복한 시간을 눈에 담고 계셨다. 아기 때 아팠던 날들과 예쁘게 성장하는 날들, 아빠가 된 후 보내는 고된 날들과 행복한 날들을 모두 옆에서 지키는 어머님이 문득 달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이라는 지구를 만난 달. 자신만의 우주를 살던 행성이 어느 날 지구를 만나서 지구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 행성은 지구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밝은 곳은 숨어서 지켜봤다. 지구가 속한 우주에서는 그 행성을 ‘달’이라고 불렀다. 자식이라는 지구를 만나면 그 아이의 우주에서는 엄마를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어머님의 지구 옆에 내 지구를 바라봤다. 펭귄이 그려진 하늘색 래시가드를 입은 내 지구가 충주호를 향해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 ‘어머님’처럼 우리 아기의 ‘어머님’이 되야겠다. 나는 렌트한 하얀색 수모를 쓰고 내 지구에게 다가가며 생각했다. 너의 달이 되어 네 어두운 날은 밝히고 밝은 날은 지켜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닝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