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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Nov 25. 2020

베란다 청소를 하던 그 여자의 사정

  우리 집은 아파트 2층에 있다. 2004년에 지은 아파트라 1층 집부터 22층까지 같은 구조의 집이 차곡차곡 채워져 있다. 내부는 3 베이로 안방, 거실, 아기방이 일렬로 있어서 옷방을 제외하고는 모든 방이 남쪽에서 비치는 햇빛을 받았다. 안방과 거실은 베란다를 가지고 있었고, 아기방은 베란다를 확장한 상태였다.


  거실 베란다 앞에는 벚꽃나무가 있는데, 봄에는 벚꽃으로 거실을 하얗게 밝혀주고, 여름에는 푸른 잎사귀로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고,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잎사귀가 떨어지면서 가을 분위기를 거실에 전달해주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잎사귀가 다 떨어진 나뭇가지 위로 눈이 쌓여서 거실에서 베란다 밖을 보면 설국 안에 지어진 별채에 와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신랑과 사계절 내내 2층인 이 집에 살길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분명 거실 앞 벚꽃나무가 큰 역할을 했다. 단점도 있었는데, 꽃도 잎사귀도 눈도 없는 겨울에는 벚꽃 나뭇가지 사이로 화단 건너편 인도에서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신랑과 나는 이 집을 사겠다고 계약한 뒤에 이 아파트 단지로 자주 산책을 나왔다. 임신 9개월에 접어들면서 산책을 자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기도 했을뿐더러 당시 우리는 이 아파트 정문 앞 나 홀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근하는 길에 신랑과 만나서 손을 잡고 곧 우리 아파트가 될 아파트 단지를 종종 걸었다. 그때마다 미래의 우리 집 거실 베란다와 아기방 창문이 보이는 길목은 산책 필수 코스였다. 신랑과 나는 걷다가 경비아저씨를 마주치면 마치 이미 그곳 주민인 양 인사말을 건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전 주인의 집을 훔쳐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양심에 손을 얹고 이야기한다. 결코 집안 내부를 훔쳐보지는 않았다. 우리 부부는 생애 처음 장만한 우리 집에 그만큼 들떠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던 초겨울 날이었다. 신랑과 나는 벚꽃나무 가지 사이로 미래의 우리 아파트의 거실 베란다를 흘깃 보며 걸었다. 주황색 간접조명 뒤로 검은색 그림자가 한자리에서 아주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집주인 부부 중 아내가 베란다를 열심히 청소하는 것 같았다. 아까 훔쳐보지 않았다는 말은 진심이다. 겨울에 나뭇잎이 다 떨어진 벚꽃나무 가지가 베란다를 가려주지 않았을 뿐이다. 여하튼, 신랑과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우리 집 전 주인은 참 좋은 사람들 같아. 이제 곧 이사 갈 텐데, 베란다를 저렇게 열심히 청소하고 계시네. 우리 정말 집을 잘 산 것 같아.”

  “우리도 저렇게 항상 가꾸면서 살자.”


  그 뒤로 우리는 이사 와서 지금까지 그날 대화처럼 깨끗하게 가꾸고 살고 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닥을 닦았고, 신랑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걸레질을 했다. 더군 더 나 처음 마련한 집이다 보니 집에 흠집 하나 내지 않으려 조심했다. 아기가 크는 7개월 동안 집안 가구 배치가 몇 번 바뀌었지만 신랑과 나는 여전히 집을 깨끗하게 유지했다.


  전날 비가 쏟아져내린 7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배밀이가 활발한 7개월 아기는 자유의지로 가고 싶은 곳을 향했고, 오늘 아기가 향한 곳은 창문이었다. 베란다를 확장한 아기방 한쪽 면은 통창으로 햇빛을 받았다. 아침이면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두는데, 햇빛이 들어서는 그 창문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기는 창틀 사이를 손으로 집고 방충망에 얼굴을 욱여넣었다. 나는 서둘러서 물티슈를 찾아들고 창문으로 가서 아기를 떼어서 아기 손과 얼굴을 닦았다. 아기는 창문에서 떼어 놔도 자꾸만 다시 밀고 들어왔다. 나는 아기가 자유롭게 창문을 탐색하게 두기로 했다. 창틀에 쌓인 빗물과 까만 바깥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아기는 그 사이에도 창문으로 나오겠다고 내 옆구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기를 떼어놓고 다시 창틀을 닦다 보니 창문 아래 인도로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에게서 내가, 나에게서 10개월 전 전 주인의 모습이 겹쳤다.


  10개월 전 전 주인은 어쩌면 베란다 청소를 하고 있던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전 주인 내외는 4살 언저리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아기방 창틀을 닦으면서 떠올린 그날 저녁 베란다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육아로 인해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사투 중인 건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자꾸만 손대서 어쩔 수 없이 닦아야 하는 곳이었을 수도, 아이들이 이미 망가트린 무언가를 베란다에서 고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창문 아랫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보면, 집을 참 열심히 가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내 집 마련을 했을 때, 7개월 아기를 키울 때 나는 전 주인의 모습을 다르게 해석했다. 창틀을 닦고 있는 내 모습 또한 나를 보는 사람이 가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겠지. 문득 창문 밖 사람들이 해석하는 내 모습이 궁금해졌다.


  깨끗해진 창틀로 7개월 아가가 다시 뛰어들었다. 그래, 베란다 청소를 하신거겠지. 이미 지나간 일에 이미 부여한 의미를 다시 퇴색시킬 필요는 없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깨끗하게 집을 가꾸며 잘 살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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