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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11. 2020

조금만 천천히 커줄래?

  사진 앱에서 엄지손가락을 몇 차례 움직여서 아기의 예전 모습이 담긴 위치로 이동했다. 이쯤이었던가. 아기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서 아기의 손과 내 손을 찍은 사진을 찾고 있었다. 어느덧 자라 버린 우리 아기의 손을 보다가 문득 예전에 찍어둔 그 사진이 떠올랐다. 우리 아기 손은 얼마큼 자란 걸까.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꼬물이 시절의 아기를 마주했다. 얼굴도 눈도 코도 자랐구나. 사진 속 아기는 하얀 태지가 빨간 피부에 붙어 있었고, 반쯤만 뜬 것 같은 눈이 무심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매끈하고 뽀얀 피부, 또렷이 뜨는 눈을 가진 지금과 달랐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른 얼굴은 브이라인을 뽐내고 있었고, 손과 발마저 뼈의 윤곽을 따라 살이 겨우 붙어있었다. 잘못 손대면 저 뼈가 부러질까 조심했었는데, 지금은 토실토실을 넘어 빵실한 두 턱을 갖추었다. 또 손등, 발등에는 살이 두툼하게 차올랐다. 불과 6개월 전에 이런 모습이었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그때는 눈 맞춤도 안돼서 내가 고개를 요리조리해서 아기를 봐도 아기는 나를 보지 않았다. 그때 아기를 안고 이런 노래도 불렀다. ‘넌 대체 어딜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 앞에 서있는데~’. 아는 가사라곤 여기뿐이라 이 부분만 반복하며 아기가 나를 봐주길 바랬다. 어느새 우리 아기는 눈도 맞추고 엄마를 알아본 듯 방실거리며 웃어서 내 기분도 방실거리게 만들어주고 있다.


  사진 속에 내가 아기를 안고 있는 자세는 세상 어색했지만, 표정은 모든 빛을 담은 것처럼 밝았다. 그때는 내 한쪽 팔 길이도 채 안 되는 2.7kg의 아기를 온몸이 경직된 채 안았다. 너무 세게 안으면 으스러질까, 너무 힘을 안 주면 떨어질까,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몰라서 온 근육에 힘이 들어간 구부정한 자세로 아기를 안고 있으면 간호사, 조산사, 조리원 도우미 분들이 한 번씩 보고는 자세를 다시 잡아주곤 했다. 지금처럼 한 손으로도 번쩍 아기를 들어 올리는 내 모습을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사진 속에 우는 아기의 모습이 너무 웃겨 웃음이 터졌다. 우는 것도 귀엽다며 영상을 찍었다. 그때 아기 울음소리는 너무 귀여웠다. ‘에-에-’하고 우는 아기 울음소리는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우리 아기는 우는 것도 얌전하다며, 우리 아기는 참 순한 것 같다고 신랑한테 이야기했던 게 기억난다. 참 복 받은 부모라는 생각도 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발언이었다. 부모라는 게 참, 내 아기는 모든 게 다 이쁘고, 모든 게 다 좋아 보이나 보다. 순하게 울던 우리 아기는 목소리 내는 법을 모르는 힘없는 신생아였을 뿐이었다. 지금 우리 아기 울음소리는 아주 우렁차다. 신랑이 퇴근하다가 현관 앞에 도착하면, 우리 집 아기가 우는지 알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지금도 아기 울음소리가 귀엽다. 그 커진 울음소리에 대견한 마음마저 든다.


  예전 사진들 사이로 아기가 내 검지 손가락을 쥐고 있는 사진을 찾았다. 하얀 이불 위에 하얀 속싸개를 한 우리 아기 사진이었다. 온통 하얀 배경 덕분에 신생아 특유의 빨간 피부와 하얀 태지가 더욱 돋보였다. 우리 아기 피부가 이랬구나.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많이 건조하다고 보습에 신경을 많이 써주라는 산부인과와 조리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도 우리 아기 피부는 지루성 피부염과 습진, 이유식 알레르기로 잠잠한 날이 없다. 사진을 보니 임신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우리 아기 피부를 이렇게 만든 걸까 하는 죄책감이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두드렸다. 보습에 더욱 신경 써주리라 마음을 다시 진정시키고 아기 사진을 봤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는 아기는 내 손가락을 꼭 잡고 있었다. 모로 반사 덕분에 아기 손바닥에 내 손가락을 대면 저렇게 꼭 잡았다. 우는 힘도 없던 아기였는데, 손을 꼭 쥐는 힘은 어디서 온 건지. 아기의 생존본능이 느껴졌다. 빨갛고 살집 없는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잡는 아기를 보면서 책임감이 차오르곤 했다.

 

  예전 사진을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핸드폰을 들고 아기방으로 갔다. 아기는 오전 10시부터 낮잠을 자고 있었다. 대자로 팔다리를 펼치고 잠이 든 아기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그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 아주 조심하며 아기 왼손을 슬쩍 끌어 아기 얼굴 근처로 가져다 대었다. 움찔거리는 아기에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조심스레 아기 왼손에 내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대었다. 이제 모로 반사는 없었다. 내 손가락을 쥐지 않는 아기의 손을 억지로 접어 쥔 것처럼 만들려고 했다. 아기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소리 내었다. 다행히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 아기가 내 손가락을 쥐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그냥 아기 왼손바닥에 내 오른손 검지를 올리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손가락을 포갠 채 소리 안나는 카메라 어플을 켜서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생후 16일 사진을 흉내 낸 아기 생후 200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예전과 달리 포동포동해진 아기 손바닥에서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자는 아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저 겨울 한 번, 봄 한 번 보냈을 뿐인데, 언제 이렇게 커서 안기도 무거워지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기려고 하는 건지. 조금 있으면 일어서고 걷고 뛰어다닐 텐데, 그럼 안을 기회도 더 줄어들겠지. 아가, 조금만 천천히 커줄래? 너와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조금만 천천히 가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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