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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an 21. 2021

변한 건 창피함일까 사랑일까

  35살이 된 연초 겨울날이었다. 까만 머리카락과 까만 목폴라 사이에 안경을 쓴 하얀 신랑 얼굴이 13개월 아기를 따라 움직였다. 걸음마에 재미 들린 아기는 거실을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우리 집 거실에는 조금은 올드한 느낌이 나는 갈색 리클라이너와 진갈색 거실장 사이에 하얀 아기매트가 넓게 깔려있었다. 걸음걸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아기는 뒤뚱 거리며 매트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걸었다. 아직 걷는 속도를 조절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배를 앞으로 내밀고 도도도 거리며 걷는 속도에 자신을 맞춰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기는 리클라이너와 베란다 창 사이 공간으로 몸을 쏙 숨기고 들어가서 신랑과 나를 보고 헤실거렸다. 신랑이 “우리 아기, 이리 와!” 하고 부르니, 꺄륵 소리를 내며 리클라이너 뒷 공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리클라이너 뒤편 벽에는 리클라이너 키보다 조금 큰 높이의 하얀 책장이 놓여있었다. 아기는 책장과 리클라이너 사이 1m가 안 되는 공간을 바쁘게 걸어서 리클라이너 반대편 끝에서 고개를 빼꼼하고 내밀었다. 신랑은 거실장 가까이 앉아서 아기에게 매트 위로 오라고 손짓하며 “이리 와!”하고 불렀다. 아기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줄 아는 걸까. 신나서 다시 리클라이너 뒤로 숨어버렸다. 나는 신랑 옆에 앉아서 아기를 부르는 신랑과 도망 다니는 아기를 지켜보다가 빵 터져버렸다.


  나는 신랑에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잘 보라고. 아기가 베란다 창과 리클라이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순간이었다. 나는 두 팔을 크게 양 옆으로 펼치고, 서서히 손을 위로 향했다. 그리고 양 손끝을 모아서 정수리에 콕 찍으며 아기에게 말했다.


  “사랑해!”


아기의 빵빵한 볼이 더 빵빵해지며 눈웃음이 커졌다. 아기는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신난 목소리를 내며 아기매트를 가로질러 달려왔다. 내 손에 닿을 만큼 아기가 가까이 오자, 나는 아기에게 손을 뻗어 아기 배를 감쌌다. 아기를 간질이며 “우리 아기 사랑해, 아고 이쁘다.”하고 힘껏 안아 준 뒤 아기를 놓아줬다. 아기는 다시 헤실 거리며 리클라이너를 향해 달아났다. 몇 주 전부터 ‘사랑해’라고 말하면 두 팔로 하트를 만드는 걸 가르치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신 우리 아기는 ‘사랑해’하면 달려와서 안겼다. 덕분에 도망 다니는 아기를 가까이 오게 할 수 있는 필살기를 얻은 셈이었다.


 신랑에게도 해보라고 했다. 신랑이 리클라이너 옆으로 다시 얼굴을 내민 아기에게 “사앙해...”라고 말했다. 그 어정쩡한 모습이란. 허리는 굽고, 목은 내밀고, 손끝이 아닌 손바닥을 머리에 대고 있었다. 어릴 때, '손 머리 위로'라는 벌을 받으면 꼭 저런 모습으로 있었다. 심지어 ‘사랑해’라는 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사앙해’라는 소리를 내다니. 아기는 신나게 달려오다가 매트 정중앙에서 방향을 틀어서 다시 리클라이너로 걸어갔다. 신랑은 얼굴에 허탈함과 서운함을 담았다.


  “에이-, 그렇게 하니까 그렇죠. 다시 하트를 만들어 봐요. 사랑해!라고 해야지.”


