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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Nov 01. 2020

돈을 벌지 않는 여자

  집안일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심심치 않게 듣던 말이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사회분위기는 은근히 집안일을 무시했고, 초등학생이던 내가 성장해서 엄마가 될 때까지 변하지 않은 듯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드라마 속 엄마들 일상은 집안일과 함께 했다.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하루를 보냈고, 늦은 저녁 들어온 남편의 저녁상을 차리면서도 시부모님 시중을 들었다. 반면 아빠들은 바깥일을 한 뒤 술 먹고 늦은 귀가를 했고,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집에서 놀고먹는 여편네가’라는 말을 아내에게 해대기도 했다. 드라마 속에서 남자만큼 혹은 남자보다 돈을 버는 여자도 등장했는데, 그 여자들은 당당했다. 그 시절, 돈이 되지 않는 집안일만 하는 여자들에게는 ‘잉여’이라는 껍데기가 씌워진 것처럼 보였다. 


  돈을 버는 여자가 되겠다. 나는 무시당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드라마 속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꿨다. 엄마처럼 살지 말고, 돈 잘 버는 여자가 돼라. 아이러니하게도 집안일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곧잘 듣던 말이었다. 나는 남자들에게 지지 않고 돈을 벌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대를 졸업해서 엔지니어가 되었고, 남편보다 연봉이 높은 여자가 되었다. 


  요즘 나는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출산휴가에 바로 이어서 육아휴직을 사용했고, 지금은 집에서 아기를 키우고 있다. 낮, 밤, 새벽을 가리지 않고 우는 아기를 안아 달래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아기가 물고 빠는 장난감은 항상 깨끗하게 닦아두어야 했고, 때 맞춰 빨래를 해둬야 아기가 쓸 수건이나 옷이 부족하지 않았다. 신랑이 퇴근하고 집에 오는 7시에 바로 식사를 하려면 아기가 자는 중간중간 식재료 손질을 해야 했다. 전에 없던 근육통으로 몸은 고단했고, 침대에 몸을 대면 바로 잠들었는데도 새벽에 아기가 울면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육아와 집안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2월의 어느 날이었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남자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고 묻는 그의 연락이 반가웠다. 오랜만에 아기가 아닌 사람과 육아 주제가 아닌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는 출근하기 귀찮다는 이야기를 했고, 회사일로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내게 부럽다는 말을 했다. 


  “부럽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놀고먹고 자고 하고 싶다.” 


나는 움찔했다. 이상하게도 별생각 없이 했다는 사람들 말에는 언제나 가시가 있었다. 가시에 찔린 내 손과 어깨가 움찔하며 떨렸고, 손가락은 반박의 글을 쓰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결국 한 두 글자 쓰던 글을 지우고 ‘그러게'하고 침묵하는 문자만 보냈다. 


  처음부터 입을 다물었던 것은 아니다. 남자들로 가득 찬 공대에서 공부를 하고, 개발자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집안일을 잉여로 여기는 대화와 종종 마주했다. 그때마다 내가 여자들의 대표라도 된 것 마냥 열을 내며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반박의 말은 늘 튕겨져 나왔다. 


  나는 7년 전 대화를 마지막으로 여자를 대변해서 반박하여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7년 전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대기업을 떠나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전문 IT 회사로 옮겼다. 그때 옮긴 회사가 여자와 육아에 대한 인식도 깨어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나는 육아휴직 후 복직한 여성 개발자가 보이지 않아 의외라는 말을 했다. 내 말을 들은 어느 한 동료가 일하기 싫어 집에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고, 나는 무슨 소리냐며 육아가 더 힘들다더라고 반박했다. 그랬으면 복직하지 않았겠냐고 되묻는 그 동료와 나를 피곤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다른 팀원들의 얼굴을 보고는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나는 줄곧 입을 다물어왔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열심히 한 만큼 회사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치를 깨달았기에 나는 회사가 주는 보상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그런 나에게 ‘하긴, 남편이 버니까.’, ‘여차하면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하면 되잖아요.’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성적과 능력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았고, 여자를 비하하거나 희롱하는 발언과 행동은 조심했다. 집안일만은 경제 잣대로 평가되는 듯했고 돈을 벌지 않으니 놀고먹는 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하는 새 나도 모르게 생각을 주입당한 걸까. 육아휴직이 시작된 2월부터 나는 가계부를 쓰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출산휴가 기간에는 월급이 그대로 나왔지만, 육아휴직 기간에는 월급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정부에서 육아휴직 급여가 나왔지만, 기존 월 수입의 ⅕ 수준이었다. 수입은 줄고 대출금이 늘었고, 아기 분유와 기저귀 값 등 육아용품으로 인한 소비는 증가했다. 가계부 속 답이 없는 돈의 흐름에 고개를 박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돈을 벌지 않는 내 잘못인 것 같았다. 핸드폰을 켜서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적거리다가 한숨을 쉬기도 했다. 심지어 돈도 벌지 않는 내가 밥값을 축내고 있다며 아침, 점심을 거르기 시작했다. 


  돈을 버는 여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경제 잣대에 자유롭지 못했던 건 아닐까. 육아와 집안일을 하며 잠도 자지 못하고 근육통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금, 집안일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지 않는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집안일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의 표면 뒤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경제력을 따지고 있었다. 


  빠듯한 가계부 속 돈의 흐름과 경제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 달, 두 달이 지나갔다. 결국 오늘도 돈을 벌지 않는 여자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집안일을 시작했다. 싱크대에 놓인 이유식 용기와 숟가락을 보며 잠시 아기와의 오전의 사투를 떠올렸다. 개수대의 물을 틀고 설거지를 시작하자 아기 낮잠으로 고요해진 집안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공기를 채웠다. 내 눈에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싱크대와 싱크대 위 하얀 찬장에 반사되는 부엌 형광등 빛이 전부였다.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 사이 1미터 남짓 되는 공간에서 나의 ‘잉여’ 로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왼쪽 끝에 놓인 냉장고와 오른쪽 끝에 놓인 인덕션을 오가면서 밥을 안치고, 국을 끓였다. 어느새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고, 싱크대 물을 틀어 손을 씻고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7kg이 훌쩍 넘은 4개월 아기를 한 손으로 안은채 마무리하지 못한 저녁식사 준비를 하며 나의 잉여로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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