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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an 10. 2021

흔들리지 않는 날이 더 많은 한 해가 되길.

  오늘 아침에 병원을 다녀왔다. 전날 온 눈이 아직 길에 그대로 쌓여있었고, 나는 오랜만에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길을 걸었다. 뽀드득뽀드득, 내 마음에도 눈이 내렸던가. 눈을 밟는 소리가 꼭 내 마음을 밟는 소리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해가 바뀌기 전부터 연초가 된 지금까지 우리 아기는 코감기 증상으로 3일에 한 번씩 그 병원을 방문하고 있었다. 의사가 아기의 얼굴을 봤다. 의사는 코감기 증상을 물으려다 말고 피부에 관한 질문 먼저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본 아기 얼굴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오른쪽 눈은 빨갛게 퉁퉁 부었고 눈 아래 피부도 빨갛게 도드라졌다. 왼쪽 볼도 눈 아래부터 입술 근처까지 빨간 피부가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아파 보였다. 화상이라도 입은 것 같았다. 병원으로 가기 전 사진을 찍어 두려고 카메라를 켜고 아기를 거울로 데리고 갔다. 아기는 뭐가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붉게 부어오른 얼굴로 웃는 아기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이 아팠다.


  이틀 전에도 동일한 증상이 나타났다. 얼굴 전체가 빨갛게 뒤덮여 있었다. 그때는 놀라서 사진을 찍어서 조리원 동기 카톡방에 공유하고, 신랑에게도 보내고, 심지어 인스타그램에도 올렸다. 병원에 가기 전에 아무라도 답을 빨리 알려줬으면 했던 것 같다. 급하게 아기 옷을 입히고 병원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진료를 봤는데, 원인은 찾지 못했다. 그 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에 다시 빨간 피부가 아기 얼굴을 뒤덮어버렸다.



  의사가 아기가 피부를 긁는지, 잠은 잘 자는지 물었다. 아기가 긁느라 잠을 못 잔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아기가 가려워서 짜증이 늘었을 수도 있다고, 몸 전체에 로션형 연고를 발라주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의사의 눈을 보고 의사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의사는 연고를 바르면 오돌토돌한 부위가 아마 많이 따가울 거라고도 이야기했다. 의사와 눈을 맞추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내 눈시울이 조금씩 뜨거워지려고 했다. 의사가 눈동자로 안쓰러움을 쏘아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깜박여 눈물이 나오려는 걸 모른 채 했다.



  우리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건조했다. 출산한 병원에서도 조리원에서도 보습에 신경을 많이 써줘야겠다고 이야기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발목 접히는 부분의 피부가 나무 껍찔처럼 거칠어지고 나서야 보습제를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발라주기 시작했다. 매일 발라주니 정말 아기 피부는 좋아졌다. 좋아진 걸 본 뒤로 보습제 발라주는 일에 소홀해졌다. 어느 순간 아기가 자신의 피부를 할퀴어서 낸 상처를 아침에 발견했다. 그때도 병원을 갔고, 연고를 처방받아 발라줬다. 다시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보습제를 발라주며 아기를 좇아 다녔다. 기고 걷는 아기를 좇아 다니며 여러 번 로션을 발라주는 일이 고되게 느껴져서 또 어느 순간 소홀해졌다. 나의 소홀함과 아기의 가려움이 반복되다가 아기는 돌이 지났다. 우리 아기는 결국 아토피 판정을 받았다. 13개월 아기의 얼굴 전체가 빨갛게 뒤집어지고 나니 그동안의 일들이 차가운 눈송이가 되어 마음에 쌓였다.



  병원 밖 눈길로 들어섰다. 뽀드득뽀드득. 다시 눈을 밟으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아기의 피부 질환이 돌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내 희망과 달리 우리 아기는 오늘도 피부가 빨개져서 병원을 찾았고, 원인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절망에 ‘참을 인’을 새기며 아기를 안고 눈길을 걸으며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내가 생각한 육아는 인내와 반복이었다. 책으로, 유튜브로, 블로그로 육아정보를 얻다가 스물스물 깨달은 육아관이었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도 선배 사원이 알려준 내용들을 한 번에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몇 개월에 걸쳐 반복했던 작업들이 나중에는 몸에 익고, 시간이 지나 나도 선배 사원이 되었다. 아기라고 다를까. 성인보다 더 많은 반복이 필요하겠지.


  육아는 정말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갓 태어나 젖병을 잘 못 빨던 아기도 인내를 가지고 젖병을 물려야 했고, 이유식을 먹을 때는 옷과 바닥에 모두 흘려도 인내를 가지고 먹여야 했다. 결국에 아기는 스스로 젖병을 잡고 먹었고, 이유식도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수많은 ‘참을 인’을 새기며 일 년을 지나왔다. 사실 그 과정에 ‘참을 인’을 새겼던 대상은 내 짜증과 분노, 즉 내 감정이었다. 거창하게 세워두었던 육아관은 나를 다듬기 위한 말이었던 모양이다. 내 감정을 잘 인내해내고 나면, 아기에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기가 아플 때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아기가 아픈 모습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은 얼마큼의 내공이 쌓여야 가능한 일일까. ‘참을 인’이 얼마큼 쌓이면 흔들리지 않는 엄마가 되는 걸까.



  어린이집 문으로 울긋불긋한 아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놀라서 걱정의 말을 건넸다. 다시 또 눈이 찡해지려고 했다. 선생님께 수딩크림을 전달하며 오늘 신경 써서 발라달라고 부탁했다. 길 위의 눈이 치워져 있었다. 병원 갈 때 경비아저씨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는데, 이제 길의 윤곽이 보였다. 나는 눈이 치워진 길을 미끄러질까 봐 조심조심 걸었다. 내 마음에 쌓인 눈도 빨리 치워 놓고 오후에 우리 아기를 만나러 가야지. 그래도 새해에는 1년 내공이 있는 엄마니까, 지난해보다는 덜 흔들리겠지. 흔들리지 않는 날이 더 많은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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