  나는 신랑에게 ‘사랑해’를 제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향해 사랑해를 외쳐보라고 했다. 신랑은 데면데면 거리며 “사앙해...”하고 중얼거렸다. 그런 신랑을 보고 있자니, ‘사랑’이 ‘사앙’이 되어버린 신랑에게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기와 나에게 ‘사랑해’를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아서 서운했고,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나는 신랑에게 물었다.


  “오빠, 나 사랑해요?”


신랑은 대답이 없었다. 오후 햇빛이 밀고 들어온 거실에서 신랑은 햇빛을 등지고 앉아 있었고, 신랑의 까만 머리카락, 까만 목폴라는 더욱 까맣게 보였다. 안경 속 얇은 신랑의 눈은 멍하니 매트 바닥만 보고 있었다. 나는 신랑을 다시 불러서 물었다. 신랑이 드디어 입을 뗐다.

  “아니...”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던 남자 친구가 있다. 그는 내게 애정표현을 곧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사랑받는 기분이 들게 했다. 길을 걸을 때는 꼭 손을 잡거나 내 어깨를 감싸고 걸으려고 했고, 내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을 보고 귀엽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여자애였기에 그 남자의 애정표현이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았다. 당시 그는 내게 이런 질문을 자주 했다.


  “너는 나를 얼마큼 사랑해?”


그럼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금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당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내게는 무척 창피한 일이었다. 그 남자는 나의 그런 모습도 귀엽다고 빵 터져서 웃었다. 그리고 자신은 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줬다. 나는 내게 사랑을 듬뿍 안겨주던 그와 9년 연애 후 결혼했다.



  거실 한편에서 신랑의 대답을 듣고 나는 그대로 굳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연애 때는 내게 사랑을 듬뿍 안겨주던 그 남자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고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았다. 신랑의 입에서 나오는 “사랑해”라는 말은 조금씩 희귀한 말이 되었다. 요즘은 오히려 내가 묻는다. 나를 사랑하는지, 얼마큼 사랑하는지. 연애 때와 달리 사랑을 확인받으려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사랑을 확인받으려고 질문을 하곤 했다. <일상애쓰다>의 정은선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쉰이 훌쩍 넘어선 나이지만 아직도 난 사랑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 삼십 중반의 나도 사랑받는 것이 더 행복한 모양이다. 나는 신랑에게 그만하자고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신랑이 화들짝 놀라 안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신랑은 왜 갑자기 화를 내냐며 내게 역으로 화를 냈다. 방금 전 상황을 모르쇠 하는 신랑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방금 전 했던 질문과 신랑의 대답을 이야기했고, 신랑은 자신이 그런 적이 없다고 대꾸했다. 모른 척하며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대하는 신랑에게 더 화가 났다. 우리는 팽팽하게 서로의 입장을 고수했고, 저녁 먹을 때까지도 분위기는 어색하기만 했다.


  아기에게 저녁 이유식을 먹이려 식탁에 앉자, 신랑이 내 앞에 와서 앉았다. 신랑은 내게 미안하다고, 정말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신랑은 작년 12월부터 지방으로 파견 간 상태였다. 지난 2달간 서울에 사는 나와 아기를 보러 금요일 저녁마다 KTX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신랑은 주말마다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지쳐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 오후에 거실에서 정신을 잠시 놓고 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상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랑의 상황을 듣고 보니, 갑자기 신랑의 입장이 납득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신랑은 여전히 나와 아기를 “사앙”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신랑에게 다시 한번 따졌다. 신랑은 그저 창피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연애할 때는 그는 나보다 더 자주 “사랑해”를 외쳤는데, 지금은 그 말을 하는 게 창피하다니. 15년 간 변한 건 창피함일까, 사랑일까. 나는 신랑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오빠, 나 사랑해요?”


신랑은 눈에 힘을 주고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이 외쳤다.


  “응! 사랑해!!”


신랑은 자신의 눈동자를 내게 들이밀며 내 반응을 기다렸다.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신랑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흠... 글쎄, 일단은 창피함이 변한 걸로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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